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알아볼 국가소개] 전라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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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인민공화국(全羅人民共和國)은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치국이다. 대한민국과 육상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국, 동남쪽으로는 일본과 마주하고 있다. 자치국이긴 하나 외교와 국방까지 부여받은 아주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고 있어 사실상 독립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정치 체제는 전라인민당 일당체제이며, 300명의 대의원이 만장일치를 해야 안건이 통과되는 '우덜식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표어는 '슨상님 계실적엔 이런 일 없었는디(ASKY)', 국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 국기는 '홍본기', 국화는 '민주화(花)'이다.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에서 분리독립을 결정하여 건국을 선포하였으며, 이듬해 4월 4일에 '우덜식 헌법'을 제정함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치국으로 편입되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명 '전라강점기'라 하여 김대중과 노무현 두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탈취해 10년간 대한민국을 전라인민공화국의 속국으로 다스린 적도 있었다. 수도는 광주(슨상그라드)이며, 정부청사로는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사용하고 있다.
전라인민공화국의 정치
(전라인민공화국의 인민들이 김대중컨벤션센터와 김대중 슨상님의 동상에 참배하고 있다.)
(현 국방위원장 이호성)
전라인민공화국은 '전라인민당'이 일당독재를 하고 있으며, 입법기관으로는 '인민회의'를 두고 있다. 인민회의의 대의원 수는 300명이며, 대의원은 인민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법안이나 안건은 대의원 300명이 모두 만장일치로 찬성을 해야지만 통과가 되는 '우덜식 민주주의'에 따라 인민회의가 운영되고 있다. 국가원수는 '주석'이며, 1980년 김대중 슨상님이 주석 지위에 오른 후 2009년 서거하신 후 김대중 슨상님이 영구적으로 주석 지위에 머무르게 되어 사실상 주석 지위는 폐지되었다. 그 아래로는 '부주석'이 있으며, 부주석은 2003년 운지 노무현 슨상이 임명된 뒤 신설된 직책이다. 2009년 운지 노무현 슨상이 운지로 서거한 이후 부주석 지위도 노무현 슨상이 영구적으로 머무르게 되어 사실상 폐지된 상태이다. 현재 사실상의 국가원수는 이호성 국방위원장이며, '우덜리즘'에 따른 폭정과 법률을 어긴 인민이나 정적을 가차없이 빠따로 민주화시키는것으로 주변국에 악명이 자자하다.
삼권분립은 명목상으로는 이루어지고 있으나 사실상 '전라국방위원회'가 권력을 독식하고 있다. 국방위원장과 전라국방위원회는 국정 총괄, 정부 운영, 정부부서 관할, 법안 및 안건 발의 또는 승인, 군통수, 외교 등의 권한을 가진다. 인민회의는 어용기관에 불가하며, 건국 후 단 한명의 대의원도 안건이나 법안에 반대 표를 던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라국방위원회는 사실상 전라인민공화국의 모든 정치를 관할하며, 산하에 인민무력부와 국가안전보위부를 두어 인민을 감시하고 있다. 전라국방위원회는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김대중컨벤션센터에는 김대중 슨상님의 시신이 보존되어 있어 전라 인민이라면 필수적으로 참배를 해야 한다. 법원은 2심제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법원과 인민법원 두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도 신안군에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치범들을 가두어 노예로 삼고 있다고 한다.
전라인민공화국의 역사
(전라인민공화국의 시발점이 되는, 5.18 봉기)
(초대 국가주석 김대중 슨상님)
전라인민공화국의 역사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부 인사가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해 군사혁명을 일으켰으나, 전라 지방은 이에 불복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김대중 슨상님을 중심으로 무장 봉기를 일으킨다. 이에 신군부는 5만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진압을 시도하였으나, 북괴의 20만이라는 많은 지원병력과 호남의 거센 봉기로 인해 결국 진압에 실패하고 만다. 그 뒤 전라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에서 분리독립을 선포하였으며 건국을 선포했다. 그 후 1981년 4월 4일 북괴의 자치국이 되는 것과 동시에 '우덜식 헌법'이 제정되고, 김대중 슨상님이 초대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김대중 슨상님은 '우덜식 민주주의'의 정착과 5.18의 성역화에 주력하였으며, '조국과 민족, 내 일생을 위해'라는 좌우명에 따라 자신의 신격화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김대중컨벤션센터가 1988년 완공되었으며, 곳곳에 슨상님의 동상이 세워졌다. 또한 '우덜리즘'에 따른 복종 교육과 세뇌로 인민의 우민화와 자신의 우상화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킨다. 그 뒤 1998년 대한민국과의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속여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얻지만, '평화통일'이라는 공약과는 달리 대한민국을 전라인민공화국의 속국으로 편입하고 대한민국의 곳곳에 슨상님의 동상과 우상화를 주입하여 2016년 현재도 그 후유증이 심각하게 남아있다.
(김대중 슨상님의 뒤를 이어 통치를 한 운지 노무현 슨상)
그 뒤 2003년 김대중 슨상님이 홍어를 먹다가 급체하여 뇌사상태에 빠져 부주석이던 운지 노무현 슨상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직과 전라인민공화국의 통치자 자리를 얻게 된다. 노무현 슨상은 대한민국의 봉하마을에 전라인민공화국의 멀티를 건설하였고, 부산, 경남, 서울, 충청 등으로 전라인민공화국의 식민지를 점차 늘려갔다. 또한 자신의 친위세력인 '노사모'를 이용해 정치범과 반민족주의자들을 민주화시켰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항이 지속되었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반노세력의 구호도 유행하게 되어 결국 노무현 슨상은 2007년 지지율이 5%에 이르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 뒤 2009년 노무현 슨상은 부엉이바위에서 운지를 하여 두부외상으로 서거하고 만다. 이어 김대중 슨상님도 6년의 투병생활 끝에 서거하여 전라인민공화국의 대한민국 강제점령도 끝이 난다.
(전라-북괴간의 우호를 상징하는 우표)
이후 전라국은 2009년 다시 본래의 영토로 돌아가야만 했으며, 이에 따라 전라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도 깊어져갔다. 그 예시 중 하나가 2008년에 있던 '좆불시위'이며, 서울로 진격한 인민들의 촛불폭동이 일어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독립한 대한민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반북 반전라 정책을 펼치며 빨갱이들이 숙청되고 전라국의 스파이들도 다수 숙청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2010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태를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버전사들을 투입하는 정책을 펼쳐 현재 한국 인터넷에 상당한 수의 좌빨을 만드는데 이르렀다. 현재도 전라국과 대한민국의 사이는 매우 나쁘며, 전라국은 심심하면 국경에 포격을 날려 도발을 가하고 있다.
전라인민공화국의 군사
(전라인민공화국 인민군의 뿌리가 된 5.18 봉기군)
전라인민공화국은 인민군을 두고 있으며, 징병제로 19~35세의 남성과 여성을 징집하고 있다. 총병력 수는 70만명에 달하며, 복무기간은 10년이다. 선군정책으로 군에 국가수입의 40%를 투자하고 있으며, 육군 50만명, 해군 10만명, 공군 10만명의 많은 병력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의 질은 매우 형편없어 심각한 평가절하를 받고 있다. 그 예로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군이 운용한 제로센을 사용하고 있는것이 그 예이다.
다음편 - 전라인민공화국 인민의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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