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 12월 19일에 방영된 MBC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 ‘고스톱부부’ 편의 출연자입니다. 방송이 나간 이후부터 여러 게시판에 올라온 저희에 관한 글들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매우 아프기도,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진행 중이었던 경찰조사에서 우리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었고, 그 결과로 우리의 사건을 천천히 들여다봐 줄 여유와 우리의 이야기를 관용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회의 시기가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2022년 8월, 우리 부부는 2년간의 연애를 마무리하고 서로 마음의 짐을 나눠 가지며 각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로 약속하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방송 출연을 결심하고 영상을 촬영한 10월까지, 2개월이라는 시간은 초혼인 남편이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배우는데 서투르고 미숙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숙함으로 인해 우리 아이가 힘들어질 것을 우려하여 저는 남편을 아동학대로 신고하였고 이에 남편 역시 올바른 양육방식을 찾고자 방송국에 출연을 의뢰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어떤 점을 불편해하시는지, 어떤 걱정을 하고 계시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남편에게 “아이가 싫다고 하면 멈춰야 한다.” “아이가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괴롭힘이지 장난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해 왔었고 남편 역시 그 부분은 인정하였지만, 워낙 약 올리거나 놀리는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올바른 자녀 양육에 대한 방법과 더불어 부부의 갈등 해결을 위해 마지막 선택으로 방송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일반인인 우리 부부가 사적인 일상을 다 공개하고 개인정보까지 노출하며 공중파 방송에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 절대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거면 헤어지지, 방송까지 뭐 하러 나와”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삶의 모든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듯이, 헤어짐보다는 더 최선인 변화와 노력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하루빨리 모든 갈등을 끝내고 싶었고 부부의 행복과 더불어 누구보다 아이의 행복을 원했기에 이 모든 위험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2022년12월19일 이후에 우리 가족은 행복한 가족이 아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동 성추행범’ ‘소아성애자’ ‘성추행 방임자’ 등 기타 등등의 낙인과 함께 대한민국의 온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으며 범죄자 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영상 중 남편이 아이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GIF파일(움짤)로 재가공되어 유포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아동성추행이라는 이름으로 확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정 부위를 확대하고 특정 행동들을 반복하여 짜깁기하여 만든 움짤이 돌면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전국의 맘카페를 중심으로 남편을 아동성추행으로 신고하자는 게시글들을 올렸습니다. 신고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며 신고하기 동참을 요청하는 글들로 인해 경찰서에 수많은 신고가 들어왔고 MBC시청자소통센터에도 2,900건이 넘는 민원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신고 동참을 요청하는 글에는 이런 글도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성폭력으로 신고했어요. 엄마도 성폭력방임으로 같이 처벌받아야 해요. 계부 돈으로 살면서 딸을 성노리개로 제공하는 포주랑 뭐가 달라요? .”
이후 MBC에서는 해당 장면이 제작진 의도와 달리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GIF 파일로 가공되고 유통되는 것을 막고자 해당 장면을 삭제하였고 그로 인해 그 움짤이 본방송의 영상인 것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남편이 ‘발기하였다.’며 바지가 말린 남편의 특정 부위를 확대하여 캡처하거나 아이와 남편의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교묘하게 확대 캡처하여 반포시키는 일도 발생하였습니다. 그 캡처 사진 밑으로 사람들은 온갖 수치심을 유발하는 말과 조롱의 글을 써 내려가며 우리 가족을 모욕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였기에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고자 용기를 내어 큰 결심을 한 남편을 사람들은 ‘아동 성추행범’으로 낙인을 찍고 마녀사냥하며 아이의 상황을 걱정하는 척 모든 상황을 선동해 나가는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재혼가정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을 더해 새아빠와 의붓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변질시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수많은 기사가 쓰이기 시작했고 대부분 기사의 메인 사진에는 재가공된 움짤의 캡처 사진이 그대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기사 밑에는 진실을 보려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 낸 가족을 향한 모욕과 비난이 수도 없이 달렸습니다. 사람들의 상상이 만들어 낸 자극적인 이야기들 속에 너무나 소중한 우리 아이는 성적묘사의 대상으로, 자극적인 소재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딸이 있는 걸 알고도 소개로 만났단다. 이게 뭘 의미하냐. 이대로 두면 양부의 아이를 임신시킬지도.”
