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걸고 온 대한민국이 나의 두 아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
포항시청, 경북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아보전)
" 목숨걸고 온 대한민국이 두 아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2 (아보전) "
에서 이어갑니다
......
저는 주민센터에 가서 이혼은 안된 상태였지만 긴급생계비를 신청했고,
그 놈이랑 이혼해야 하니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 현재 작은아들 인성이아빠를 만났습니다.
아빠 역시 저랑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새터민이었고,
제가 너무나 고통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인성이아빠는 저를 영원히 지켜주고 제 손을 놓치 않겠다고,
또 제 아이 인수한테만큼은 정말 잘 해주겠다고 결심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소송판결에서는 쓰레기놈이랑 완벽한 남남이 되였지만, (모든 것이 인성이아빠 덕분이였습니다)
저는 그 과정 중 몸이 몹시 안좋아졌었고, 둘째 임신 중에는 무척 아팠습니다.
인수를 학교 보내고 있는데 음식 자체가 너무 싫고 힘들어하니,
인성이아빠는 탈북민센터 하나원에 방과후수업 같은 지원이 있는지 문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원은 시청으로 상담을 넘겼고,
시청에서는 엉뚱하게 시설 입소를 주장했습니다.
포항시청 아동보호팀장 이은주는 너무 좋은 시설이 있는데,
언제든지 인수를 만날 수 있으며, 입소해보고 아이가 안좋아하면
집으로 가도 되니, 출산 때까지만 아이를 맡기라 했습니다.
2019년 9월 1일날 불쌍한 인수가 갔어요.
그런데 인수한테 전화하니까 폰은 꺼져있는 상태고
이은주 팀장은 바쁘다고 계속 좀 있다 전화드린다며 저를 너무 무시했습니다.
시청에서 이리저리 피하니 결국 아들은 못만났고요..
이제 지나갔던 일은 잊고, 다시 새출발 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포항시청에서 우리 가정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이 지나자 시청은 전에 우리에게 얘기했던 것과는 영 반대로,
인수를 3개월간 볼 수 없다면서 저한테 아주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당황스러운 저는 인성이아빠한테 전화해서 물으니,
아빠는 바로 탈북민센터로 가서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시청에서는
그 시설에 아동학대로 들어온 다른 애들이 있으니 우리보고 이해를 좀 해달라 하더군요.
저는 당시 인성이가 배 안에 있으니 인성이아빠가 뛰어다니며 시청과 싸웠습니다.
2020년 2월쯤 되었을 때는 제가 인수를 만나지도 못하니 그 고통에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지며 몸도 더 위태로워졌고,
산부인과에서는 태아에게도 위험하니 신경쓰라는 말에
인성이아빠는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제게 웃어주는, 저한테는 천사같은 사람이였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인수를 보게 해주겠다 하여 시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시설이 많이 안좋은지 얼굴 색이 안좋고, 굉장히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들 보는 순간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나는지..
우리 인수는 제 눈물을 닦아주면서 “엄마, 울지 마세요.” 하며
철이 많이 들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아들 인수에게
“인수야, 엄마가 미안해. 모든게 엄마가 처신을 잘 못했네.
지금은 엄마 몸이 많이 아프지만 엄마 뱃 속에 있는 동생이 나오면 우리 행복하게 살자.
이번에는 엄마 꼭~ 약속할께. 알았지?” 말했습니다.
저는 그 때서야 시설 원장 번호를 알게 되었고
인수는 당시 학대당한 아이들 6명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 인수를 보니 옷도 겨드랑이가 찢어져있고 마음이 안좋아
인수아빠는 인수옷 우리가 갖다줄 테니 옷 사주지 마세요 했었고..
아쉽게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말마다 인수한테 피자, 치킨 등등 배달도 많이 해주고,
진짜 우리 인수 어떤 곳에서 사는지 궁금했는데..
둘째 인성이가 배 안에서 위험해져서 유도분만으로 진통 3일을 거쳐 낳았습니다.
인성이는 내장이 막혀서 바로 긴급수술을 받아야 했고,
저는 산후조리는 커녕, 2개월간 병원에 매일 다녔습니다. 그 때 병원비만 3천만원이 들었습니다.
