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쫄지 마라, 아들?딸
--『성폭력 무고죄로 황당미씨를 고소합니다 ?거짓을 용인한 사법권력은 어떻게 한 가정을 파괴하는가』에서
내가 무고를 당하고 교도소까지 다녀온 분노와 억울함을 책을 통해 세상에 알리겠다는 나의 계획을 들은 아들 딸이 경악했다. 아빠가 갑자기 구속되면서 우리 가족이 치른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고 말하는 거냐고. 고소녀가 민사소송을 걸어 1억 가까운 돈을 뜯어갈 때 그걸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작은 꿈을 간직한 통장,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인일자리사업에 나가 번 돈을 다 털고도 모자라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야 했던 그 황망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다시 고통의 풍파를 몰고 오고 싶냐고.
(중략)
나는 아들 딸에게 말한다. 나는 사악한 거짓에 죽임을 당했다. 사악한 거짓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가족이 파괴되었으며 모든 걸 잃고 전과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썼다. 여기서 아무런 일 없었던 듯 산다는 건 그나마 간신히 숨쉬고 있는 스스로를 거듭 죽이는 것이다.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명백하다. 내가 그 끔찍한 4년 7개월여를 시체처럼 견디고 살아나와 다시 숨 쉬는 사람이 맞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생명을 일세우기 위해 최소한의 행위를 해야 한다.
솔직히 나도 두렵다. 당연히 합법의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행위하려 하나 권력을 가진 저들이 악의를 품고 다시 덤벼들고 나를 철창에 던져 넣을까 봐 두렵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사랑하는 너희가 또다시 고통을 겪을까 봐 두렵다. 어떤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을 넘어, 나서서 조롱할까 봐도 두렵다. (나서서 명백한 거짓말을 했던 고소인의 변호사, 그가 재판부에 제출한 뭔 공대위(공동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피고측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견서 같은 게 반복될까 봐도).
그래도 나는 나다. 죽은 내가 아니고 살아 있는 나라면 마땅히 최소한의 행위를 해야 한다. 사악한 거짓을 향한 진실의 외침을, 사악한 거짓이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고 선언하고 떨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근거다.
나는 아들 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넨다. 아빠를 조금만 이해해 줄 수 없겠니.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살 수는 없단다. 합법의 테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도 안 되겠니. 그게 고독하더라도, 어떤 승리 같은 거 얻지 못해도, 한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존엄성은 지켜야 하지 않겠니.
미안하구나,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낼 수 없어서. 그런데, 아들 딸아, 너무 쫄지 마. 대한민국이, 설마 대한민국이 그렇게까지 형편없을까. ... 그런데 혹시라도 사실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어떤 권력자들이 그렇게까지 형편없다면, 그래서 또다시 나와 우리 가족의 고통이 반복된다면? ... 혹그렇더라도, 나는 행동할 수밖에 없구나, 우선 작은 책이라도 내야겠구나.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 맞다면. 힘겹게 관 뚜껑을 밀치고 나와 숨을 쉬고 있는 생명이 맞다면, 사람이 맞다면. ... 참 미안하구나, 우리 아들 딸.
(만에 하나 아빠에게 무슨 불의의 일이 생기면 전에 말한 곳에 있는 유언장을 열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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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잘반꼭은 거짓고소, 엉터리 기소와 재판, 그릇된 판결로 2년간 감옥살이를 하였다. 『감옥 일기 ?거짓고소와 엉터리 재판을 딛고 쓰다』를 출간했다. 현재는 『가족살해범 소시오패스의 최후』라는 글과 사건의 실상과 겪은 바 부당함을 드러내려는 책 『저는 사법폭력 피해자입니다』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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