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 일본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판매된 수입 신차 3대 가운데 1대 이상이 일본차다. 9월 하순 미쓰비시와 11월 닛산 등 대중 브랜드가 밀려들면 “수입차 시장의 절반 장악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많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일본차를 좋아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높은 성능과 내구성, 가격 경쟁력, 한국인에게 친숙한 디자인 등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다시 불거진 ‘독도 영유권’ 파문은 일본차 질주에 일정한 제동을 걸 요인이어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성능에 친환경 기술 돋보여=“관성의 법칙에도 예외가 있다.” 최근 혼다가 국내에 들여온 뉴레전드의 도발적인 광고문구다. “회전길에서 앞뒤 바퀴로 힘을 배분하는 것은 물론 좌우 뒷바퀴 간에도 힘 배분을 조절하는 기술 덕분에 커브길에서도 차가 밀리지 않는다”는 혼다 특유의 4륜구동 시스템 ‘SH-AWD’를 자랑하고 있다.
혼다는 어코드에 VCM이란 ‘가변실린더 제어’ 시스템도 선보였다. 일정한 속도로 달릴 때는 3기통만 쓰면서 연료를 절약하고, 정지상태에서 가속할 때는 6기통(3.5ℓ)을 모두 사용한다. 또 주행 중 완만한 가속시엔 4기통만 사용한다. 3기통을 쓸 때는 1.75ℓ급, 4기통 때는 2.33ℓ급으로 변신하는 엔진이다.
도요타가 내년에 들여올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 모델도 친환경 기술을 입증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 고연비로 국내 소비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모델이다. 혼다는 공인연비 23.2㎞/ℓ를 자랑하는 소형 시빅 하이브리드를 이미 팔고 있다.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한·일관계=20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등록 수입차 가운데 6391대를 기록한 혼다가 19.1%로 1위를 달렸다. 2위 BMW(4825대·14.4%), 3위 메르세데스 벤츠(3954대·11.8%), 4위 렉서스(3377대·10.1%) 및 8위 인피니티(1778대·5.3%) 등으로 일본차가 전체 수입차 3만3449대의 34.5%를 차지했다.
일례로 미국에서 일본차는 잔존가치와 중고차 시세가 높은 차로 통한다. 대표적 미 잔존가치 평가기관인 ALG에 따르면, 올해 신형차 기준으로 3년 뒤 중고차 가치에서 도요타 브랜드인 사이언(61.9%), 혼다(58.2%), 도요타(57.7%) 등 일본차들이 선두권을 휩쓸었다. 현대·기아차는 각각 13위(43.2%), 21위(37.4%)로 최근 상승세이지만 아직 차이가 크다. 혼다코리아 측은 “신차 개발은 물론 생산 과정에서도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업문화가 잔고장이 적은 비결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요타 관계자는 “국산차도 기술은 이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며 “나사 하나라도 얼마나 더 정확하게 조이느냐 하는 차이 같다”고 평했다.
일본차에 최대 걸림돌은 독도 영유권 파문 같은 한·일 관계의 특수성일 수 있다. 후소샤의 왜곡된 역사교과서 편찬을 지원한 그룹으로 알려진 미쓰비시는 사태 장기화시 첫선 때부터 홍역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독도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뜨거웠던 2005년 봄 일제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렉서스와 혼다는 판매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거 수차례 독도 파문이 일어났지만 혼다·렉서스의 질주처럼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고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
<전병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