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온 대한민국이 나의 두 아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
포항시청, 경북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아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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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30일날 남한으로 떠난다고 출발했습니다.
6월 5일날 베트남에 무사히 왔고요. 베트남에 며칠 지내다
라오스와 태국 국경을 무사히 탈출 성공했습니다.
제가 한국행을 떠날 때 쥐약 한 통 챙겼었어요.
만약에 가는 도중에 잡히면 북한에서 처참하게 죽는 것보다
잡히는 그 자리에서 쥐약먹고 죽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휴~
라오스 메콩강에서 쪽배에 북한분들 7명이 탔고, 진짜 잘못 움직이면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더군요. 마음 졸이면서 태국 국경을 넘었습니다.
다 넘어서 태국 국경 경비대에 잡혔고
우리는 오로지 고향 말 밖에 모르는데
그들은 계속 뭐라 말하는데 알 수가 없고 ㅠㅠ
같이 있는 분 중 하나님 믿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 분은 그 상황에서 울면서 주님 주님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김일성이 하나님이라고 했기에
교회라는 것, 예수님에 대해서는 태국에서 알았습니다.
통역원이 필요한데 서로가 말을 모르니까
참~ 깝깝했어요. 그 속에서 제가 영어로 ‘차이나’ 하니까 중국 통역원을 부르더군요.
제가 중국말로 쭉~ 얘기했죠. 저희는 한국사람이다.
라오스 여행왔다가 여권과 전부 잊어버렸다,
빨리 우리 모두를 대한민국 대사관에 보내달라 했는데
그때서야 우리는 한국이 사우스코리아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해서 태국 방콕에 있는 국제수용소로 이동되었고 ㅠㅠ
들어가니까 우리 주민들이 백명 가까이 있었어요.
며칠 지내던 어느 날, 대한민국 총영상관에서 하나하나 조사 좀 하다가
서류 몇 장 건네주었습니다. 그 서류는 가고 싶은 국가선택 서류였습니다.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네덜란드, 대한민국.. 여튼 많았습니다.
저는 그 수많은 국가들 중에 한 눈에 보이는 건 “대한민국.” 선택하고 사인했습니다. ㅠㅠ
진짜 이렇게 한국정부에서 이유없이 아이 빼앗아 간다는 걸 알면
차라리 큰나라 갔겠죠. 그렇게 선택 후 수용소에 얼마 있다가
2015년 13일날인지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탔죠.
비행기는 난생 처음이라 멀미나니 머리는 아프고,
하늘에서 비행기 떨어질까봐 걱정도 되고 ㅠㅠ
가지가지 많은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6시반쯤 내가 그렇게 원했던
대한민국에 입국했고, 내가 그렇게 보고싶었던
대한민국이 참~ 아름다웠어요.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할 때 저는 승무원에게 물어봤어요.
“저기 혹시 여기 한국 맞나요? 실감이 안나서..”
승무원은 그랬습니다. “(네) 맞습니다.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입니다.” ㅠ
마음이 그제야 풀리는 것 같았어요. 그 전에는 제 생각에 여기는 평양 국제공항 같았고 ㅎㅎ
딱~ 내리니까 까만 안경 쓴 국정원 직원들 몇 명 나왔습니다.
저희 한 명 한 명 악수했고, 그 다음 날카로운 한 분이 우리에게
“여러분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대단히 환영합니다.” 했습니다.
저는 그 때 국정원분의 그 말에 너무 감동받았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땅에 주저앉아서 울었습니다.
모든 사람 생각은 그랬습니다. 우리는 같은 언어, 같은 글씨, 같은 조선사람이고,
또한 한 핏줄 한 형제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헤어져 살았던가..
그렇게 하다가 국정원에 들어갔답니다. 들어가서 조사받는 중 조사관에게 부탁해서
상하이 있는 아들한테 전화했고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렸습니다.
3개월간 조사를 받았고 하나원으로 이동, 6개월간 있다가
2015년 12월 30일날 경북 포항에 정착했습니다.
국정원은 저에게 국민임대를 빌려줬고 정착금 400만원을 주었지만,
그 돈은 모두 브로커가 빼앗아갔고, 제가 중국에서 만위안 갖고온 중에서
이리저리 쓰다보니 2000위안 있었습니다. 그걸 환전하니까 40만정도 되었습니다.
그 돈 갖고 혼자 살다가 누구 소개로 일하게 되며,
한국에서 오직 열심히 살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별의별 일 다했습니다.
북한에 할머니가 계시니 브로커한테 돈 200만원을 주고 할머니를 찾아달라 부탁했는데
브로커는 할머니는 2014년도에 사망했다고 연락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아픈 일이죠.