모든게 다 내 잘못같다는 죄책감을 갖고, 일요일에는 포항의 주찬양 교회에 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큰소리로 외치면서 우리 인성이 살려달라 예배드리고 매주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에 우리 인성이는 무사히 2개월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이제는 인수를 데려오려고 시청에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아직 어리고 모유 먹는데 조금 더 키워놓고 데려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속상해했고, 인성이아빠가 시청에 강력히 항의하니,
그렇게 간신히 2020년 8월달에, 그것도 잠시, 인수는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정신과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아토피 처방 약에 등등 약만 한주머니 달고..
집에 오니 인수는 너무 좋아하고, 시설에 안가면 안되나요 했고,
제 느낌에 너가 분명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인수는 아무 일 없다며 주저하다, 원장님이 자기는 양치질했는데
안했다고 다시 하라며 뒤통수를 때리기도 하고, 낮에도 혼자 있을 때가 많다고..
그래서 왜 너 혼자 있냐고, 다른 친구들은 어디갔어? 물으니
몇 달 전부터 다른 친구들은 다른데 가고 혼자 시설에 있게 됐대요.
시설원장이 저녁이면 인수를 혼자 두고 다른데 가서 자는데
애는 그 큰 시설에서 밤마다 너무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더 참을 수 없었고, 시설원장과 시청에 항의하니
시청 사람들이 우리집까지 와서 정말 죄송하다며 면목이 없다 하더라고요.
시청 이은주 팀장은 정말 자기네가 실수한 것을 안다며 미안하다 했고,
인성이 특수분유 20통을 들고 왔는데, 그러면서 우리한테 하는 말이
이번에는 정말 최고로 좋은 시설이 있는데 둘째아이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맡기라며
저번처럼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했어요.
참~ 마음이 약한 저희 부부는 최고 좋다는데 속아서 또 보냈습니다.
진짜 인성이만 안아팠다면 보낼 일이 없었습니다. 하도 갓난아기가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맡겨보게 되었는데 시청은 또 장난을 치는 거 였네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언제든 만나게 해준다더니
또 몇 개월간 만날 수 없다 말 바꿨던 중,
2020년 9월 4일날, 그 최고 좋은 시설에서
인수는 머리가 깨져서 성형받을 상황이 됐고,
시설원장은 우리한테는 알려주지 않고 시청에 먼저 전화해서
아이가 사고났다고 했다는 겁니다.
시청은 병원 대라고 하니까 알려줄 수 없다면서 우리를 정신병자 취급했고,
저희는 그날 바로 시청에 달려갔으나 이은주 팀장은 우리를 외면했고요.
시청공무원은 제 남편이 난리 피운다고 “미쳤네” 라고 욕도 했습니다.
우리는 맞받아 너희 시청이 미쳤다하니 그 과장이란 사람은 저희를
공무집행 방해라며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은 저희의 하소연을 듣더니
시청 직원에게 학대 아니라는데 아이 병원은 가르쳐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고,
그 후 인수는 머리에 붕대를 온통 감은 채 저희한테 왔는데
원장은 계속 인수 어깨를 잡고 서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경찰관에게 “형사님, 빨리 저희 가야합니다.
지금 애가 불안해 합니다. 이게 아동학대입니다.” 말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을 분노조절 장애라 하더라고요. 정말 전쟁입니다.
며칠 후 우리는 시청을 통해 원장한테 전화했습니다.
저희가 집안이 너무 복잡해서 절에 기도하러 가겠으니 ㅠㅠ
딱 하루만 인수를 보겠다 사정해서
그것들의 허락을 (아침9시부터 오후3시까지) 받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다시는 인수 손을 안놓기로 다짐했고,
전라도 담양 용화사라는 절에서 한동안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시청은 저희한테 온갖 협박을 가했고, 이은주 팀장은 제게 전화해서
“인수어머니, 왜 약속 어겼습니까? 이렇게 인수를 데리고 가면 아동유기죄인 것 알고 있나요?”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동학대가 아니잖아요. 제발 우리 가족 숨 좀 쉬게 해줘요.
