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김만기 씨(37·가명)는 오토캠핑용으로 사용할 국산 SUV를 사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중고차시장은 물론 온라인 중고차사이트에서 한달 동안 발품 손품을 팔았다. 그러다 직거래 급매물로 나온 국산 SUV 2008년식을 시세보다 200만원 저렴하게 구입했다. 차주는 주차하다 실수로 기둥을 가볍게 들이받아 범퍼만 교체했을 뿐 다른 사고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내외가 깨끗했지만 직거래라 불안했던 그는 단골 정비업체에서 차를 살펴본 뒤 구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주가 차를 사겠다는 다른 구매 희망자의 문자를 보여주며 빨리 구매 여부를 결정하라고 강요하자 좋은 차를 싸게 살 기회를 놓칠까봐 덜컥 구매하고 말았다.
차를 산 뒤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다 지난 주말 가족을 태우고 춘천 오토캠핑장으로 가던 중 차체가 심하게 떨리고 잡음도 너무 심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정비업체에서는 연쇄 추돌 사고로 앞은 물론 뒤까지 크게 손상된 뒤 겉보기에 그럴듯하게만 수리된 차라고 알려줬다. 화가 난 그는 차주 연락처를 찾아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중고차 거래 현장에서 사고차를 완벽하게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딜러든 개인이든 판매자는 좀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사고 규모를 축소하거나 속이는 경우가 많아서다. 자동차 정비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동차 전문가조차 속을 정도로 겉으로는 멀쩡한 사고차도 종종 있다.
하지만 사고차 10대 중 7~8대는 가려낼 수 있는 감별법이 있다. 중고차 업계의 ‘CSI 과학수사대’라 불리는 성능점검 업체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약간의 자동차 용어 상식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다.
◆정면 사고
승용차 앞부분은 차의 심장이라 불리는 엔진이 있는 중요 부위로 사고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한다. 보닛이 교환됐다면 사고차일 가능성이 높다.
보닛을 열고 옆선을 보면 안쪽으로 철판이 꺾이는 부분이 있고, 끝나는 지점에 실리콘 실링 처리가 돼 있다. 실링은 로봇이 작업하므로 깔끔하고 매끄러우며 일정한 패턴이 있다. 실링 면이 없거나 불규칙하고, 손톱으로 찍었을 때 자국이 곧 사라지면 교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보닛이 교환됐다면 패널(라디에이터를 받치고 있는 가로로 된 쇠빔)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패널이 수리됐다면 사고로 차체에 가해진 충격이 컸다는 뜻이다.
보닛을 열면 헤드라이트가 양옆으로 꺾어지는 부분에 두 개의 쇠빔이 90도 각도로 마주 보고 있다. 두 개의 쇠빔을 연결할 때는 실리콘을 쏜 후 볼트 연결을 한다.
실리콘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본다. 볼트를 풀었던 흔적도 없는지 점검한다. 볼트에 칠해진 페인트가 벗겨져 있거나 다른 부분의 페인트와 색감이 다르다면 수리했다고 여길 수 있다.
◆측면 사고
네 바퀴를 감싸고 있는 부분이 펜더다. 앞 펜더 상태는 앞문과 보닛을 열어야 알 수 있다. 보닛 안쪽에 지지 패널을 직각으로 해서 차체와 같은 방향에 펜더를 연결시켜 주는 볼트가 있다.
볼트마다 똑같은 페인트가 묻어 있으면 정상이고, 따로따로면 교환된 것이다. 앞문을 열면 펜더를 잡아주는 볼트가 있다. 이 볼트도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새로 칠해진 흔적으로 알 수 있다. 바퀴를 덮고 있는 부위 안쪽, 타이어, 흙받이 등에 새로 페인트를 칠할 때 튄 방울이 없는지도 살펴본다.
도어 교체 여부는 유리창과 차체 사이 검은색 고무몰딩으로 알 수 있다. 몰딩에 페인트칠 자국이 있거나 페인트 방울이 묻어 있으면 판금이나 도색을 했다고 여길 수 있다. 몰딩 안쪽(벗겨낸 면)이나 도어 내부 면의 도장 및 도색 상태를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역시 수리 흔적으로 볼 수 있다.
◆후면 사고
트렁크수리 여부를 판단할 때 앞이나 옆은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트렁크 등 뒷부분은 대충 눈으로 훑어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유구가 있는 뒤 펜더나 트렁크 부분에 사고가 났던 차는 차체의 균형이 깨져 잡음이 많이 나고 잔고장도 자주 발생하므로 눈여겨봐야 한다.
트렁크를 열면 고무 패킹이 보이는데, 그 안쪽을 벗겨 보면 철판 모서리가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이 부분이 매끄럽다면 트렁크 부위에 사고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번호판에 탈ㆍ부착한 흔적이 있어도 수리됐을 수 있다. 단, 이사나 자동차세 체납 등으로 번호판을 바꾸거나 탈ㆍ부착했을 수도 있다. 트렁크 등을 판금했다면 맑은 날 태양을 마주하고 차 표면을 45도 각도로 봤을 때 빗살이나 원 모양의 자국이 남는다.
◆침수 사고
침수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하는 곳 중 하나가 실내 및 트렁크룸이다. 침수차는 실내에서 곰팡이나 녹냄새 등 악취가 난다.
그러나 실내를 청소했고 방향제가 있다면 악취를 맡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땐 운전자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연료주입구가 대표적인 곳으로, 오물이 남아 있는 지 확인한다. 안전벨트를 끝까지 감아보면 끝부분에 흙이나 오염물질이 남아 있기도 하다.
시트 밑부분의 스프링이나 탈착부분, 헤드레스트 탈착부 금속 부위에 녹이 있다면 침수차로 일단 의심해야 한다. 또 시거잭이나 시트 사이뿐 아니라 트렁크룸 내부의 공구주머니 등에 흙이나 오물이 있는 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라디오, 히터 등 전기계통의 상태가 나쁘고 히터를 틀었을 때 악취가 나면 침수차일 가능성이 있다. 또 자동도어잠금장치, 와이퍼 및 발전기, 시동모터, 등화 및 경음기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살펴야 한다. 각종 램프류 속에 오물이나 녹이 보이면 침수때문인 지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침수차는 엔진도 불안정하고 시동상태도 불량하다. 엔진 표면이나 엔진룸 내 곳곳에 얼룩이 남거나 라디에이터 코어에 막힘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엔진오일량이 많거나 오일점도가 낮아도 침수차로 의심할 수 있다.
자동변속기차는 변속기 오일량 점검막대에 오일이 하얗게 묻거나 오물이 있는 지 확인한다. 다만 침수 후 2~3개월이 지났다면 이 방법으로 파악하기가 어렵고, 3년이 지나면 파악이 불가능하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gistar@mk.co.kr
1997년 대학 졸업 후 교사, 연구원, 벤처 등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에서 유통과 금융 등을 취재했다.
2007년 매경닷컴에 입사한 후 2011년부터 취재팀장 겸 자동차 및 유통 전문기자로 근무 중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특강 강사로 활동중이며 한국자동차문화포럼 운영위원도 맡고있다.
저서로는 운전자들을 위한 자동차 서적 '차테크 상식사전'(기획,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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