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이 5살때
아버지는 항상 술이 최서 들어 오십니다.
깡촌 산꼭대기 집이라 아버지가 술최서 올라오시면 노랫소리가 집까지 들립니다.
이때부터 저와 작은누나는 긴장을 합니다.
큰누나는 벌써 국민학교6년을 졸업하고 중학교도 가지 못한체 서울의 한공장으로 돈벌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돈벌어 오라고 내 쫗았지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공부를 하는 산업체 같은 곳입니다.
근데 아버지는 벌은 돈을 집으로 보내라 하셨다네요. 돈놀이 해서 이자 불린다고
여튼 아버지가 집에 들어 오시면 바로 소리를 지르고 집안살림을 부수기 시작합니다.
성치안은 냅비며 밥상 찬장등을 마당으로 조 던지십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러십니다.
어머니는 못참고 욕을 하시며 덤벼들지만 매만 두들겨 맞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다 아랬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버지는 안간다 하셨지만 할머니가 혼자 계시고 큰아버지 자식들이 두명 있어서 어쩔수 없이 내려 왔습니다.
큰엄마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교회 목사를 따라 서울로 가버렸습니다.
다달이 얼마식 부처 준다그러구서 자기 자식 2명을 내팽개 치고 서울로.... 머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큰집 아이들이 돈달라 그러면 윗집에서 돈을 꿔서라도 줍니다.
우리는 달라그러면 욕을 신나게 줘 먹고 줄때도 안줄때도 있습니다.
정말 가난하게 살다가 아버지 일도 그런대로 대고 키우던 소도팔고 해서 1988년도에 아버지통장에 7500만원이란거금이 있을걸 봤습니다.
어머니는 집수리 500만원정도면 한다고 집수리 하자고 하지만 어림 없습니다. 매만 신나게 줘 맞습니다.
이때도 할머니가 계시지만 역시 아들편입니다.
어머니는 막내인 제가 졸업하고 성인이 되서 군대를 가자 다른곳으로 식당을 차리고 아버지와 헤어지십니다.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실상 따로 살기에 이혼한거나 마찬가지로 삽니다. 중간에 많은 사연이 있지만 생략....
제가 결혼을 하기전에 장모님되실분이 돌아 가십니다.
그리고 저와 집사람은 첫 아들을 낳았는데요.
이놈이 잘 울질 안아요. 이상하다 싶어서 원주로 서울로 옴겨서 심장병 수술을 합니다. 태어난지 5일만에....
돈따지긴 그렇지만 1500만원이 들어 갔습니다.
이때 아버지한테 서류 필요한게 있어서 전화를 겁니다.
이전에 태어난 손자가 많이 아파서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옴겼다고 안부만 전한 상태였습니다.
근데 아버지는 전화를 걸자마자 첫마디가
나 돈 없다. 니들이 알아서 해라 ... 하고 뚝 끈어 버리십니다.
정말 지금까지 많이 서운한 아버지 였지만 이때는 정말 남이 되고 싶었습니다
애초부터 돈달란 소린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절대 손 안벌립니다. 안줄거 아니까요 근데 저렇게 말하니 너무 서운합니다.
제 작은누나는 지금이라도 아버지와 인연을 끈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작은 누나도 어머니때문에 중학교 까지 다녔지만 결국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큰누나 처럼 돈벌로 서울로 쪼껴 났습니다.
큰아들이 최고 였던 아버지인데 작년 2월에 멀리멀리 갔습니다.
여하간 아버지에 통장에 있던 돈은 돈놀이 한다고 이사람 저사람 다 꿔주고 하나두 없습니다.
몇번을 당하시는데 술만 드시면 돈을 꿔줍니다 . 남한테... 정말 환장합니다
어렸을적 아버지는 어머니가 우리 줄려고 부치기라도 부치실라치면 집구석에서 쓸데없는짓 한다고 다 엎어 버리십니다.
작은누나가 다리가 부러저 누워 있는데 아버지 왔는데도 안일어난다가 확 집어차서 작은누나 울고 불고 날리납니다.
하루는 어머니를 폭행하던 아버지를 작은누나가 때리지 말라며 숫가락으로 아버지 얼굴을 때렸다가 아버지가 누나를 들어 던져서 3일간 혼수상태 였던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살 운명이었는지 의사 한명이 우리살던 촌구석에 들어와서 살았다네요.