할머니는 내게 어머니이자 아버지같은 존재였는데..
그 분을 영영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아들을 빨리 한국에 데려오기 위해서
400만원을 들여서 아이를 한국에 데려왔어요.
세상에는 나한테 아들이 전부였어요. 진짜 한국와서 매일 매일 예쁜 옷에
저녁이 되면 항상 아들한테 이야기도 하고.. 그때 너무 행복했고,
나의 행복했던 나날들을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좋아요.
그 다음 단계는 상하이 있는 오빠랑 같이 한국에서 살려고
여행사 통해서 국제결혼을 신청했는데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중국분 초청비자 받으려 한다니까
어라~ 한국에서 안받아주는 겁니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그 남자가 20대에 패싸움 하다가 걸렸던 게
범죄경력 확인서에서 밝혀져서 한국을 못들어왔고,
저는 그 사람과 점점 멀어져갔고, 결국 저는 이혼녀가 되었습니다.
진짜 그때는 그 사람을 빨리 잊고 싶었고, 일하면서 남한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혼인신고까지 하고 한 3개월은 잘 지냈어요. 그런데 본성이 쑥~쑥 나타나면서
내 카드, 내 통장을 자기 것처럼 갖고 다니고,
신용불량자에, 백수에, 포항에서 건달짓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이런 꼴통새끼 만날 줄이야. ㅠㅠ
아이 키우는데 맨날 때리고 그 전에 좀 벌었던 돈을
맨날 술과 도박에, 하다못해 룸싸롱에서 아가씨에게…
저는 곁에서 조언 하나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오로지 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죽어도 김XX이라는 놈을 용서 못하는데 오죽하면
내가 일은 해야지, 그리고 아이를 집에 두면 저 새끼가 괴롭히지 하고 알아보다가
같은 새터민이 포항에서 살기에 그 이모한테 아이를 맡겼습니다.
한달에 200만원씩 주면서 그렇게 해서 두 달 정도 맡겼습니다.
제가 그 놈에게 이혼해달라 하면 ‘죽고 싶냐, 다른 새끼 있냐’ ㅠㅠ
죽도록 때리고 진짜 너무 맞으니까 무섭고, 나도 모르게 그 놈이 하란대로 하게 되고..
어느 날 제가 돈이 없다고 하니까 또 때리고 흉기 들고 위협을 하니 진짜 무서웠어요.
저는 “제발 때리지 말라. 하라는 대로 할테니 때리지 마요.” 말하며
그렇게 얻어맞고 가고 싶지 않은 일을 나가야 했습니다.
당시에 그는 내 아들을 잘 봐주겠다고, 마음놓고 일 갔다오라 하여
영주에 일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안되서 그는 아이를 때리고 난리가 아니였답니다.
경찰의 전화에 바로 영주에서 포항까지 15만원 주며 택시타고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이미 아보전에 갔고, 나는 아이 찾으러 여기저기 다니고
옛날에 아이 봐줬던 사람한테 도움 받으려고 손내밀어 봤는데
그 어느 누구도 저를 안도와주고 외면했습니다.
쓰레기새끼는 경찰들이 잡아갔고, 저는 제 아들 찾으러
목이 쉬어라 소리내 봤지만 받아주는 곳, 들어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없으니 점점 망가지고 누가 저한테 법에 대해 말해주는 것도 없었고
아보전에 찾아가니 엄마가 자기 자식을 보호 못했는다는 이유로 아이 못본다고 하고..
죽으려고 자살도 몇 번 했고 수면제도 먹어봤습니다. 세상이 너무 나한테 불공평하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포항 북부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 개놈 때문에 조사받게 되었는데 쓰레기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여튼 사과하는 소리 많이 했습니다.
저는 개쓰레기 보고 그랬습니다. 이혼해달라고!
진짜 저는 경찰소에서 미친 듯이 그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이놈이 나보고 합의해달라고 하면서 자기도 이혼합의 하겠다고..
저는 한 번만 딱 믿어보자 하고 감옥에 쳐들어 가야하는 새끼와 합의하고
경찰관한테 내가 모두 죄를 지었다고 하고 조사받고 집에 왔죠. 이 쓰레기도 집에 왔더라구요.
저는 빨리 이혼하러 가자 하니까 하는 소리가 먼저 인수구출 안하겠냐고 하더라구요.
제가 이혼 먼저하자, 내 말 먼저 좀 들어주라 하니
그 놈 하는 소리가 지금 이혼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 찾는 게 우선이다.
참~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때 왜 속았는지 치가 떨려요.
