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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현충원에서 가까운데 살다보니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아직도 홍범도 장군님을 빨갱이라도 떠드는 종자들이 있다니 참으로 안타 까울 뿐입니다.
셋중에 한녀석만 사관학교 들어가길 희망합니다.
남은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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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 키우시는 그 자체가 애국자시네요^^
삼형제 키우시는 그 자체가 애국자시네요^^
3형제가 나란히...
뭉클합니다.
휴일 힐링하세요~
^~^
http://www.securityfact.co.kr/news/view.php?no=2044
...... 자유시에 집결한 대한독립군은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성향의 조직이 혼재된 상태였다. 이들 사이에서는 적군 산하로 편입돼야 한다는 세력과 이를 거부하는 세력 등으로 분열돼 반목현상이 심화됐다.
이중 청산리대첩에 참전했던 사할린 출신 부대에서 소련군 편입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소련군은 기관총과 대포, 장갑차 등을 앞세워 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 과정에서 홍범도는 사할린 부대 편에 섰다가 이르쿠츠크파 자유대대 편으로 돌아서서 사할린 부대를 공격하는 데 가담했다. 이르쿠츠크파 배후에는 소련 정부가 있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항일 무장독립군은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 곳곳에서 사살·체포당하거나 강제노동에 끌려갔고, 이로써 한국 무장독립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1920년 이후 봉오동·청산리대첩과 같은 항일 무장독립운동 역사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홍범도는 그 뒤 소련의 레닌으로부터 금화 100루블과 레닌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 등을 선물로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자유시 참변 이듬해인 1922년 2월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의 주최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홍범도는 한인 대표로 참석했고, 여기서 레닌과 단독면담도 가졌다. 학계에서는 "레닌의 선물은 사실상 소련에 협조해준 감사의 표시나 다름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는 휘하 병력 300명을 소련군에 편입시켰고, 그 자신은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 대위로 편입된 뒤 25군단 조선인여단 독립대대 지휘관으로 승진했다. 군복은 1923년에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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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는 단순히 소련에 협력했던 것만이 아니라
동지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반역자임.
그래서 죽을때까지 독립운동에 끼지도 못하고 먼 나라에 가서 짱박혀 살았던 것.
어찌 이런 자를 현충원에... ㅉㅉ
딸 아빠가 부럽겠어요!
사진보니 아들도 낳고 싶네요
멋지십니다
니가 싫다고 생각되도 뭐하는 분이래요?라고 하는거야.
학교운동장에서나 놀아라.
문재앙패거리들의 정치이념 놀이에 놀아난것도모자라 아들들까지...거기다 자랑이라고 사진까지 척!ㅋㅋㅋㅋ 절대 글삭제하지마시고요 세월이 지나고보면 이불킥 하시겠네요
우리집에서 차로 1분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에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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