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형님들
보배에 가입한지는 거진 수십년인데
사실 거의 눈팅만 하다가 재작년 무렵부터는 가끔 댓글도 달고 하네요.
뭔가 재밌는 얘기를 들려드릴건 없을까 생각해 보다가
아주 예전 논현동 다가구 살던 시절 황당하거나 재밌었던 경험들을 올려 볼까 합니다.
(반응이 좋으면 계속 시리즈로 올리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단편으로 접는걸로 ... ㅎ)
저는 90년대 초반부터 약 15년 정도를 논현동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님이 논현동에 단독주택을 매입하셔서 다가구를 만들고
3층에 저희가 살고 반지하, 1,2층에 원룸을 두고 월세 받는 형태 였지요.
당시 이런 수익형 다가구 건축붐이 상당했었고
저희가 집짓고 들어갈때만 해도 30%는 이미 다가구, 30%는 공사중, 나머지는 아직 주택인 상황 이였습니다.
저희가 다가구 짓고 나서 5년 이내에 거의 모든 주택이 다가구로 변했던 것 같네요.
보통 원룸이나 투룸으로 많이 짓는데 저희는 투룸으로 지었어요.
그래서 반지하, 1층, 2층에 3개씩 총 9개의 투룸이 있엇네요.
당시는 주차장 건축 규제가 심하지 않아 반지하까지 방을 만들고 건물 귀퉁이에 주차공간을 만드는게 일반적 이였어요.
2000년대 이후부터 주차장 규제가 심해져서 반지하가 없어지고 일층이 주차장, 이층부터 다가구로 건축이 됩니다.
집짓고 처음에는 일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가족분들도 좀 거주하셨는데
어느새부턴가 속칭 나가요 언니들...또는 그쪽 관계자 분들이 점점 많이 거주하시게 되시더군요.
일수 아저씨, 나가요 전문 미장원이나 가게 종사자분들.. 등등
나가요 언니들은 보통 두명이 짝을 지어 계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처음에는 한집에 네명이 사는거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었습니다.
화장하고 머리하고 차려입고 출근 할떄랑 그냥 추리닝에 맨 얼굴로 사우나 갈때랑 너무 많이 달라서.. ㅋ
(제가 원체 사람 얼굴을 잘못 알아봐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뭘 하시는 분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루트가 아니라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가 않거나
며칠, 몇주씩 집을 비우기도 하고 갑자기 와르르 많은 분들이 계시기도 하고
계약한 당사자는 어느날부터 잠적하고 다른 분들이 살고 계시고..
하여간 좀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분들이 주로 계셨습니다.
투룸이다 보니 혼자 사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주로 친구나 가족(으로 추정되는)분들이 많으셨네요.
그런데 어느날 반지하 B02호에 건장한 청년 두분이 들어 왔습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90년대 초 OO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다가
마약 투약 협의로 나락으로 떨어져 당시는 거의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진 왕년의 탑가수 A 였습니다.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던 가수 B와 듀오를 맺고 신곡 준비를 위해 들어온 곳이 저희집 B02호 였던 겁니다.
예전 TV 나올때보다 몸이 엄청나서 불고 수염도 덥수룩 해서 처음 봤을때는 정말 가수 A가 맞나 잘 몰라볼 정도 였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건반을 두드리며 엄청난 성량으로 노래노래노래...
정말 골목 전체가 다 떠나갈 듯한 우렁찬 소리...
노래를 안 부를때도 음악을 어찌나 크게 틀어 놓는지...
(근데 꼭 창문 다 열어놓고 불러야 노래가 잘 되는지..ㅠ)
주변에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자주 발생했네요.
그런데 막상 B02호에 직접 찾아가서 조용히 해달라는 분은 사실 거의 없었어요 ㅎ
하여튼 그렇게 한동안 있었는데
퉁퉁 불어있던 살이 어느새 쫙 빠지고 다시 예전의 근육질 몸매로 바뀌더니 이내 신곡을 낸다고 하더군요
오랫만에 재기 준비라서 걱정도 많았는데 계약이 잘 되어서
돈도 많이 받고 좋은 집으로 이사가고 TV 출연도 한다고 하면서
이게 저희집에 있을때 다 잘된거라며 고맙다고 짐빼고 나갈때 저희 어머님께 큰절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정말 얼마 안있다가 TV 음악 프로에서 화려한 재기를 했는데
노래나 춤이 당시 시대에는 그리 잘 맞지 않아서 흥행은 하지 못하고 금새 다시 잊혀졌어요.
그래도 우리집에서 살던 사람이라 식구들이 모두 모여 첫 TV 프로그램 출연을 같이 시청했는데
정말 노래도 춤도...끝까지 듣고 보기가 어려울 지경..ㅠㅠ
1절이 끝나고 간주가 나올 무렵 그냥 이건 망했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전혀 귀에 박히지 않는 노래 가락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춤사위가 나오는데
원래부터 시대를 앞서나가는 컨셉의 가수였지만 당시는 앞서나가도 너무 많이 나간듯 싶네요
오히려 그 당시 앨범이 그 계열에서는 엄청난 명반이라고 지금 뒤늦게 재평가 되고 있다고 하던데
혹시 모르죠. 브브걸 롤린처럼 뒤늦은 역주행을 할련지도.. ㅎㅎㅎ
가수 A분께서 기억하고 계실련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저희집에서 방 빼고 이사 나가면서 어머님께 큰절까지 해주신건 참 고마운데
잔금 정산할때 금액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오십만원 정도를 저희한테 주셔야 했어요
그런데 당장 수중에 현금이 없다고 하시면서 돈 다시 가지고 온다면서 맡긴 물건
백만원짜리라고 자기도 꼭 필요한거라 반드시 찾아갈테니 소중히 보관하고 계시라고 했던 물건
모토롤라 스타텍 5000
떠나시고 어머님이 몇번 연락을 드렸는데 전화가 계속 되질 않자
이거 시세가 백만원이라고 하던데 중고로 팔면 오십만원은 안되겠냐 하시면서 저한테 내미시던 물건
모토롤라 스타택 5000
저희집에서 나가실때 계약금 많이 받고 부자되셨다고 했었는데 수중에 오십만원이 없으셨는지..
다 썩은 백만원짜리 아날로그 핸드폰을 맡기고 가셨으면 찾으러 오셔야지 왜 연락도 안되고 오지도 않나요 ㅠ
혹시 나중에라도 올까 안방 장농 깊숙이 계속 보관하고 있다가 저희도 논현동 떠나면서 버려버렸네요
지금도 아주 가끔 특집 가요프로에 나와서 왕년의 명곡을 시원하게 부르는 가수 A의 모습을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저는 백만원짜리 모토롤라 스타택 5000이 생각나곤 합니다.
오십만원은 이제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그냥 채무탕감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혹시 ooo고 oo고 하는 가수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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