“친모가 아이를 소아성애자 계부에게 헌납했다.”
“어린이 포르노영상.”
“그 남자에게 니 딸은 교미대상으로 밖에는 안보여.”
“그 여자분 태교도 전 남편원망하면서 했다던데 아이도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그 원망 미움이 베이스이고 아이랑 놀아 줄 사람도 필요하고 경제적 뒷받침해줄 사람 필요하고. 그래서 남자가 아이 상대로 성욕 풀게 내비두고.”
“어쩌면 이미 삽입까지 끝났을지도. 불쌍한 것.”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이야기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랑을 주며 목숨같이 지켜온 우리 아이는 ‘불쌍한 아이’가 되어버렸고 아이의 안위를 염려하는 척, 아이의 불행한 미래를 예단하는 잔인한 댓글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제 삶의 작은 희망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이혼을 안 할 거면 차라리 그냥 애를 고아원에 보내시든가 .”
“저 아이는 커서 남자도 제대로 못 만나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상담소를 전전할거구.”
“아이 신원 털리는 것보다 성폭행 안 당하는게 더 중요하다. 미래 아이의 자살여부까지 고려해야 하냐?.”
묻고 싶습니다. 아이를 걱정한다면서 7살 아이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모욕적인 말과 성적묘사의 댓글들을 도배하고, 아이를 걱정한다면서 악의적으로 짜깁기 된 움짤과 사진들을 생산하고 퍼 나르는 당신들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것이냐고.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고 그 가족들을 모두 다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친아빠가 아닌 새아빠가 아이에게 애정을 갖는 것을 ‘소아성애증‘으로 매도하고 편견 가득한 색안경과 시선으로 ‘정상 가족이 아닌 문제가족’으로 낙인찍고.
이혼녀가 재혼했다는 이유로 “남자 없으면 못 산다.” “남자에 미쳐서 저렇지.” “먹여 살릴 남자가 필요했나 보다.”라는 구닥다리 식 편견으로 여성의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비하하고, 딸이 있는 여성은 절대 재혼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처럼 딸과 엄마 모두를 성적 대상화하며 ‘1+1 결혼’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힘 있는 자들은 조금씩 자신들을 방어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힘없는 우리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인권과 자매애를 외치던 가까운 사람들조차 외면하고 구경만 하다가 나중엔 선을 긋고 등에 칼을 꽂는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고립되었고 그렇게 사회적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언론이 퍼 나른 이야기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우리의 삶이 너무 쉽게 무너져 내렸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젠가는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회가 구성되지 않으면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되돌려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죽음이라는 단어를 되뇔 만큼 저는, 우리 가족의 상태는 이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심각한 대인 기피증과 스트레스 등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들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2023년 2월 초에 짧았던 혼인 관계를 해소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 여전히 우리 아이에게 ‘친족 성범죄 피해자’ 및 ‘가해자들의 자녀’로 억울한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23년 8월, 9개월에 걸친 아동성추행사건의 경찰과 검찰조사가 모두 ‘무혐의’로 끝이 났습니다. 스마트 국민제보로 들어온 민원 사건이었지만 워낙 이슈가 되는 관심사건이었기에 경찰에서도 철저한 조사와 검찰의 검토를 이야기했고 우리는 그 뜻에 따라 성실한 자료 제출과 조사에 임했었습니다. 그 결과 남편은 경찰과 검찰 모든 단계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길었던 수사도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또한 방송 녹화 이후에 전문기관 두 군데에서 실시한 우리 아이의 전체적인 종합심리검사에서 학대나 성추행을 나타내는 의미 있는 해석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 가족은 하루빨리 명예를 회복하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힘을 합하여 근거 없이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 등과 관련하여 형사고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가족을 대상으로 향후에 발생하는 불법행위와 관련하여서도 함께 법적으로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입니다. 그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나 증거 없이 방송의 단편적인 부분이나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편집본만을 보고 우리 가족에 대한 허위 사실을 게시하거나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 등은 이제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렸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침묵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의 주장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수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재생산되는 허위 사실과 2차 가해로, 침묵만으로는 이 사건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 각각의 명예를 회복하고 더 이상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허위 사실에 대한 유포를 자제해 주길 다시 한번 요청합니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