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컸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면서 가진 목표는 '절대 이혼하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 있는.. 이혼하려는 형들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난 내가 기억하는 부모가 같이 집에 있던 기억.. 서너살 때 부터 싸우던 기억이 난다.. 지옥같은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빠와 함께 산 기억은 '싸움'에 대한 기억 뿐이고,
싸우고 아빠가 나간 날, 엄마가 누나 형아를 앞에 앉혀두고 농약을 가져와서 먹고 다 같이 죽자했던 기억도 난다..
난 아주 어렸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진난만한 양 엄마에게 안겨서 재롱을 떨며.... 살고자 했던 기억도 난다..
엄마는 계속 집을 나갔다가 9살에 이혼소장을 받아서 내가 읽었다.. 무슨말인지 다 알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모르는 척 했을 뿐..
TV를 틀어서.... 부부가 싸우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다. 누군가 이혼을 하면 눈물이 났다..
12살 무렵 새엄마가 왔는데.. 아이들 셋이나 데리고 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컷고.. 좋은 분이셨지만 내겐 지옥이었다..
행복하지 않게 자란 아이는.. 꿈을 갖기가 어렵다.. 실패와 좌절에 찌들어 있는 생각을 바꾸고 긍정적으로 사는데.. 40년이 걸렸다... 내 가족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
내가 그렇게 컸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면서 가진 목표는 '절대 이혼하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 있는.. 이혼하려는 형들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난 내가 기억하는 부모가 같이 집에 있던 기억.. 서너살 때 부터 싸우던 기억이 난다.. 지옥같은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빠와 함께 산 기억은 '싸움'에 대한 기억 뿐이고,
싸우고 아빠가 나간 날, 엄마가 누나 형아를 앞에 앉혀두고 농약을 가져와서 먹고 다 같이 죽자했던 기억도 난다..
난 아주 어렸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진난만한 양 엄마에게 안겨서 재롱을 떨며.... 살고자 했던 기억도 난다..
엄마는 계속 집을 나갔다가 9살에 이혼소장을 받아서 내가 읽었다.. 무슨말인지 다 알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모르는 척 했을 뿐..
TV를 틀어서.... 부부가 싸우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다. 누군가 이혼을 하면 눈물이 났다..
12살 무렵 새엄마가 왔는데.. 아이들 셋이나 데리고 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컷고.. 좋은 분이셨지만 내겐 지옥이었다..
행복하지 않게 자란 아이는.. 꿈을 갖기가 어렵다.. 실패와 좌절에 찌들어 있는 생각을 바꾸고 긍정적으로 사는데.. 40년이 걸렸다... 내 가족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
하... 이건 개인적인 어린시절이라 잘 오픈 안하는데... 제 얘기랑 좀 비슷해서 적어봅니다.
나름 비슷한 후기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요.
저 초등학교 1학년때 집 나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왔음.
새엄마한테 오지게 맞았음. 새엄마도 사람인지라 자기 잘 따르고 말 잘들으면 미움? 안줬을수도 있음.
하지만 새엄마한테 엄마라는 단어를 쓴다는게 친엄마께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음.
그래서 아줌마라 부르고, 그 아줌마가 친엄마 물건 쓰는것도 싫었음.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친엄마랑 외갓댁 식구들이 우리집에 처들어왔음.
뭐 이혼이 원만이 해결 안됐는데, 새엄마가 들어와있고. 그때는 간통이라는 법도 있었던듯 (이때 제가 어려서 기억이 잘 안남)
친가 / 외가 싸우고 엄마 울면서 나갈때, 나도 가방싸서 엄마 손잡고 따라 가려니까.. 엄마가 울면서
나중에 꼭 대리러 올테니 잘크고 있으랬음 ㅠㅠ (그날 따라가려고 했다고 또 오지게 털림ㅋㅋㅋ)
그때부터 한 1년 엄마 못보고, 소식도 못들었음. (그땐 유일한 연락 수단이 집 전화인데, 엄마가 집에 전화해서 나 바꿔달라고 하기가 만무했음.)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학교마치고 나가는데 엄마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후문으로 나가거나 담이라도 뛰어넘었으면 못만났음. 참고로 엄마의 연고지랑 내 연고지 지역이 달랐음)
울고불고, 그렇게 1년에 한두번씩 엄마가 학교앞에서 기다려주셔서 한번씩 만남.
근데, 또 이게 티가 남. 엄마가 나 만나면 옷 꼬라지가 왜 이러냐고ㅋㅋㅋㅋㅋ 나름 비싸진 않아도 추리링 한두벌 신발 양말 필요한 학용품 어느정도의 용돈을 항상 주고 가셨음.
아버지랑 아줌마는 또 그걸 얼마나 싫어했을까... 차라리 인정을 해줬으면 나으렷만..
여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엄마는 나때문에 재혼도 안(못)하심...
