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사고(三豊百貨占 崩壞 事故)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건이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죽었으며,
주변 삼풍아파트,서울고등법원,우면로 등으로 파편이 튀어 주변에 있던 행인들마저 변을 당했다.
[사고 전 삼풍백화점의 모습]
[사건 개요]
사건개요는 삼풍백화점이 설계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87년 설계당시 삼풍백화점은 삼풍상가라는 이름으로 서초동 삼풍아파트 대단지의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있었다. 설계당시에는 지하 4층~지상 4층의 건물이였다. 하지만 거의 다 지어졌을 무렵 삼풍건설산업의 회장 이준은 당시 시공사인 우성건설에게 용도를 백화점으로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But, 백화점으로 용도변경시 건물약화를 우려환 우성건설이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이준 회장은 계약을 파기하고 삼풍그룹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에 변경을 지시했다. 하지만 변경시 반드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그러나 당시엔 이 부분이 무시된 채 공사는 강행되었다. 또한 삼풍백화점은 준공검사없이 가사용 승인만으로 개점하였다.개장후 9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승인을 받았으며,1994년 10월에는 기초부분인 지하1층에 구조변경 공사를 하고 1달뒤에는 위법건축물 판정까지 받았다. 즉 삼풍백화점 참사 자체가 '애초에 예견된 인재' 이다.
[붕괴를 촉진시킨 요인]
냉각탑 : 원래 옥상의 슬라브는 6cm 두께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방수 처리를 하면서 9cm를 더 두껍게 하였다. 그리고 냉각탑을 원래는 지하에 설치하려 했으나 지하공간 확보를 이유를 이유로 옥상에 설치하게 되는데 구조계산도 하지 않았다. 냉각탑을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건물 전체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개장 초기부터 건물 전체가 미세한 진동을 울렸던 것도 그때문이였다. 그런데,냉각탑 가동으로 인해 30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던 삼풍아파트에 소음 문제가 제기되자 경영진들은 1993년 8월 에어컨을 북관 서쪽 우면로 방향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 이동 방법이 문제였다.비용 절감이란 이유로 에어컨을 옮길 때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굴림대에 싣고 ㄷ자 모양으로 밀고가는 최대의 실수를 일으켰다. 그결과 건물전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붕괴 2개월 전
1995년 4춸,북관 5층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5월에는 이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옥상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붕괴 하루 전
6월 28일, 삼풍백화점 A동 옥상모습.참고로 기둥이 올라온게 아니라 옥상이 내려낮은 거다
붕괴 당일
6월 29일. 균열에 대한 대책을 짜려 했던 때는 사고 당일이였다.그들은 이날 5층에 있었던 일을 보고 비상임을 느끼게 되었다. 오전 9시 삼풍백화점 5층 식당 춘원 주인 김서정씨가 '바닥이 돌출부분이 2m가 생겼고 천장이 조금 내려앉았다.빨리 가서 보라'는 긴급전화를 했다. 그들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하고,5층 기둥이 20cm가량 금이 가 있고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아 있었다. 춘원과 맞붙은 우동집에선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나왔고 냉면집 미전의 천장도 가라앉고 있었다. 붕괴된 북관 4층 상품의류부 직원도 4~5층에서 사고당일 뚝뚝,드르륵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사고당일 오전 식당 모습이다.기울어진것이 한눈에 보인다.
천장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된다.
폐쇄
이한상 사장은 오전 11시쯤 이영길 시설이사와 건축과 이완수와 함께 5층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1시간 뒤 우동집과 냉면집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5층 식당가 영업이 전면 중지된다. 삼풍백화점 측은 낮 12시,건물설계 회사인 우원건축에 연락하고,옥상의 에어컨 가동과 5층 입주업소에 대한 가스공급을 중지시켰다. 에어컨의 전원을 차단한 상태였고 당일은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였다. (생존자들은 당시 내부가 아주 더웠다고 증언)
오후 1시
삼풍 경영진들은 '영업중지 & 강행'을 놓고 고심했다.당시 5층은 이미 폐쇄됬고 4층 귀금속 매장도 철수한 상황이였다.하지만 경영진들은 폐쇄하지 않고 정상영업을 하는 하에 '칸막이를 친 뒤 신속하게 보수공사를 하라'고 기술자들에게 말했다.
오후 3시
붕괴 2시간전. 임형재 소장은 건물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생겼으니 백화점을 폐쇄하고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학수 구조기술자가 신공법으로 보수하면 위기를 넘길수 있다고 말하자,영업을 강행하게 된다. 이후 삼풍측은 중앙홀 2층의 행사를 모두 스포츠센터 1층에서 영업하고 2층~5층은 통행을 금지시켰다.
붕괴 전 중앙홀 사진
오후 5시 40분
붕괴 17분전. 경영진들은 붕괴가 시작되는 삼풍백화점에서 대피한다.
오후 5시 41분
붕괴 16분전. 백화점 붕괴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중앙홀도 붕괴가 시작된다. 이상함을 느낀 중앙홀과 백화점 2층직원,손님들은 일부 대피하였으나 나머지 고객은 영문도 모른채 쇼핑 중이였다.
