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米壽)를 맞아 자신의 평생 연구를 집약한 ‘한국경제사’ 출간을 앞두고 있는 안병직 교수는 “학문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밀정’ ‘일진회’ 같은 단어를 동원해 윤석열 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성향 인물을 임명한 것이 갈등의 도화선이 됐다. 8·15 광복절 기념식이 따로 열렸고, 정치권에선 낯 뜨거운 친일 공세가 재점화됐다. 뉴라이트(new right)가 뭐길래? 그 사상적 뿌리이자 ‘배후’라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미수(米壽)의 경제학자는 “가치와 사실이 구별되지 않고 혼효된 권선징악적 역사관이 판을 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극우도, 친일도 아니다
-뉴라이트가 무엇인가?
“‘강철서신’의 김영환 등 친북 공산주의 혁명 운동을 하던 이들이 북한 주민의 노예적 상태를 목도한 뒤, 2005년을 전후해 자기 반성의 일환으로서 출발한 운동이다. 그 이론적 배경에 1980년대 말부터 내가 전개한 ‘중진 자본주의론’이 있어 ‘배후’라고 하는 듯하다.”
-중진 자본주의론이란 무엇인가?
“세계사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은 종언을 고하고, 한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가들(NICs)이 자본주의 발전을 선도할 것이라는 이론이다.”
-안병직은, 저개발 국가는 중심부 제국주의 국가들의 착취 탓에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종속이론,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론에 기울어 있던 학자였는데.
“1970년대 말이면 한국 자본주의는 붕괴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고 무도한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는데도 자본주의가 살아나더라. 1986년엔 한국의 국제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며 승승장구했다. 도쿄대 교수로 2년 가 있으면서 한국을 비롯해 대만, 싱가포르 등 신흥 공업국 경제를 다시 들여다봤다. 후발 저개발국도 선진국이 몇 백 년에 걸쳐 축적한 기술과 제도, 자본을 들여와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중진 자본주의론에 그때 도달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도 그 무렵인가?
“밤잠 안 자고 북한 경제를 연구하며 일본에 와 있던 북한 지식인들과 재일 동포들을 만났다. 그 결과 북한은 공산주의도 뭣도 아니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노예 체제라는 걸 확인했다.”
-일본에서 돌아와 ‘낙성대 경제연구소’를 세웠다. 그곳 출신 학자들이 뉴라이트의 주축인데 요즘 ‘극우’로 비판받는다.
“뉴라이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찍은 낙인이다. 극우가 되려면 부르주아 독재, 백색 독재를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본래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뉴라이트는 자유주의자로 변신했어도 사회주의적 평등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뉴라이트가 이승만, 박정희를 우상화한다고도 한다.
“북한의 실태에 눈뜬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립 즉,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1960년대 이후 경제 발전이 한국의 자립과 발전을 이끈다는 것을 논증하는 데 목표를 두게 된다. 한미 동맹의 주역인 이승만과 고도성장을 이끈 박정희를 연구하고 재평가하는 건 당연하다.”
-선생은 ‘친미와 친일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힘’이라는 말도 했다.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저개발국의 경제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개탄스러워 해본 은유다. 우리의 근대는 자생적으로 발전해 온 게 아니다. 근대화 세력은 최소한 친일적이거나 친미적이었다. 우리 몸을 다 도려내기 전에는 친일·친미적 요소를 없앨 수 없다.”
지난 8월 15일 서울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 주최로 열린광복절 기념식에 이종찬 광복회장이 입장하고 있다. 이 회장 뒤로 임시정부 8인의 행정수반 이름이 적혀 있다. /뉴시스
억지와 왜곡이 낳은 소모적 논쟁
-광복회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다.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니냐’고 말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게 왜 문제인가. 일제시대의 조선인 호적은 대한제국기의 호적을 계승한 것이 아니고, 일본 호적의 연장 선상에서 작성된 것이다. 그래서 만해 한용운은 호적 신고를 하지 않았고, ‘당신을 보았습니다’란 시에서 ‘나는 민적(호적)이 없습니다’라고 통곡한 것이다.”
-광복회는 ‘대통령이 일제의 식민 지배가 불법 무효라는 기조를 분명하게 밝히라’고 한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은 당시 세계 각국이 인정했다. 조선 왕실도 일본의 작위를 받아서 호의호식했다. 현재의 논쟁은 반일 운동의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일본의 식민 지배는 정당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런 억지와 왜곡이 소모적 논쟁을 낳는다. 사실과 가치는 구별해야 한다.”
-안병직의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고 비판받는다.