내가 중학교때 엄마가 재혼 얘기를 살짝 하셨는데 이젠 믿을곳이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버지께 격었던 악몽들이 다시 온다고 생각해서인지... 여튼 엄청나게 울었음.. 가지말라곤 말 안?못?했는데, 그냥 서럽게 막 울었음... ㅠㅠ
지금 어머니 혼자 계신거 보면, 그때 내가 큰 잘못을 했나ㅠㅠ속상함... 아~ 코찡...
지금 엄마에 가장 큰 소원이 제 결혼이신데, 어릴때 트라우마 때문인지... 비혼까진 아니지만, 결혼 그거 꼭 안해도 된다에 가까움.
내 친엄마 나 2살때 이혼으로 나감.
내 새엄마 약 10여년간 키워줌.(내겐 친엄마보다 더한 존재) 결국 중1때 이혼.
이후 아빠는 세번째, 네번째 여친을 데리고 오고 엄마라고 부르라함.
간질이 있어 뇌수술까지 했는데 아빠는 연락도 없었음. 오죽하면 누나가 수술비없다고 아빠한테 연락하니 나몰라라..
고딩때부터 누가 소원이 뭐냐 물으면,
돈은 먹고살만큼만 벌고 쉬는날에 와이프와 자식과 도란도란 식사하고 얘기나누는거라 얘기함.
그저 평범하게 소박하게 사는게 내 꿈.
이후 농인 여성과 결혼(이 여성도 결손가정 출신)
서로 부모가 없다시피하고 공장다니며 원룸부터 시작.
원룸->10평 투룸->25평 지금의 집.
악착같이 일해서 결혼 6년차인 지금, 맞벌이 졸업하고 혼자 외벌이하고 딸아이 둘 낳아 사는데 너무 행복함. 그저 숨쉬는것 자체가 지금 내 행복...
나도 똑같이 자랐지만 울 엄마는 절대 맞고만 계시지도 않았고
이러다 진짜 누구하나 죽겠다 싶을 상황이 계속되도 우리 형제 버리진 않았음...
그런점에서 참 항상 감사하지만 지금돌이켜보면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음
집안 다 부서지고 부모님 둘이 붙어서 주먹발길질하고 쌍욕이 난무하고
나는 엄마 안맞게 하겠다고 앞에서 막아서고 경찰이오고 유치원,초중고 학창시절 다 그냥 지옥같았음
항상 우울했음... ptsd? 그런게 없을리 없겠지... 그냥 집이 전쟁터였음
그래도 다행인건 고등학생때 아버지 가정폭력으로 유치장갔다가 구속될뻔한 위기였는데
그뒤로 폭력은 없어짐 언어폭력은 여전하지만...
지금 내 나이 40... 결혼하고 분가해서 살고 있지만 간간히 엄마에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진짜 말도안되는 이해불가능한 정신병자 행동들 들으면 살인충동을 느낌
결혼하고 그냥그냥 그래도 남들 비스무리하게 살수 있나 했는데
아버지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동생놈이 도박중독으로 10년동안 부모님집에서 은둔생활 하고있음
벌이도 시원치않고 아이 없이 사는게 나을거같아서 그냥 와이프랑둘이 친구처럼 살기로햇음
고등학생때부터 수면장애가 있는데 꿈속에서 아버지 죽이거나 개패듯이 패다가 쌍욕을 하다가
옆에 벽을 주먹으로 때리고 잠에서 깨고... 결혼하고 와이프한테 이 모습 들켰을때 그 기분은...
행복? 그런거 모르겠고 그냥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산속에서 조용히 멍때리며 살고 싶다
싸우는 것도 이해하고 열받으면 서로 욕할수도 있는데 진짜 때리고싶다라는 생각은 안들던데....내가 그래서 그런가 여자 때리는건 진짜 사람새끼도 아니지.
그리고 내가 사장도 패고 검사도 패고 추성훈도 패고 한다면 여자도 때릴수도 있겠지. 다 팰수 있는 세계 최상위포식자니까.
근데 강자한텐 찍소리 못하면서 여자는 팬다? 그것만큼 치졸한게 어딨냐고. 이런 이성이 있으니까 여자 때릴마음 1도 안생기는거. 폭력 휘두르는 사람들도 이걸 깨달았으면....아주 간단한건데.
안방에서 담배 피던 시절을 그리워해야 하나 두려워 해야하나~ 암튼 시대적 사고 흐름이죠.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입니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이 편지봉투에 담아온 쌀을 받아 집으로 오면서 받았던 내면의 상처. 지금도 먹먹해 지지만 그냥 추억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하시고 늘 즐겁게 사세요~~
하지만 그게 좋은것일 수도 있어요.
저 어릴때 아부지가 술만 먹으면 저를 때림. 공부를 중요시 하던 아버지라 성적이 좀만 떨어져도 때림.
하도 맞아서.아부지 늦게오면 또 술먹고 때리겠구나 싶어서 벌벌 떨고 살고 있었음.
술먹고 오는날 나도 맞고 어무니도 맞음. 다음날 어무니가 아버지 해장국 끓이심. 아버지 반성 1도 없음.
그게 계속 반복. 나중에 나이들고 보니 우리 아버지 폭행의 원인은 어무니의 방관과 아버지에 대한 우대 때문이었다함.