말하며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통화를 끊고 저는 남편에게 미국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알아보니 남편은 인수와 미국으로 갈 수 있었으나 저는 비자신청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둘째아이와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비행기를 탔고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도착하여 멕시코에서 열흘 정도 있다가
2020년 12월 24일날, 미국으로 가는데 진짜 한국국경 넘는 것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멕시코 국경 경비대는 불법도망자 발견 즉시 총살입니다.
일단은 아이 때문에 담은 못넘고, 대형트럭 고무타이어 같은 것을 타고 강을 건넜죠.
진짜로 인성이랑 저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한 덕분에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숨만은 살려주셨어요. (아멘)
그렇게 무사히 미국 국경을 넘었고 미국 이민국에서 일부러 잡혔습니다.
그 이민국 감옥에서 다음날 코로나검사를 마친 후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조사받을 동안 미국인이 봐주셨고 간단한 조사 후 2차 인터뷰를 했습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고, 내가 살아온 과거와
내가 한국에서 보고 느끼고 당했던 사실을 쭉~ 이야기를 하니,
사실 미국은 한국보다 아동학대법이 더 강하지만
아동을 확실히 학대했다는 증거를 명확히 제출해야 처벌이나 강제분리를 한다더군요.
저는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에서 아이 때문에
시청, 아보전과 한 싸움에 대해서 낱낱이 밝혔습니다.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미국은 바로 한국으로 추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또박또박 얘기했고, 그 인터뷰는 3시간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 후 이틀 있다가 미국 텍사스 이민국에서 임시영주권을 받았고,
바로 그날 티켓 끊어서 제가 비행기 타는 것을 보고 이민국 경찰들은 갔고,
제가 샌프란시스코 친구 집에 아이하고 도착하니
큰아들과 아이아빠는 이미 제 친구집에 와있더군요.
참~ 살다가 목숨을 3번이나 걸고 성공했다니… 눈물나더군요.
(고향 언니는 함께 미국에 도착했으나 아마 조건이 안되었는지 한국에 바로 추방되더군요.)
참~ 포항시청과 아보전 때문에 작은 아들 인성이가
많이 고생했고 죽을 뻔했고... 죽어도 못잊어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같이 미국에서 만났고 며칠 있는데
인성이아빠가 갑자기 회사 회장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제 친구집에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던 찰나,
회사는 저 사람 없으면 안되는 상항이 되었고,
남편도 마무리 할 것이 있으니 한국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정말 저는 한국 들어가기 싫었고, 돌아가야 집도 없는데..
집의 돈 모두 챙겨서 멕시코 브로커에게 5만블을 줬었고,
또한 2월 23일이면 샌프란시스코 대법원가서 재판도 받아야 하는데 말이죠.
아이아빠가 일단은 한국에 들어가자 하여 2021년 1월 7일날 한국을 왔고,
남편 누님이 6평짜리 집을 잡아주셨습니다.
우리 가족 짐을 다 정리하니, 그리고 코로나 자가격리까지 하고 있으니
밖에도 못나가고 그 좁은 집에서 4명이 살기에 불편했었어요.
한 번은 쓰레기 버리려 밖에 나왔다가 편의점 잠깐 들린 사이에 휴~
경찰들이 우리집에 와서 코로나 위반했다며 난리였고, 진짜 10분, 15분 그 사이
경찰은 제 핸드폰을 위치추적한 겁니다. 코로나 격리가 끝난 후 조사를 받았는데
얼마 후 경찰은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벌금 1000만원을 판결했습니다.
2021년 1월 23일날은 아기아빠하고 아침에
제가 늦잠잤다는 이유로 약간 서로가 삐졌어요.
그래서 저는 좁은 곳에서 말다투기 싫으니 서류 발급받으러 주민센터에 갔는데
그 사이 아이아빠는 그래도 걔 중 가장 신뢰간다는
아보전 김민경 팀장한테 하소연도 할겸 전화했나봐요.
코로나 때문에 인수가 학교도 못가니 지역아동센터를 알아본다고..
그런데 아보전은 경찰과 시청 모두 끌고 와서 인수를 무작정 데려갔어요.
진짜 사람이 무서워서 어디 도움 받을 수 있겠나요?
그날로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서 현재 지금까지 목소리도 못듣고, 얼굴도 못보고,
10개월동안 이렇게 그리움에 사무쳐 살고 있습니다.
어디가서 하소연해도 누구 하나 들어주는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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