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한국을 찾은 UFC 격투기 스타 벤 헨더슨(왼쪽)이 21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어머니 김성화씨와 함께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헨더슨은 내년 2월 UFC 라이트급 챔피언에 도전한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제2의 워드' UFC 스타 헨더슨, 어머니와 함께 한국 첫 방문]
한국 사랑 남다른 '효자 파이터' - 몸엔 한글로 문신 새기고 광복절엔 태극기 들고 입장
"내년 챔피언돼 어머니에게 새집 선물하는 게 꿈이에요"
두아들, 워드처럼 키운 모친 - 미군과 결혼했다 이혼 아픔, 세탁소 등서 하루 17시간 일해
밥·김치찌개 등 한식 먹이고 어른 보면 인사하게 가르쳐 링안팎서 예의바른 선수 정평
"와우(Wow)! 여기저기 온통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말만 들리고…. 제가 정말 어머니 나라에 온 건가요?"
21일 오후 인천공항 입국장.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는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인사를 건네자 그는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고 답했다.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눈매가 동글동글하고 친근했다.
바로 UFC(미국의 종합격투기 단체)를 호령하는 혼혈 파이터 벤 헨더슨(28·미국)이었다.
헨더슨은 국내 격투기 팬들에게는 이미 친숙한 스타다.
올해 초 UFC에 진출하자마자 3연승하면서 내년 2월 UFC 라이트급(70㎏ 이하) 챔피언
도전권을 얻었다. UFC와 폭스스포츠는 그를 주한 미군 부대 행사를 위해 초청했다.
이날 헨더슨은 한국인 어머니 김성화(50)씨와 함께 도착했다.
그는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근육질인 헨더슨 옆에 있다보니 어머니의 체구(148㎝)가 유난히 작아보였다.
헨더슨은 그런 어머니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하루 17시간을 일하며
우리 형제를 키우셨어요. 살면서 어머니만큼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제2의 하인스워드를 키운 어머니
헨더슨의 가족사(史)는 여러모로 하인스 워드(미국 NFL 스타)와 닮았다.
그의 아버지는 주한 미군의 흑인 병사였다. 어머니는 비무장지대(DMZ)를
오가는 버스 안내원으로 일하다가 1980년 남편을 만났다.
헨더슨의 형(29)을 낳은 두 사람은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로 건너가 헨더슨을 낳았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생활력이 부족했다. 술과 마약도 종종 했다.
결국 어머니 김씨는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로 이사했고,
1992년 이혼했다. 김씨는 "처음엔 이혼은 안 하려고 했는데….
아이들한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혼자 힘으로 두 아들을 키우려면 악착같이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세탁소, 패스트푸드점, 공장 등을 오가며 휴일 없이 하루 17시간씩 일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1~2시에 집에 돌아왔다.
헨더슨은 "살면서 엄마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피부색이 다른 어머니가 처음엔 부끄러웠다"던 하인스 워드와 달리,
헨더슨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김치찌개나 돼지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주변에 살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모'와 '할머니'들 덕분이었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한국 여자가 몇 분 계셨어요. 당연히 혼혈아도 있었죠.
엄마가 출근하면 주변의 이모와 아줌마, 할머니들이 우리 형제를 돌봐줬어요. 한글도 배웠고요."
◇UFC 스타의 한국 사랑
김씨는 헨더슨 형제를 한국식으로 키웠다. 가능하면 매끼 밥을 먹도록 했고,
과자도 '맛동산' 같은 한국 제품을 주로 사줬다. 어른이 집에 오면 방에서 나와 인사하게 가르쳤다.
엄마가 한국 사람이니까, 아들도 예의 바르게 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헨더슨은 지금도 UFC에서 욕설을 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예의 바른 선수로 통한다.
그는 지극한 '한국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트위터에 밥과 김치를 먹는 사진을 올리면서 "김치 파워! 김치는 내 영혼의 힘"이라고
소개하는가 하면, 몸에는 한글로 '힘' '명예' '전사' '벤 헨더슨'이라는 문신을 새겨넣었다.
올해 광복절에 열린 UFC 대회에선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고,
경기에서 이긴 뒤 한국말로 "한국 팬들 너무너무 싸랑해요. 어무니, 싸랑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해 상세히 알 정도로 한국 뉴스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무술을 접한 것도 어머니 덕분이었다. 김씨는 두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 도장에 다니게 했다
. 헨더슨은 금세 검은 띠를 딸 정도로 운동에 타고난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때는 레슬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경찰에
합격하고 나서 종합격투기에 입문했다. 헨더슨은 "경찰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며
"우선 격투기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헨더슨은 격투기 팬 사이에서 '효자 파이터'로 통한다.
그는 체육관이 있는 피닉스에 머물면서도 1주일에 3~4차례씩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걸고,
대전료를 받을 때마다 용돈을 보낸다. 헨더슨의 꿈은 챔피언이 돼서 어머니에게 새집을 선물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내년 2월 UFC 대회에서 현 챔피언 프랭크 에드가(30·미국)를 쓰러뜨려야 한다.
헨더슨은 "에드가의 최근 경기를 분석했는데,
초반에 허점이 많았다"며 "반드시 그를 누르고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도 태극기를 들고 입장할 것"이라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한국 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했다.
[김동현 기자 hellopi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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