제가 진짜 찾아올 수 있나 물으니 ㅠㅠ 찾는데요!
자기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해서 대한민국 법을 잘 아니까 뭐~ 이런 등등 하며 어디에 전화하더니
아는 형님이 도 경찰서 간부랑 포항경찰서와 아보전과 시청에
다 친척, 아는 사람들인데 돈 좀 뿌려야 될 것 같다해서
얼마 필요한데? 물었습니다. 혼자 생각에는 백만원에서 2백만원이면 되겠지 했죠.
개놈이 한다는 소리가 2천에서 3천만원 들여야 한대요.
그리고 지금 빨리 서들러야 한다며 나한테 하는 소리가
우리나라는 애들을 국가에서 데려가면 미국이나 캐나다 쪽에 입양 보낸다면서..
저는 진짜 열받았어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내 잘못이냐고.. 서럽고 분통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조금만 손 안쓰면 나라에서 입양시킨다는 생각에
내 몸에 있는 피와 간을 팔아서라도 내가 무조건 외국입양 못보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놈이 말하더라구요. 지금 현재 돈이 없지만 하나 방법이 있대요.
울릉도에 있는 자기 아는 형님이 다방한다고,
그쪽에 가면 선불 먼저 준다고.. (개새끼 진짜 천벌 받을 거예요.)
저는 인수 외국에 입양 안가고, 내 품으로 돌아온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 확실히 믿게 된 이유는 제가 보는 앞에서 스피커로
그만한 돈 있으면 바로 아이를 빼내올 수 있다며 상대방이 먼저 쓰레기한테 말하니까
진짜 확실하다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서둘러서 울릉도로 갔어요.
다방사장한테 차용증 작성하고, 돈은 저 또라이새끼가 챙기고,
저는 그 새끼 보고 빨리 아이 구출하고,
인수가 엄마를 찾으면 울릉도에 데리고 오라 했어요.
그렇게해서 헤어지고 을릉도에 있는 동안, 별의별 고통을 다 당했습니다.
그리고 전화기 포함한 제 소지품은 가게사장이 보관하고 있으니
우리 인수가 집에 왔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그 새끼 전화번호도 기억을 못해놓아 그렇게 7개월동안 버텼습니다.
돈을 전부 갚았고 아들한테 가는 기분은 그 어디 말할 수 없이 너무 좋았고,
울릉도에서 배타고 울진에 후포항 도착해 내려서 버스타고 집에 도착하니 ㅠㅠ
집문 열리는 순간 똥냄새에 오줌냄새에 제가 신발도 못벗고 신은 채로 인수를 불렀고,
바닥에는 설사같은 똥들이 널려있고.. 그제서야 저는 완전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없이 창 밖을 바라보다가 작은방에 뭔가 소리가 나길래 열어보니
미친 생또라이 새끼가 엎드려서 자고 있더군요. 어휴~
술에 취한 개쓰레기 보는 순간 열불이 나서 제가 발로 찼습니다.
그 놈은 정신차려서 저를 때리면서 칼들고 저를 찌르려 했고
저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112신고를 했습니다.
경찰들은 우리집 와서 보는 순간 기막혀 했죠. 여기저기 널린 게 똥이고..
바로 그 사람을 수갑 채웠고, 경찰 한 분이 전화하니 구급차가 오고..
알고보니 정신병원 차더라고요. 파출소 반장이라는 분이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 저런 양아치 하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멀리 와서 이런 고생을 합니까?
저는 아들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혹시 제 아들 인수, 입양 갔나요? 좀 도와주세요.”
반장님은 어디에 전화하시더니 한국에 있다 했습니다. 저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반장님께서 얘기해 주셨는데 그 놈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인성병원에 몇 년 살았었고,
병명은 술중독과 도박중독, 그리고 정신질환 ㅠㅠ 듣는 제가 너무 기가 막히더라구요.
반장님은 제게 얼굴이 심하게 다쳤으니까 돈 5만원 건내주면서 응급처치 받으러 가라고 했지만
그 돈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병원에 안가고 집에 있는 연고를 발랐습니다.
그 다음 집을 청소하고 집안 정리하고 있으니 모르는 전화가 오길래 받아보니 아보전이였고
제 전화번호를 경찰한테서 받게 되었다 하여, 그 길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진짜 일년 거의 되서 보니 무럭무럭 많이 컸고,
아주 그냥 엄마 좋다 난리였고.. 그러나 우리는 다시 헤어졌습니다.
기쁨도 잠시 아보전은 인수가 집에 복귀하려면 자기네가 가정방문 해야한다면서
집에 와서 사진찍고 거의 한 달만에 제 품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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