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위로?』 사기다. 기대 말고 버텨라!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 수 1. 엊그제 한 대학생이 신문에 기고한 『20대 위로』에 대한 반발성 글을 읽었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은 공허하고 현실은 우울하며 스트레스만 쌓이는데, 소위 『힐링』을 한다며 나온 책들은 모두 공허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의 모순을 개인의 문제로 넘겨버리는 무책임도 언급했다. 20대의 우울에는 드라마 속의 욕망과 현실의 체념이 뒤섞여 있다. 이런 체념에 대한 『힐링과 위로』는 청춘의 좌절된 욕망의 원인을 너무 『가까이』서 찾고 있고, 사회구조 개혁이라는 『대의』는 너무 『먼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손쉬운 위로』고 또 다른 하나는 『공허한 대의』라는 것이 그의 글의 요지이고 차라리 『솔직함과 담백함』이 치료 방법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2. 애초 20대가 누구에게 위로나 힐링을 받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지난 100여 년간 각 시대를 살아온 개인들은 모두 자기 세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1차 대전, 2차 대전, 6.25, 개발도상시대, 70,80년대 어느 시대 하나 개인에게 삶의 편안한 『황금시대』가 있었겠는가? 지금 한국의 각 세대를 한번 살펴보자. 60대 이상의 세대 대다수는 근대화라는 대의 하에 근로기준법, 노동법, 최저임금도 없이 뼈빠지게 일하며 여가라는 개념을 잊고 가족의 즐거움도 모른 채 살아왔다. 이제 노령인구가 된 이들은 그간의 대가는 다 자식에게 줘 버린 채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도 없이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된 채 꼴통 취급을 받고 버려져 있다. 40대 후반~ 50대는 그나마 그 위 세대 보다는 성장 환경이 나았고 80~90년대의 마지막 성장 과정의 혜택을 입었지만 이들 또한 386세대로서 청춘을 데모로 불살랐다. 이후 부동산 등의 투기 욕망을 쫓아가다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다수 외에도 조기은퇴로 내몰려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 중 대다수가 망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 밑 세대인 30~40대 그나마 마지막 정규직 취업 세대로서 지금의 20대 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서 취업이 가능한 세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또한 그들의 위 세대가 각기 가진 문제들의 복합적 요소들을 공통으로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느 세대나 편한 세대는 아무데도 없다. 3. 특정 세대가 위로 받으려면 그 세대가 특별히 불행한 일 또는 다른 세대가 그 세대에 빚진 일이 있어야 한다. 20대는 다른 어떤 세대에 비해 대학 이상을 나온 비율이 월등히 높은 세대이다. 20대는 상대적 고학력이 세계적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와 맞물려 눈앞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모래알처럼 개인화, 파편화 되었고 취업, 결혼이 지금 모든 시대적 가치가 되어버렸다. 이상과 대의가 사라져 버린 세대에서 몰두할 일은 개인의 안락함뿐이나, 이제 이 마저도 취업이라는 그 최소 필요 구성요건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노동의 재생산과 가정의 재생산이 지속적으로 가능할려면 취업, 결혼, 출산, 소득향상, 주택구입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재생산 사이클』 작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취업 자체가 힘들어지고 비정규직, 파견직, 알바, 저생산성 서비스직 등이 다수가 되고 재생산 가능 정규직 자리가 극소수가 되면서 취업,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재생산 작동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4. 