오후 5시 45분
삼풍측은쯤 1층의 백화점 4각 구간에 뼈대를 세워서 가까스로 1층 층하현상은 막았으나,1층 붕괴가 멎자 5층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5시 46분
생존자들은 에스컬레이터 1층~2층 구간이 휘는것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5시 50분
직원들이 5층에서 대피명령을 내린다. 모두 긴급히 대피하라는 소리였고,건물은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고객들은 영문도 모른채 대피를 시작하나,상당수는 듣지 못했다.
5시 57분
결국 오후 5층바닥의 가장약한 기둥 2개가 무너지고 그 기둥이 옥상까지 끌어당기면서 본격적인 건물붕괴가 시작된다. 이때 쏟아져 내린 백화점 5층의 잔해들과 콘크리트들은 4,3,2....층을 차례로 깔아뭉개기 시작했고,20초 후 건물은 지하 4층까지 완전하게 매몰되며,1,500명의 사람들은 잔해속에 파묻히게 된다.
인명피해]
사망자 : 502명 (남 106명/여 396명/사망확인 472명/사망인정 30명)
실종 : 6명
부상자 : 937명 (대다수가 신체 절단)
[재산피해]
부동산 : R/C조 총 9층 73,877㎡ 전체붕괴
건물 : 1천억 원
시설물 : 500억 원
동산(물품) : 상품 300억원,양도세 1000억원,총 피해액 3000억 원 이상.
[현재]
삼풍백화점 자리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건설된 아크로비스타라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붕괴된 백화점의 시신들
이로 인해 502명이 사망하고,937명이 부상당한다.
구조대원들이 칠흑속에 갇혔던 환경미화원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다. 서초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환경미화원들을 앰뷸런스로 옮기고 있다. 매몰자 구조작업을 빠르게 진행시키기위해 3일 오후 대형 크레인을 동원, 굴착기를 지하층 부분으로 투입시키고 있다. 자녀의 행방을 찾는 한 어머니가 서울대학교 벽에 붙은 실종자 포스터를 쳐다보며 흐느끼고 있다. 밤새내린 장마비, 건물추가 붕괴위험으로 구조작업이 중단되자 3일 오전 매몰,실종자 가족들이 강남구 서초동 교대앞 4거리에서 연좌시위를 하고있다. 합동구조대가 무너진A동 건물 지하3층에서 사체를 발굴, 로프로 묶어 B동 중앙현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대표들이 7월 3일 서울시 간부의 안내로 매몰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합동구조반이 4일 붕괴사고 현장에서 불을 환하게 밝힌채 중장비를 동원, 철야로 잔해제고 작업을 하고 있다. 군부대 구조요원들이 4일 땅굴탐사용 장비를 동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장비를 사용하고있다. (이거 사용했다는건 이제 생존자들이 없다고 추측한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사고현장에서 일하는 구조대원들에게 줄 식사를 나르고 있다. 사고현장에 봉사하러 나온 수녀들에게 컵라면을 제공받고 있다. 탄광 특수구조대원과 경찰이 7월 5일 삼풍백화점 지하현장에서 갱도를 만드는 방식으로 마지막 구조작업을 위한 통로를 뚫고있다. " 내 딸아!... 내 딸아!" 딸을 잃은 아버지가 장례식을 마친뒤 사고현장에서 꽃을 뿌리며 외치고있다. 조감도 및 분홍색으로 칠하기 전의 삼풍백화점 모습과 무너진후의 모습 (흰색 건물은 1991~1993년에 찍은것으로 추정된다. )
붕괴후 2틀이 지나서, 새벽부터 구조작업을 준비하는 군,경,소방수들.
1994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한국 방문 축하기념 이벤트를 광고하는 삼풍백화점
사고 당일날, 유독가스 누출로 구조가 불가능하게 되자 빗발치는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로 결국은 무리한 구조작업을 감행하는 소방요원들
6살때 사건인데 기억이 나네요.
이런 큰 교훈을 얻고도....나아지는게 하나도 없네요.
기성세대가 잘 못하면 젊은세대라도 잘 해야 하는데....세월이 지나면 기성세대와 똑같이......
선진국이였으면
한 2000년 정도 징역살껀데
우린 몇년이었지?
한숨만 나오네요
아....인간이란 정말이지.할말이 없네여~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안히 주무시길...
KAL기 희생자 위령탑도 같이 있는...
이준 회장을 위하여
백화점 상품들을 훔친 인간들도 많았죠...
쓰레기새끼들
악마를 보았다...
피해가 너무 커서 마음아프네용
교대역에서 내려서 그 날따라 마을버스 대신 걸어서 반포고등학교쪽으로 가던길이었는데..
과외하는집에 도착하고 곧 있으니 백화점쪽에서 큰 연기가 오르길래 불이난줄 알았죠, 게다가 그 집에서는 무너지지 않은 외벽이 보이는 곳이라 붕괴됐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갑자기 울리는 소방차, 엠뷸런스, 경찰차의 싸이렌소리 곧 이어 주변을 낮게 날며 베란다 창문을 요동치게한 헬르콥터의 소리, 그 집 전화 갑자기 여기저기서 막걸려오고.. 티비틀어보니 속보 자막으로 삼풍백화점붕괴 라고 나오고 보고도 믿기지 않은 날이었죠..
과외끝나고 그 고개쪽으로 넘어갈수가 없어서 고속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갔던 그 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집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했던..ㅡ.ㅡ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