조선말기의 100년 상황이 외적조건과 내적조건이 있으나 무시 할 수없는 외적조건이 있습니다.
열강제국의 제국주의적 상황이었기에 나중에 한번더 올리겠습니다.
여기서는 아주 간단히 내적조건을 다뤄보겠습니다. 권력의 집중화가 조선 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부수적으로 수탈의 조건이 다시권력을 재생산하며 수탈의 구조가 점차 치부로 변하면서 정조사후 100년이 지나면 구조적으로 나라를 지탱할수 없을 만큼 부패가 만연되어 몇명의 군대도 이끌수 없는 정도의 나라경제상황으로 전개가됩니다.
1800년에 정조가 승하하고 1810년 홍경래의난을 필두로 끊임없는 민란 ,역병, 지방민고를 파악하면 대동법(광해군때 처음설치-아래에서 언급한 저급한 인조가 반정후 - 이내용이 노무현 탄핵과 비슷하다고 생각-본인견해)을 무시한 중과세등으로인한 민생도탄과 유민의 증가.
1820-30년대의 대흉작,
1840년대의 안동김씨,풍양조씨,안동권씨등의 외척에의한 권력집중화로 인한 수탈등으로인한 잦은 민란 발생.
1860년도의 진주민란 등으로 인해 자연 발생적인 5%의 GNP 의 증가(땅에서 발생할수 있는 수확량의 산술적증가분-토마 피케의 21C 자본에서)가 매년 감소에 이르러
1900년도에 이르면 -50%의 GNP 감소가 발생 이러한 조건은 한나라를 자체붕괴시킬 만큼의 상황이고 이런 조건으로 외적인 요건을 만나며서 조선을 붕괴할 수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춰 패망에 이름다
1910년 이후 곡물생산량 증가분은 수탈을 위한 인위적 사회간접자본을 구성하여 지푶상으론 나아졌지만 그내용(경제상황)은 죽정이에 불과 결론적으로 정조사후 권력의 집중화가 변질되어 치부화되어가고 종착지에 다다르면 고종이 자신을 보호하가위한 친위군대를 못끌정도의 자금사정이 나라유지가 어렵게 되며 결국 패망으로 이어진다.
부가적으로 많은 부의 축적은 친일화되어가며 부의 축적은 남인에게 (동인,서인,남인,북인에서 남인)몰려가며 지금남아 있는 상당수의 친일파가 남인 사람들이다.
기회가 닿는데로 이 남인세력이 일본점령당시 친일파로 변해가는과정도 기술하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개괄적으로 조선의 패망을 보았으며 박사모의 박약한 의식과 가히 극우로 치닿는 꼴이보기싫어조롱하는 의미로 이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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