얼마 전 서울시내에 3040 미혼남이 24만 명이며 20년간 10배가 늘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서울시내 35세~49세 미혼남성이 2010년 24만 7590명) 매년 50만 명 이상의 대졸자가 사회에 나오는데 20대 기업 일자리는 2만 5천 개 밖에 안되고 공무원, 공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등 포함해서 결혼 등 최소한의 사회적 재생산이 가능한 직장은 모두 합하여 한해 15만 개도 되지 않는 것이 냉정한 지금의 실정이다 또 치매노인이 4년 새에 27%나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치매노인이 현재 53만에서 2025년에는 100만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일자리, 성장 등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는 세계적 경기 침체는 비단 20대 만의 문제가 아니다. 30~40대 와 고령세대 등 전 세대에 생존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세대가 다른 세대를 위로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5. 사회 운영 시스템의 한계로 한 사회가 무너질 때 특정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 20대 만을 특별히 지적해 『위로』와 『치유』를 말하는 것의 배후에 『세대간 분열』을 노린 『정치적 선동과 꼼수』가 배후에 있다. 『88만원 세대』를 쓰고 20대 『청춘의 고통』을 언급한 책들과 멘토는 많았지만 버려진 채 소멸되어가는 『노령세대의 고통』을 위로한 자는 별로 없었다. 내구 사용연한이 다된 사람은 위로할 가치조차 없기 때문인가? 그 이유의 배경에는 『상업화』와 『정치적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SNS와 인터넷에 능하고 여론전파력이 빠른 20대를 위로하는 멘토는 미디어 출연이나 SNS 노출이 매우 쉬우며 책 발간, 강연 등으로 유명세도 얻고 돈도 벌리기 때문이다. 또 이런 『위로나 힐링』은 진보개혁 명분의 정치와 연결되어 20대의 표도 노릴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지금 20대를 위로ㆍ힐링한다는 정치지망인, 유명인, 종교인 들을 보면 내심이 순수한 사람은 거의 없다. 20대는 그나마 다음 세대라서 목소리라도 있지만 고령층 노인은 어떤 사회적 영향력도 없고 그 중 다수가 보수진영에 표를 던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노령세대를 위로하지 않는 것이다. 특정세대 『위로나 힐링』의 이면에 숨은 이런 이해타산적 노림 수를 깨닫는다면 이들의 『위로』는 기대할 가치도 없고 무의미하며 값싼 상업적 위로를 가장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6. 세대를 분열시키고 고립시켜 특정세대만 부각시키는 행위는 사회진보와 개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분열로 근본적 개혁을 자멸시킨다. 대공황이나 세계 경제 주변,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특정 어느 세대를 구별하거나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모든 세대를 공격한다. 그 중에 특히 경제적, 사회적 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물이 된다. 따라서 대공황이 임박하고 있는 사회에서 20대 위로 운운하는 사람은 책 팔려는 사기꾼이거나 눈앞의 대선 목적에 눈이 어두운 정치꾼이다. 쓰나미가 오면 노인이나 젊은이나 유아나 가리지 않고 모두 쓸어간다. 현재 사회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위기는 IMF 이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온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이며, 고용과 소비의 문제를 투기로 해결해오고 미래의 소득을 빌려 쓴 정치의 문제이다. 이는 골고루 한국사회 전반을 병들어 썩어가게 하고 있다. 즉 10대에서 70, 80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에 심각한 병리현상이 없는 세대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당 사태에서, 청춘의 문제는 누구도 해결치 못하며 고작 『머리끄덩이 땡기기』에 이용당할 뿐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또 청춘뿐 아니라 황혼세대도 결국 『보수』라는 맹목적 이념 속에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을 느껴야 한다. 세대 간을 분리시키고 고립시켜 각기 필요한 액기스(표)만 뽑아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정치가 세대문제를 다루고 있는 접근법이다. 7. 드라마 속의 환상이나 『힐링멘트』의 말장난 속에는 그 어떤 진실이 없다. 현실과 가상의 간극이 클수록 더욱더 현실사회적이 되며 SNS나 인터넷의 가상에 몰두하고 현실의 소비적 쾌락에 몰두하다 미래를 생각하기 싫은 고통스런 현실은 하루에 몇 시간을 SNS나 인터넷에 몰두하고 연예인, 스포츠 유명인의 일상에 빠져들며 지속될 수 없는 과도한 소비에 탐닉하게 하며 현실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잠깐 제 정신이 현실로 들어오면 힐링 위로를 자처한 자칭 『멘토』 사기꾼들이 나타나 이들의 마지막 이성까지도 긁어가며 또다시 마약주사를 놓는 것이다. 