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위인전에 김구의 탄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많은 내용이 나와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인전이 그렇듯이 감화를 줄목적으로 쓰기때문에 과장과 미화가 넘쳐난다.
하지만 몇가지 교차되는 기록에 의하여 검증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김구는 동학운동에 참여하였고 18살에 수백명을 거느린 접주가 되었고(당시 18살은 지금의 18살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어른 스러운 경향이 있다) 황해도 동학군의 대표로 해주성을 습격하였으나 일본군과 결합한 관군에 패퇴하였다. 동학운동은 천도교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이 천도교라는 것이 도교, 유교, 무속신앙에 기독교 같은 온갖 잡다한 것이 섞여있는 것이어서 딱히 김구가 천도교 신도 였던 것으로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동학은 당시 조선말기 극심한 부정부패로 인한 민란의 성격에 가까웠다. 따라서 김구는 상당한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동학운동이 일본군에 의해서 처절하게 분쇄되었기 때문에 반일민족주의적성향이 형성 되었다라고 볼수 있다.
2. 그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상당하였으며 황해도 치하포구에서 한국인으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폭행하여 죽인다. 백범일기에는 일본군 중위로 되어 있으나 일본의 자료에는 대마도 출신의 평범한 상인으로 나온다. 이것을 이유로 김구가 평볌한 일본인을 살해하였다라고 주장하는 극우일뽕충들이 있으나 상식적으로 일본인이 일부러 한국사람처럼 하고 다닐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보낸 첩자를 첩자라고 기록물에 남기지 않는다.
체포된 김구는 처형당할 위기였으나 살해의 동기를 국모를 죽인데에 대한 복수라고 하여 고종으로 부터 사형을 면하게 된다. 당시는 식민지가 되기 전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구는 민비를 국모로 추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기초로 김구는 철저하게 민족주의자였으며 지독한 반일주의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나라를 뒤엎을 생각이 있을 만큼 동학에 참여하여 조선왕조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이씨왕조 조차 일본에 의하여 조종당하는 것을 견딜수 없어할 만큼 반일주의자인 것이다.
즉 이씨왕조를 싫어하지만 일본은 그것보다 훨씬 더 싫었고 이것은 동학운동때 많은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퇴하였는데 그 관군을 일본군이 가져온 당시로써는 대량살상무기에 가까운 기관총으로 무장을 했었고 당시에 화승총을 쓰던 동학군은 말 그대로 갈려 나갔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했다고 볼수 있다.
김구는 동학혁명실패 후 압록강을 넘어 청나라 의병대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시작한다. 이것으로 김구는 청나라나 다른 나라에 대한 반감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그는 오로지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조선이 스스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음을 알수 있고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사상, 다른 종교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을 때려죽인 죄로 투옥된 김구는 사형을 면하게 되자 기회를 노려 탈옥을 하게 된다. 탈옥 후 승려생활을 하던 그는 환속하여 고향에서 교육계몽운동에 투신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탈옥범이 어떻게 교육계몽운동에 참여하고 아무런 제약이 없이 활동 할수 있는지는 지금으로써는 미스테리다. 게다가 공립학교 교직원이 된다. -살인죄 후 탈옥자가 공립학교 교원 -.- 이 되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는 왕조시대였기 때문에 지금과는 완전히 기준이 다르다고 봐야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진 이후에 반대 운동을 하고 이후 투옥 생활을 하다가 1917년 중국으로 망명한다. 이후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련사항은 다들 알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각설하고
김구는 교육자, 정치가 등등 있지만 철저한 민족주의자이자 반일운동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자이므로 민족의 자립과 생존이 최우선의 과제였고 여기에 가장 위협이 되는 일본을 극도로 증오하였다.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그의 관심밖이었다. 반일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그 어떤 집단이나 국가라도 도움을 받고 협력을 했다. 즉 김구에게 공산주의자니, 자본주의자니 이런 타이틀을 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김구의 신탁통치 반대운동도 여기에 기반한다. 우리는 2차대전의 일본의 패배로 거저얻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임시정부에서 일하던 입장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이 던져졌고 그만큼 치열하게 원하던 것이었다. 일본이 쫒겨났는데 아무리 도움을 줬다한들 미국과 쏘련이 한반도를 나누어 통치를 하게되니 여우가 나가니 늑대가 들어온 꼴이 된 것이다. 민족주의자인 김구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뼛속까지 민족주의자인 것이다.
여기에 여러가지 상황이나 이권으로 각각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독불장군같이 목숨걸고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사람을 결코 설득하거나 회유하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이 김구를 암살한 이유. 즉 죽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우리민족의 완전한 독립를 위해 끊임없이 활동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안방에 줄 그어놓고 한쪽엔 엄마가 한쪽엔 아빠가 누워있는 거 같은 거야. 애초에 우리나라는 2차대전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2차대전을 일으키고 패한것은 일본인데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고 김구같은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지.
전쟁은 일본이 일으키고 벌은 우리민족이 받아야하는다는것을 누가 이해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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