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엔 의사와 간호사 말고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한다.
그 중에서도 임상병리사란 사람의 분비물을 검사하는 선생님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내가 왜 임상병리사를 싫어하게 됐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그때가 어쩌면 내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다.
사랑하는 평산신양과 동거하면서 서울적십자병원 환자이송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응급실 환자를 옮기는 일과 환자의 피를 검사실에 전달해주는 것으로, 모든 일은 간호사 선생님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무엇이 떨어져라 하루종일 병원안을 왔다갔다 해야한다.
외부인이 병원에 오면 소독약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그 병원에서 나는 락스 냄새 비슷한 냄새만 맡으면 간호사선생님의 말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중압감과 압박감이 몸에 전해온다.
간호사는 환자의 피를 뽑아 나를 통해 검사실로 보내면, 임상병리사가 피의 성분을 분석해 결과를 간호사에게 알려준다.
어찌보면 되게 단순한 일이다.
그런데 검사실에 임상병리사의 태도가 문제다.
내가 환자의 피를 검사실로 가져가면 담당 임상병리사는 자리에 없다.
검사실 안쪽엔 직원들이 쉬는 방이 있는데, 그 방에서 TV를 보거나 수다를 떠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선생님, 시료 왔습니다" 라고 말해도 네~ 란 한마디 대답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자는지, 어디갔는지 일부러 대답을 안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면 종종 간호사 선생님은 아직 피결과가 안나왔다면서 제대로 전달했느냐고 나에게 추궁한다.
하지만 검사실에서 아무리 큰소리로 임상병리사 선생님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그 임상병리사!
나이도 적당하고 이쁘장하게 생겨서 첨엔 호감이 갔다.
근데 하는짓이 영 개판이다~
인사도 잘 안하고 밤마다 병원 주위를 쏘다니며, 때론 친구까지 검사실로 데려와 밤새도록 웃고 떠든다~
그건 임상병리사의 사생활이라 치자!
조직사회에서 자기 할일을 안하면 여러사람이 피곤해진다.
내가 피를 주면 방에서 나와보진 안더라도 대답한마디 해주는게 뭐가 그리 어려운지...
연거푸 간호사 선생님은 왜 임상병리사를 깨우지 않았느냐? 놓고만 오지말고 제대로 전달해라! 혼이 난다.
사람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법이다.
검사실의 고참 임상병리사 선생님에게 그 임상병리사가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맨날 TV틀어놓고 친구불러 놀기만 한다고 일 좀 바로 하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피를 검사실에 두고 제발 일어나라고 노래도 불러보고, 검사실 문을 쎄게 꽝~ 닫고오기를 몇번 하니까, 검사실을 잠그어놓는게 아닌가?
물론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은 없는 그런 비인간적인 여자이다.
문 닫는 소리가 시끄럽다 면, 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게 듣기 싫다면, 내게 그러지 말라고 말을 했어야 한다.
응급실 선생님에게라도 말이다.
하지만 임상병리사 는 끝까지 말을 안했다.
나는 복받치는 마음에 응급실 팀장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검사실에서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거나 문을 쎄게 닫지는 말라는 당부셨다.
이러니 내가 임상병리사를 증오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아픈 환자에 대한 봉사정신과 친절한 서비스가 기본이 되어야 할 병원이 잘못된 부 분을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가관인 것은 그 임상병리사가 병원의 친절사원으로 뽑혀서 여러 직원들에게 칭찬까지 받는 모습에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때 응급실 경비 아저씨가 내가 다가와 어깨를 두르리며 말을 해주었다.
우린 하청업체 아니더냐?
며칠 후 병원 전직원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단합대회에도 초대를 받지 못하지 않았느냐?
우리말을 누가 들어주느냐?
그래봤자 자네만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
내가 최저임금에서 약간 더받는다는 것도 모르고, 가족 친구들은 큰병원에 취직했다며 좋아라한다~
큰병원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만큼 대우가 좋고 직장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나도 병원 정직원이 되고 싶다.
그런데 우리 하청업체보다 월등히 나은 조건과 많은 급여와 수당을 받는 정직원들은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은지, 직원식당 벽면에 커다란 대자보를 연달아 붙여놓고, 연대투쟁 처우개선 임금인상 노사교섭 큰글씨로 무섭게 써놨다.
그런걸 요구하는 그들이 왜 협력업체 직원들이 여름휴가도 없이 일하는 모습은 안보인단 말인가?
매일 얼굴 맞대며 같이 일하는데도 단합대회나 동호회도 지들끼리만, 직원혜택이나 숙박할인권도 지들끼리만...
오늘도 가운입은 선생님들은 점심메뉴가 맛이 없었다며 이를 쑤시며 지들끼리 웃으면서 수다를 떨며 나간다.
마주치면 대놓고 한번 말하세요. 시료 배송할때 대답도 안하시던데, 대답 하라고요.
간호사가 직접 병리과에 연락하면 되긴 하는데, 바쁘니까 떠넘기겠죠... 가운 입고 다니면 다 좋은게 아니에요.
교수쯤 되어야 좋죠. 거기서는 교수(전문의) 이하 죄다 슈퍼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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