애초 이들에게 『위로』를 구하는 것은 순간의 안식일 뿐이었으나 이러한 말초적 위로의 폐해를 『근본적 사회개혁』을 청춘들에게 너무나 『멀고먼 대의』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멀다고 포기하고 가깝다고 취하거나 둘 다 싫다고 하루하루 그냥 살아간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도 진정으로 타인을 위로하지는 않는다. 각자 자기 스스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타이타닉보다 큰 거대한 배가 침몰했을 때 구명정에 오르기 위해 경쟁해봤자 기본 체력이 강한 자에게 구명정은 돌아가고 어차피 약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는다는데 있다. 지금 대공황이 당장 닥쳐도 이미 가진 자나 약은 이들은 대부분 구명정이나 구명보트에 올라있다. 제한된 수의 구명정을 힘이 약한 사람이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로나 힐링은 죽어가는 자에 대한 염불이나 기도에 불과하다. 위로 받을 시간에 차라리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8. 20대 『위로』를 기대하지 말고 당당히 자존심을 유지하며 버텨라. 당신들만 불행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말 뿐인 위로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며 현실을 보는 시야만 좁힐 뿐이다. 자신 세대가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거대한 불행은 어차피 세대를 가려가며 오는 것도 아니다. 국가라는 틀과 그 속의 정치는 독 안에 든 쥐와 같다. 다수가 불행해지고 고통의 임계점에 이르면 더 이상 달콤한 말로 속이거나 몇 마디 위로로 적당히 빠져 나갈 수는 없다. 다행히 이제 구조적 개혁의 틀이 아니고서는 몇 가지 수동적 위장으로는 사회적 재생산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대공황이 케인즈의 재정투입에 의한 수요창출이나 루즈벨트의 뉴딜 때문에 극복 될 것이 아니듯이 대공황 또한 반값 등록금이나 무료보육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1930년 공황은 전쟁으로 끝이 났고 이후 동서냉전 이라는 군비확장 수요로 경기가 유지되어 왔다. 이제 답도 없는 자본주의 체계적 위기 앞에서 한국 여야 정치세력은 눈앞의 달콤한 마약 장사에 열중이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한 채 거대한 사회적 압력에 부딪힌 것이다. 가장 거대한 사회적 압력은 내 자식이 취직과 결혼 안 되는 것이다. 사회적 재생산이 중단되는 것만큼 강한 사회적 압력은 없다. 정치 의식이 있든 없든 결국 사회저항은 나타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기성 정치와 힐링 사기꾼들을 박멸할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저임금, 재개발, 노동조건, 환경 문제 등으로 빈발한 폭동이 머지 않아 중국사회 기존 시스템을 허물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지식, 사회, 운동권, 의식화 등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무지하고 소득 교육수준이 낮은 대중이지만 본능적으로 사회적 재생산이 불가하다는 한계는 느끼기 때문에 저항에 나서는 것이다. 한국사회 또한 머지 않아 근본적 개혁이 오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특정세대를 향한 달콤한 위로는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들고 지연시키는 마취제일 뿐이며 『피리 부는 마술사』에 불과할 뿐이다. 멀게 느껴지는 사회구조적 개혁이 어느 날 문득 눈앞에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 청춘은 다만 시간소비, 감정 소비,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때까지 잘 버텨내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재생산 사이클이 무너진 사회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20대가 자신들이 『위로』 받아야 한다고 느낄 특별한 불만은 『취업문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일자리, 소득원, 물려받는 재산조차 없는 결혼적령기 남성은 결혼이 아예 불가능 하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물질적 조건에 반비례하여 현실의 욕망과 환상은 더욱더 커져가고 있다. 미디어, 사이버, 광고 등은 청춘에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을 부채질하고 현실과 환상ㆍ가상세계 사이의 착시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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