추워지는 11월에 아버지 용돈을 드리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한마디 하십니다. 집이 다 되서 무너질거 같다 어쩔거냐 하구요.
그말 정말 서운했습니다. 그많던 돈 집 수리를 하던가 집을 짓던가 하지
어머니 한테는 집수리를 외하냐 돈 아깝게 쓸데 없는데 돈쓴다며 그냥 옛날집에서 사시던 분입니다.
참 우리 아버지 섭섭하네요.
많고 많지만 생각나는 몇가지만 적었습니다.
내가 이해를못하는건가ㅡㅡ
옛날 아버지요
하지만 우리아버지는 정말 너무한거 같아서요 ^^ 죄송합니다.
가면 욕만 먹어요 ..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서운한것보다 미련이 남을겁니다..저는 그랬어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모질게 했던 기억도 있지만 돌아가시면
사탕하나 사줘서 맛있게 먹던 기억만 남게 됩니다..제가 지금 그래요.
사람이라는게 곁에 없으면 좋은것만 ..또는 부정보다는 긍정만 보게 됩니다.
제가 그럽니다.....
아버지 영정사진보면서 퇴근하고 혼잣말로 그럽니다...다녀왔습니다..그래요.
제가 그럽니다....
부모와의 삶이 화목하진 않았어도 돌아가시고 나면 그래도 그리움은 있습니다.
제가 그럽니다..
그때 눈물이 참 많이 납디다.
병원측에서 가족들 다 부르라 그래서 엄마 누나2명 다 부르구 큰아버지 큰엄마 오셨던 ...
하지만 병원입원 3일만에 아버지가 병원 못있겠다고 집으로 가셨는데....
지금까지 이상없이 살고 계신 ....
아이들도 그때가 되면 알터이지만.
허구헌날 술먹고 가족들때리는 아버지, 장남만이 최고라여겨 가진돈이 있어도 가족들에게절대쓰지않는 싸님아버지, 뿔뿔이흩어진 가족들이 안부차 찾아와도 차갑게"돈없다"라는 외마디를 던지시는데..
그 와중에 놀음을 또 좋아 하셔서 오래된 예전에 한해 겨울에 산판이라는걸 합니다
나무 베서 옴기는건가봐요
다른 사람들 돈까지 다 받아서
놀음판에 겨우내 일해 번돈과 다른사람들 돈까지 다 잃고 오셨다고 하네요
저는 모르지만.... 엄청 큰돈이었다고...
아버지 하고 인연 끊으세요
아버리란 자식을 나았으면 기본 적인 책임을 지어야 합니다
지금와서 자식안테 손벌리는건 아무리 부자 지간이라도 이건안닙니다
내가 이런 상황 이라면 절대 안봅니다
쓰발 열받네
지금도 시아버지 미워 하는데 더 미워 할까봐요..
저두 미운데 오죽하겠어요.
아들은 잘먹고 잘사는데 집고처 달라고 슬쩍 뛰운건 아닌지모르지만
분명 집이 다 되가지 고치던가 새로 사던가 하라는 뜻 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저는 .. 아버지집을 고처드리는 거 자체가 참 눈물납니다
어머니 살아계실때 강원도 정선 그 산꼭대기 집에서 영하 20도 이하로 떠러지는데 밖에서 물을 아궁이 불때서 데워서
우리를 세수 씻기고 학교를 보냈습니다.
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한 한시간 정도 걸립니다.
밥도 밖에서 불때서 반찬도.... 그러나 밑에 동네로 이사오고나서도
이사온집도 큰집 이었죠.
수리비 500만원 아까워 집수리 안하고 예전 살던집보단 조금 낫지만 그상황 이었죠.
나이들수록 아버지가 살아계신게 그냥 의지가 됩니다.
따로 살아서 연락도 자주 못하고
어쩌다 전화해도 별 할말없이 끊어버리곤하지만
일년이면 두번이라도 찾아가서 뵐수있다는것이
엄청나게 큰위안입니다.
만약 아버님이 안계시다는건 생각하기도 싫으네요...
나이가 들수록 아버님의 존재가 어머니보다 더 크게 와닿습니다.
가끔 가서 대화를 해보면
ㅜㅜ 정말 앞뒤가 꽉 막히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사시는분 갔습니다.
하지만 신기한건 동네 친구분들한테는 술을 꾀 잘사십니다
다만 집에서 돼지고기와 소주만.