“일제시대에 관한 연구는 일제의 정당성 여부를 논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일제시대에 사회경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의 일본화’ 정책을 실시하려 했기 때문에 근대적 제도와 기술을 도입하고 투자해 조선을 근대화했다. 식민지 체제가 붕괴하자 독립된 한국 사회를 건설할 기반이 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와 식민지 사회 간에는 강력한 연속성이 있다. 단절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광복회는 뉴라이트가 독립운동의 의미를 지우려 한다고도 주장한다.
“무함(誣陷)이다. 그 어려울 때 독립운동 하신 분들의 노고를 모르고 어떻게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할 수 있나. 1948년 건국의 정신적 지주는 독립운동이었다. 독립운동을 부정하면 건국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나 독립운동이 건국은 아니다.”
-뉴라이트는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격하하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던데.
“뉴라이트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한 사실이 없다. 독도를 우리 땅이 아니라고 한 일도 없다.”
-’테러리스트 김구’를 출간한 정안기는 낙성대연구소 출신 아닌가?
“가끔 낙성대에 왔지만 내 제자는 아니다. 그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쓰는 데에 나는 반대했다. 학문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학문의 생명은 객관성인데 그의 관점은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김구에 대한 안병직의 입장은 무엇인가?
“김구 선생이 해방 이후 건국 과정에서 실수한 것은 있지만 그의 도덕성과 애국심에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지사 중의 지사 아닌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및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독도 선동은 자해 행위
-수제자인 이영훈 교수의 독도 발언도 지탄받았다.
“이영훈은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우리 학계가 제시하는 자료가 객관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게 내 땅이다’라고 주권 선언을 하고 독도를 행정적으로 관리한 자료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 없이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들이 국익을 해치고 있다. 생선을 물고 있는 개는 짖어선 안 된다. 엄연히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땅을 분쟁지라고 떠들 필요가 있나?”
-민주당은 ‘독도 영유권 부정 땐 내란죄로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가 영토 문제를 말로써 해결하나? 독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아무리 집권하고 싶어도 자해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거나 친일 행위를 찬양한 사람은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법안도 만든다고 한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다. 멀쩡한 독립국가에서 무슨 이익을 추구하려고 매국 행위를 하나. 친일파, 친미파로 낙인 찍는 선동은 그만하자.”
-나치 청산을 한 프랑스처럼 우리도 친일파 처리를 단호히 했다면?
“해방 직후 독립운동 세력이 민족 반역자로 단죄한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독립운동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슨 권리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친일파로 몰 권리가 있나. 그리고 일제시대에 성장한 지식층을 전부 친일파로 단죄한다면, 해방 이후 누가 국가 경영을 맡을 수 있었겠나. 친일파를 청산했다는 북한은 현재 어떻게 돼 있나.”
미수(米壽)를 맞아 자신의 평생 연구를 집약한 ‘한국경제사’ 출간을 앞두고 있는 안병직 교수는 “학문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바람 소리에 놀라지 마라
-현행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는 민중운동사 중심의 서술이고, 정치·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근현대사를 쓰니 도덕적 재단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대의 역사학은 편년체(編年體)나 기전체(紀傳體)와 같은 역사 서술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을 알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사학계엔 가치와 사실을 구분하는 사회과학에 관한 교육이 없다. 가치와 사실이 뒤섞인 권선징악적 역사학이 판을 친다.”
-우리 교과서는 너무 아름답게만 꾸며져 있다고도 했다. 침략에 분노만 한다고 했다.
“한국사의 방법론으로 ‘실증주의 비판’ ‘식민 사관 비판’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과학적 방법의 하나로 도입한 실증주의를 비판하면 역사 연구가 이념 지향적으로 흐르기 쉽고, 이념 지향적 연구는 가치와 사실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 또한 ‘식민 사관 비판’은 대한제국이 스스로 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눈을 감는다.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다면 대한제국이 자력으로 근대화할 수 있었다고도 주장한다.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주장하니 학문다운 학문이 성립할 수 있겠나.”
-왜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들로 친일 소리를 들으시나.
“풍성학려(風聲鶴?).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같은 하찮은 것에도 놀라는 것이 우리 성향이다. 그래서 나는 박정희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안 하면 경제 발전이 불가능한데, 누가 봐도 매국노 소리 들을 일 아닌가. 권위주의적 정부가 아니고서는 그런 어려움을 돌파할 수 없었다. 박정희 독재를 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 조만간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찬물을 끼얹는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무시하면 된다.”
-대통령이 ‘검은 세력, 반국가 세력이 암약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은?
“허허! 그런 말씀을 하셨나?”
-대통령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질 않는다.
“나처럼 누구 눈치도 보지 않는 미친놈을 참모로 써야 한다, 하하!”
-오늘 인터뷰로 또 비난받으실 텐데.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
☞안병직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부산공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1965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관점에 서 있던 좌파 진영의 대표 학자였으나, 1985년 ‘중진자본주의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정통성을 인정하게 됐다. 1987년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세웠고 2006년 뉴라이트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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