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류업계 1위업체인 하이트진로가 바람 잘 날이 없다.
맥주 경쟁제품인 카스에서 소독냄새가 난다고 소문을 퍼트린 이가 다름 아닌 하이트진로 직원으로 밝혀지면서 체면을 구긴 것을 시작으로, 최근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서 자회사인 하이트진로음료의 갑질 문제가 보도돼 많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갑질 논란은 이게 끝이 아니다.
서울 청담동의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는 또 다른 '을'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차량을 이용해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하이트진로음료로부터 생수를 공급받아 이를 소매점에 판매하는 생수 도매업을 하던 한신상사 사장인 김현배 씨. 하지만 현재 그는 생수 대신 고물을 내다 팔고 있다.
김 씨는 "하이트진로음료와의 소송비용을 대기 위해 고물상 일을 시작했다"며 자신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김 씨가 차량에 내건 현수막에는 '사과문을 보내라, 관련자를 중징계 하라, 집을 해결하라'라는 글귀가 하이트진로를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 도대체 김 씨와 하이트진로 간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법원이 결정적 증거 채택 안해"
사실 김현배 씨는 하이트진로음료 측과 2번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한 상태다. 김 씨는 하이트진로음료의 전 직원에 제기한 사기혐의 형사소송에서 졌고, 이어 하이트진로음료가 김 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 씨는 법원의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제기한 결정적 증거가 법원에서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제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씨는 하이트진로음료로부터 생수를 공급받아 이를 전국 소매상에 판매하는 도매업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개인사정으로 사업장 명의를 친척 여동생인 박 모씨로 등록했다.
그해 7월쯤 김 씨는 3번째 음주운전이 적발돼 3진 아웃 처벌로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됐다. 김 씨가 4개월 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밖에 나왔을 때 문제가 시작됐다. 그의 사업체는 엉망이 돼 있었고 명의를 빌려 준 친척 여동생의 집은 경매로 넘어가 집에서 쫓겨난 신세가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여동생의 남편은 이로 인한 신경과로로 쓰러져 현재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김 씨는 이 모든 문제가 하이트진로음료와 이 회사의 전 영업직원인 A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A가 교도소에 있는 나를 찾아와 다짜고짜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면서 8000만원의 담보를 요구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며 거절하자 이번에는 A가 여동생에게 찾아가 담보를 요구했고 여동생도 이를 거절하자 A가 여동생 허락도 없이 본인확인서류, 명패, 필적 등을 무단도용해 여동생 집을 근저당으로 설정해 결국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A씨 등 하이트진로음료의 관련자들을 서류 위조 혐의 등으로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김 씨는 이를 형사소송까지 끌고 갔지만 법원은 A씨 등 하이트진로음료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하이트진로음료가 여동생 박 모씨 집을 근저당으로 설정한 서류가 모두 진짜라고 판정했다.
▲ 김현배 씨는 법원이 확약서에 찍힌 지장의 신원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증거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패소했다며 억울해 했다
재판이 끝나자 이번에는 하이트진로음료가 김 씨 측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김 씨는 또 패소해 결국 여동생 집이 경매로 처분됐다.
김 씨는 법원이 근저당설정 서류에 찍힌 지문의 감정 요청을 받아주지 않아 패소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근저당설정 서류 중 하나인 확약서에 찍힌 지문은 절대 여동생 것이 아니다. 이것의 진위여부만 확인하면 논란이 끝나는데 법원이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의 친척 여동생인 박 씨도 "절대 근저당설정 서류에 지장을 찍지 않았다. 하이트진로음료 A씨가 멋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확약서는 확인서면과 함께 여동생 박 씨가 자신의 집을 진짜로 근저당으로 설정하게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 중 하나다. 확인서면은 집 주인이 자기의 집을 근저당으로 설정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이고, 확약서는 이를 재확인하는 문서다.
소송과정에서 김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나왔다. 확인서면에 들어간 필적과 지장(우무인)이 여동생 박 씨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자필은 하이트진로음료 측 법무사의 여직원 것이고, 지장은 하이트진로음료의 A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 집을 담보로 설정하는 문서에 대필과 다른 사람의 지장을 찍게 하겠느냐"며 이는 명백한 A씨와 하이트진로음료 측의 농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와 하이트진로음료 측은 확인서면 대필은 관행이며, 지장을 대신 찍은 것은 당시 주방일을 하는 여동생 박 씨의 손에 기름이 묻어 있어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라며 이를 재확인하고자 확약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원은 A씨와 하이트진로음료 측의 손을 들어줬다.
김 씨는 서초경찰서의 미흡한 수사과정이 문제를 키웠다며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김 씨는 "서초서에서 근저당설정 서류의 감정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서류를 넘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확약서를 빠트렸다"며 "이로 인해 확약서 지장의 신원확인이 이뤄지지 않아 모든 소송에서 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김 씨가 갖고 있는 국과수 감정결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며, 하이트진로음료 측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김 씨는 "확약서 지장의 신원확인 좀 해달라고 경찰, 검찰, 법원 등에 호소했지만 불가 내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법의 편향성을 꼬집기도 했다.
"일본 수출 위해 생수 빼돌려"
▲ 지난 1월 20일 한신상사 김현배 사장이 서울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차량을 이용해 현수막 시위를 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음료가 김 씨의 여동생 집을 근저당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 김 씨와 하이트진로음료 측의 진술은 엇갈리고 있다.
김 씨는 영업직원 A씨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도매처인 한신상사에 무리한 담보를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당시 일본에서 후쿠시마 대지진이 발생해 생수 부족으로 한국에서 많은 양의 생수가 수출됐다. A가 내 코드(명의)로 물량을 빼내 수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규정상 물량을 더 받으려면 추가 담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동생 집을 담보로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A씨와 하이트진로음료 측은 일본 수출물량 지적에 대해 일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은 김 씨가 생수공급을 추가로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아는 대리점에서 일본 수출물량을 요청해 약 140여만원 어치를 김 씨 코드에서 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김 씨의 동의를 얻은 것이며, 이에 대한 돈은 곧바로 김 씨측에 입금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어 "일본 건은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김 씨가 추가 공급을 요청해와 이에 대한 담보확보 차원에서 여동생 집을 근저당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 가족에 진심 담은 사과하라"
김 씨는 하이트진로음료 측에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가족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본 것에 대해 사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더해 김 씨는 하이트진로음료의 서울, 경기, 인천지역 총판권도 요구하고 있다.
김 씨는 "말도 안되는 요구란 걸 안다. 그만큼 현재로서는 하이트진로음료 측과 협의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내 가족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 하이트 측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협의는 그 다음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이트진로음료 측은 김 씨와의 문제는 이미 법적으로 결론이 난 사항이라면서도 김 씨가 계속해서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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