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하던 1340년, 프랑스 선박 한 척이 베네치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선원들이 내리려 하자, 베네치아 관리와 군인들이 모여들어 막았습니다. 그들은 선원들에게 배 안에 병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내릴 수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선원들은 무려 40일간 배 안에 갇혀 있다가 겨우 상륙할 수 있었습니다. 검역(quarantine)이라는 영단어가 40일을 의미하는 라틴어 quaresma에서 유래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86년에 ‘불허온역진항장정(不許瘟疫進港章程)’을 제정하여 처음 선박 검역을 시작했습니다. ‘전염병 감염자가 탔거나 그랬을 우려가 있는 배는 항구에 진입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죠. 이 장정이 제정된 날이 우리나라 ‘검역의 날’(5.20)입니다. 1899년에는 ‘전염병예방규칙’과 ‘검역정선규칙’이 반포되어 검역 관련 규정이 더 정교해집니다. 불평등조약 체제하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정부를 무시했기 때문에 별 실효는 없었지만.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계속 늘어 200명에 육박한답니다. 4천 명 가까운 선원과 승객들의 공포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14세기에 만들어진 검역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이 배 안의 감염 의심자들을 신속히 검사할 능력도, 그들을 안전하게 하선시켜 격리할 능력도 없는 나라라는 걸 스스로 폭로한 셈이죠. 재난 대처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던 일본이 어쩌다 이 지경으로까지 추락했을까요? 신종플루와 메르스 대처에 무능력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의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듯도 합니다. 정권 담당자들의 속성이 ‘과거 지향적’이라서 처음 접하는 사태에 허둥지둥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보호복을 입지 않고 크루즈선에 올랐던 검역관이 감염된 데 대해 비난이 쏟아지자, 일본 정부는 “보호복을 입지 않는 게 규정”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자기들의 현실 판단력이 과거의 ‘규정’에 묶여 있다는 고백인 셈이죠. 아베 정권의 극우화는 주변 국가들만 위협한 게 아닙니다. 일본 사회 전체를 과거에 묶어두고 일본인들에게서 ‘새로움’에 대응할 능력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베가 자국 내 극우파의 열렬한 지원을 받아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동안 일본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는, 일본인들 스스로 잘 알 겁니다. 한때 아시아 문화의 대표이자 상징을 자임했던 일본 문화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나 만들어 운용하는 ‘정신세계’를 가진 자들은, 영화 ‘기생충’에 담긴 인류 보편의 문제의식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베 정권은 극우 이념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어떻게 부식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규제’를 감행했을 때, 일본에 무조건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한국인’이 많았습니다. 이념이 비슷하다는 점에서나 과거의 한일관계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나 아베의 동료이자 추종자들이었죠. 이런 자들이 다시 이 나라를 이끌게 한다면, 아베의 일본이 미래의 한국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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