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국방과학연구소 설립과 함께
국산무기개발이 시작됨.
설립 1년 뒤, 제대로 된 직원도 없던 1971년
"딱 한달 반 줄테니까 지금부터 말하는거 만들어와, 알겠지?
"설계부터 하라는거 아니잖아, 그 미군꺼랑 똑같이 생긴거 만들면 되는거야"
M2 카빈 소총 * 10
M1 카빈 소총 자동화 개량판 * 2
M1919 경기관총 * 5
60mm 박격포 * 4
81mm 박격포 * 6
경량 60mm 박격포 * 2
대전차 바주카 * 4
수류탄 * 300
대인지뢰 * 20
대전차지뢰 * 20
당시 한국 제반시설의 열악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업은 가내수공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하다못해 복사기조차 없어서 복사기도 미군이 대여해줬으며
총열을 만들 수 있는 설비도 대한민국에 단 한 곳 밖에 없었음
제작 중 가장 어려웠던건 바주카였는데
국방과학연구소 "위에서 바주카 만들라는데 도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육군 "ㄴㄴ안됨"
국방과학연구소 "그럼 보고라도 만들게 실물이라도 빌릴 수 있을까요?"
수방사 "일단 빌려주긴 하는데 거기에 흠집이라도 나면 뒤짐"
그렇게 흠집 하나도 내는걸 두려워하며 도면도 없이
자로 수치를 재고 이 부분은 사이즈가 얼마고
재료가 뭔지 직접 알아내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실시
결국 바주카를 비롯해 모든 주문을 맨땅에서 40일만에 어떻게든 만들어냄
하지만 재료도 없어서 군용 소재도 아니고 일반 상업용 합금 등으로 "겉모양"만 간신히 만들었는데
"만들었으면 쏴봐야 될거 아냐?"
바로 일주일 뒤에 실사격 테스트가 지시됨
테스트 당일, 윗분들의 안전을 지나치게 신경쓰던 것과 자신이 쏘려는 무기가 한국에서 이제 막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된 차출 병사가 두려움에 사격을 포기하는 대참사가 발생. 연구소 개발책임자가 직접 발사를 하고 공밀레의 결과로 단 한번의 사고나 고장 없이 40일만에 만든 모든 무기의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나 국방과학연구소가 아직까지 그 역사를 유지하고 있음 이게 바로 번개사업. 제1차 번개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뒤
1977년, BM-21 다연장 로켓 사진 하나가 국방과학연구소에 전해지는데...
"이거 만들어와"
그리고 1년만에 어떻게든 만든게 K-136 다연장로켓 그리고 저것들은 자로 수치라도 재고 분해도 했지만... 구룡 로켓 발사대는 리얼 전설임.
문화적 특성인지 인종적 특성 인지 국가별 종특 명확히 드러남...
외국 애덜이랑 일해보면 볼수록... 아~~~ 내가 제정신 아닌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구나... 깨닫게 됨...
그러고 나면... 현타옴....
대우는 ㅆㅍㄱㅈㄱ은데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함...
문화적 특성인지 인종적 특성 인지 국가별 종특 명확히 드러남...
외국 애덜이랑 일해보면 볼수록... 아~~~ 내가 제정신 아닌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구나... 깨닫게 됨...
그러고 나면... 현타옴....
대우는 ㅆㅍㄱㅈㄱ은데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함...
한국인들 DNA..........참 남다른듯 ㅎ
주산 할줄 안다고...
부대 보급장부 3년치 던져주며 숫자 맞추라던 개자슥... 생각나네요...
지는 계산기 두둘기고...
정말... 개 보다 못한것들 많았지요...
포탑 내리고 일반 보병으로 전환됩니다.
이젠 천무 나와서 바뀌었겠죠
그리고 단 한번에 성공했을까요?
성공한 것만 나오지 않았을까요?
노하우를 축적해야하는데 상명하복으로는 곤란하죠.
저 당시 군대는 시키면 해야 되고, 목숨이 파리 목숨인지라 어쩔수 없었겠죠.
지금까지는 주먹구구로 억지 명령으로 되었는데,
기술의 수준이 높아지자,
한화, LIG 같은 기업형 제조사가 필요해 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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