절대 식당에선 안삼 비싸다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한말이
내가 먼저 죽으믄 니들 아버지 때문에 너들 다 아떡하냐
저 화상 어떡하냐
하고 걱정만 하시다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뜨셨네요
항상 하던말이 니들 아버지 보다 내가 오래 살아야 할텐데 하고 말씀하셨는데
절대 그게 안되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살아온 저도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참 섭섭하네요.
연락않고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생각해보라시며...
힘내세요~
제가 태어나 살아온고향이 지금 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입니다.
저는 그곳 어르신들에게는 불효자지요
그들은 제맘을 모를 겁니다. 어찌됬건 아버지를 혼자 촌동네에 내버려두고 저는 시내 사니까요
우리 마누라도 우리 아버지랑 갔이 살자 하면 알아 누울지도 ㅋㅋㅋㅋㅋ
큰아들은 고등학교 까지 졸업시키고
군대를 가고 대학은 안갔습니다. 저도 대학은 안보낸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그러십니다
우리집에 대학간사람 하나도 없다
너가 합격만 한다면 내가 무슨수를 써서라도 대학 보낸다 라구요
우리 어머니 인생에 철학은 항상 이래요
일은 열심히 해라 하지만 돈 쓸때 펑펑 써라
난 어디가서 돈없다고 궁상떠는거 그거 보기 실더라
아버지를 옆에 두고 아버지때문에 생긴 어머니에 마인드 아닌가 싶습니다.
어렸을적 집에 상수도가 없어서 물을 길어다 먹었습니다
동네에 상수도가 들어 온다고 온통 좋아서 상수도를 놓는데
우리 아버지는 안놓으신다는 겁니다
어머니가 매일 품팔이 해논돈 25만원을 상수도 놓고
아버지 한테는 큰형이 놔 줬다고 거짓말을 하셨습니다
물은 샘에서 길어다 먹다 상수도 놓으니 이건 뭐 얼마나 좋던지
저두 그 드라마 봤는데..
하여긴 비슷할겁니다
우리 아버지가 더 폭력적이고
집수리 먹는거 즐기는쪽으로는 10원짜리 하나 안썼다는거 그거 ㅋㅋㅋ
1985년 정도에 처음으로 냉장고를 샀는데요
이것도 어머니가 아버지 한테 거짓말 치고 어머니 돈으로 사신겁니다
밭일해서 모아논돈으로요.
여자들은 냉장고 없으면 여름에 반찬걱정이 대단하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으니까요. ㅎ ㅎ ㅎ
극단적으로 말씀 하시는 분들 보면..씁쓸 하기도 하구요
저도 나이 많으신 아버님 중학교때 돌아가셔서 지난 세월이 어언 35년인데..생각보다 빈자리 크더군요...
위에 부채살님 댓글이 가슴에 참 와닿습니다
미운정도 정 이라 하지 않나요...지금까지 잘 버티며 사셨는데 바라실거 뭐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이죠...
그 이상도...그 이하도...그렇게 생각 하시면 조금 위안이 되실래나?
집사람에겐 말 안했지만 후배녀석이 집을 새로 짓는답니다
그럼 그녀석 살던집을 전세나 월세를 말해 볼참입니다. ㅜㅜ
저도 딸 키우는 입장에서 속이 막 부글부글 끓어오네요. 저도 항상 부족하고 가난하게 자라왔지만 ... 아...정말,,,
옛날 사람들이 보통 못배우고 무식해서 참...
님 힘내시구요! 저 좋은날 올겁니다.
오지 말라고 합니다
집이 챙피해서요
그때는 그럴때잔아요
그때 어머니가 집수리 하자고 했을때
제 맘속엔 집수리 집수리 ㅜㅜ
결국은 아버지가 안했습니다.............
돌아가실때 장모님 손 꼭 붙잡고
침대매트리스 밑에 그동안 용돈드린거 모아놓으셨다는 100 여만원 꺼내주시면서...
"여보... 내가 그동안 정말 미안했소... 나 가면 이제 훨훨 날아..."
라고 하시더라는....
그래도 마지막 그 말한마디가 몇십년의 한을 녹여버리는...
그게 가족이지요....
애잔하긴 하지만
몇십년 잘해주고 돌아가실때 정떼는 한마디
이게 낫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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