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자신있게 베프라고 할 수 있었고, 대학 시절에 서로 학교가 달라져도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었죠.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서로의 연이 멀어지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완전히 인연이 끊어져서 간간히 소식을 건너건너 전해 듣고만 있었는데
우연히 어제 지인에게 연락을 들었습니다. 그 녀석이 뭔가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상당히 충격을 받고, 문득 그러다가 그 친구와 제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에는 그 녀석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세상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얕은 지식과 가치관으로 내가 가장 옳바른 인격체라고 판단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아마 그 시기에 요즘 문제로 떠오른 퐁퐁이니 페미니 혐오니 하는 것들을 안주거리처럼
늘어놓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숙하고 얕은 생각들을 그 친구와 논하며 마치
제가 시대의 지성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했었죠.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마냥 편하게 흘러가지는 않기 마련이죠.
당시에는 뭔가 내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굴었어도, 현실은 냉정하기 그지 없으니 저는 구직에 나서서
취업을 하고, 그리고 적당히 사람들을 만나 보다가 그나마 무난하다 싶은 사람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으로 기억해요. 그 친구와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던 시점이.
권위적인 아버지와 갈등이 심해서, 생활을 해야했기에 젊은 시절 바라던 꿈과 좀 다른 무난한 직장에 취직을 했고
역시나 집안의 간섭이 싫어서 독립을 하고, 결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 친구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되게 한심한 현실 타협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저 역시도 저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으니깐요.
가부장제의 억압이 싫다면서도, 다시 결혼이라는 방식으로 비슷한 굴레에 들어가고
일신의 자유를 포기하고선 누군가에게 매여 살아야하는 삶을 살고, 단기적인 경제적 원인으로 조직 사회에 얽매이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저 역시도 묘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오히려 자유롭게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편집 관련 업무로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비혼을 선언하고, 집안에서 독립하는 것에 결혼이라는 타협이 아닌 곧바로 자취를 시작하는 그 친구가 더 멋져보였죠.
그 당시 유행하던 SNS에서 나름 업계에 인정받는 신성으로 떠받들어지던 그 친구가 참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그건, 결혼 이후 시작된 본가와 처가의 갈등,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대립,
거기에 삶을 너무 힘들게 하는 아내와의 갈등, 그리고 잘 풀리지 않았던 직장 생활이 더해져 점점 삶을 지옥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극단으로 몰아가더라고요. 그런데 그때쯤, 그 친구가 저를 손절했습니다.
아직도 이유는 잘 몰라요. 그때는 그 친구가 주변에 도움으로 본격적인 자기가 바라던 꿈을 시작하게 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산부인과에서 망연자실하게 벽에 머리를 박고 있던 시기였죠.
그때 온 연락을 좀 나중에 답하겠다고 하자, 그 친구는 저를 손절하더라고요. 그 후로 다시는 그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의 SNS를 보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보기에 저는 조금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자기 격에 맞지 않는,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 뭐 그런 존재였나 봐요.
많이 슬펐습니다. 여러번 사과도 문자로 보내봤지만 다시 연락이 오는 일은 없더라고요.
그렇게 일생에 절반은 베프라 생각한 친구를 잃었고, 그럼에도 남은 생은 이어졌습니다.
되게 고된 시간이더라고요. 이어지는 사람들의 갈등. 사회에서의 실패와 시련.
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실감하게 만들고 초라해지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났죠.
그런데, 조금 신기하더라고요. 세월이 무섭기는 한걸까요?
이제는 제가 젊은 시절 그토록 혐오하던 중장년이 되고 나서 보니,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내 마음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나는 남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생각했고, 나와 내 주변만이 특별하다 생각했죠.
근데, 살아보니 세상은 제 허세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내키던 미련한 노력에서 조금씩 바뀌고
내가 하찮게 여기던 남들의 보편적인 삶은 결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죽을 것 같은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고
나는 특별하지 않고, 내 주변에 특별한 사람은 오히려 내가 하찮게 여기던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SNS에서 이름을 날리는 셀럽들, 사회에서 만난 허세꾼들, 이모티콘만 잔뜩 날리는 랜선친구는 아무 의미도 없고
결국 내가 힘들고 괴롭고 시련에 닥쳐 주저앉았을때,
나를 위로해주고 내 방패가 되어주는 사람들은 내 가족 밖에 없더라고요.
살아보니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권위적이던 아버지는 자기가 겪은 고됨을 자식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뿐인 소심한 분이셨고
무기력해 보이는 어머니는 집안을 버티던 기둥이자 방향을 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닻이셨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혐오할 거리를 찾고, 실제로 몇가지 찾아내고선 내가 맞았다고 자신하며 미워한 아내는
그저 맞벌이 열심히 하고, 종종 친구 말을 듣고 허세나 질투는 부려도 그걸 자기가 지르지 않고 가족만 생각하는
저보다 더 현명하고 제 등을 지켜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하며, 한숨을 쉬던 아이들은 제 삶에 이유가 되어 있더라고요.
키워보니 알겠더라고요. 인생을 살면서 자기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는 것은 대가가 필요없고,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거기다 지난 2년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격리되고, 주변에 어르신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하찮기 그지 없는 인연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시기에, 오히려 제게 남겨진 삶의 인연들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제게 주어진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갈등도 없이 훈훈하게 온 가족이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와서
삶이 이렇게만 흘러가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감하려는데, 날아든 소식에 마음이 많이 놀랐습니다.
건너건너 지인을 통해서 그 친구의 소식을 듣고는 있었습니다.
자기가 주장한대로 비혼이고, 부모님이 얼마 전 돌아가셔서 남은 가족은 없고, 자신만만하던 업적은 되게 허망하게
흐지부지되어 세상에 잊혀졌고, 지금은 속한 곳에서도 갈등을 빚어 뛰쳐나와서 개인사업자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물의를 많이 일으키는 발언을 하는 트위터 어그로들의 말에 찬성하고
거기에 말을 보태는 것으로 생에 낙으로 삼고 있더라고요. 종종 고교시절의 저에 대한 조롱도 나오데요.
트위터만 보면, 지금의 삶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가장 최근 트윗까지도요.
그런데, 왜 그 친구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다행히도 세상을 떠나진 않았고, 원인이 뭔지는 지인도 만나보지 못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저와 완전히 다른 삶의 길을 선택한 그 친구에게 저는 묘한 회한과
동시에 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좋거나 나쁜 것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살아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뭔가를 얻으려면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은 허세가 아닌 고된 노력과 희생이고
내 주변에 남는 것은 편한 사람이 아닌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안고 가야 할 사람들이고
생에 필요한 것은 내 삶의 만족과 에고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헌신함을 통해 돌려받는 애정과 감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왠지 그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어 그 마음을 적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친구에게 이런 제 마음이 전해지고, 그때 닫아버린 마음을 열기를 소망합니다.
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되네요
우리는 옳은 길이다 생각하고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미생들일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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