물론 어머니 없는 상황 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음. 다들 힘을 내고 사시길.
혹시.. 아이 있는.. 이혼하려는 형들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난 내가 기억하는 부모가 같이 집에 있던 기억.. 서너살 때 부터 싸우던 기억이 난다.. 지옥같은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빠와 함께 산 기억은 '싸움'에 대한 기억 뿐이고,
싸우고 아빠가 나간 날, 엄마가 누나 형아를 앞에 앉혀두고 농약을 가져와서 먹고 다 같이 죽자했던 기억도 난다..
난 아주 어렸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진난만한 양 엄마에게 안겨서 재롱을 떨며.... 살고자 했던 기억도 난다..
엄마는 계속 집을 나갔다가 9살에 이혼소장을 받아서 내가 읽었다.. 무슨말인지 다 알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모르는 척 했을 뿐..
TV를 틀어서.... 부부가 싸우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다. 누군가 이혼을 하면 눈물이 났다..
12살 무렵 새엄마가 왔는데.. 아이들 셋이나 데리고 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컷고.. 좋은 분이셨지만 내겐 지옥이었다..
행복하지 않게 자란 아이는.. 꿈을 갖기가 어렵다.. 실패와 좌절에 찌들어 있는 생각을 바꾸고 긍정적으로 사는데.. 40년이 걸렸다... 내 가족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
이혼하지말고... 좀 .. 행복하게 살아줘라..
7년전에 우리아들 초 1학년때 이때 엄마 안찾으면 평생 내아들 모습 못보여드릴것같아 동사무소 가니 너무나 간단 하게 초본을 떼주더라구요
엄마는 엄마 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 오셔서 안부 물으시네요
아버지는 그뒤로도 결혼을 3번이나 더하셨습니다.
혼인신고 아닌 결혼식장에서..초혼 포함 총 4번
미친 노인네 작년에 의절하고
죽기전에는 안보려구요
혹시.. 아이 있는.. 이혼하려는 형들에게 말해주고 싶은데..
난 내가 기억하는 부모가 같이 집에 있던 기억.. 서너살 때 부터 싸우던 기억이 난다.. 지옥같은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엄빠와 함께 산 기억은 '싸움'에 대한 기억 뿐이고,
싸우고 아빠가 나간 날, 엄마가 누나 형아를 앞에 앉혀두고 농약을 가져와서 먹고 다 같이 죽자했던 기억도 난다..
난 아주 어렸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양, 천진난만한 양 엄마에게 안겨서 재롱을 떨며.... 살고자 했던 기억도 난다..
엄마는 계속 집을 나갔다가 9살에 이혼소장을 받아서 내가 읽었다.. 무슨말인지 다 알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모르는 척 했을 뿐..
TV를 틀어서.... 부부가 싸우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다. 누군가 이혼을 하면 눈물이 났다..
12살 무렵 새엄마가 왔는데.. 아이들 셋이나 데리고 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컷고.. 좋은 분이셨지만 내겐 지옥이었다..
행복하지 않게 자란 아이는.. 꿈을 갖기가 어렵다.. 실패와 좌절에 찌들어 있는 생각을 바꾸고 긍정적으로 사는데.. 40년이 걸렸다... 내 가족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
이혼하지말고... 좀 .. 행복하게 살아줘라..
이제라도 행복하시길 바래요
인생 멋지게 사시길~화이팅입니다
글 읽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충분히 잘했고, 잘 견뎠고.. 잘 살고 계십니다.
이젠 행복한 날들만 계속되시길 바랍니다^^
잘 버티셨어요... 이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하시길 바랄께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제 42세인데... 아직도 마음이 안 추스려지고 늘상 불안해요.
한 10년 지나면 형처럼 나아질까요...
그리고 나이 일흔에 이혼하셨다.
엄마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게 사는가부다.
다 자신의 몫이 더군요.. 살면서 좋은생각 행복한 일만 하기도 바쁜데 왜그렇게 미련하게 누굴 미워 했는지 모르겠네요.. 살아갈 날이 아직 많지만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아 갈려고 합니다.
안그래도 어제 소년심판 몰아서 봤는데, 생각이 많아집니다.
앞으론 더욱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 공감합니다.
먹먹하군요...
7년전에 우리아들 초 1학년때 이때 엄마 안찾으면 평생 내아들 모습 못보여드릴것같아 동사무소 가니 너무나 간단 하게 초본을 떼주더라구요
엄마는 엄마 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 오셔서 안부 물으시네요
아버지는 그뒤로도 결혼을 3번이나 더하셨습니다.
혼인신고 아닌 결혼식장에서..초혼 포함 총 4번
미친 노인네 작년에 의절하고
죽기전에는 안보려구요
우리 엄마는 저 20살까지는 버텼어요.
그 뒤로 20년간 부친과는 모든 가족이 연락 안 했어요.
가정의 많은 문제는... 남자들이라는 생각입니다..휴..
지금은? 아니 90년대부터는 거꾸로 돼서 서서히 여자가 남편 괴롭히고, 친정만 챙기고, 남들하고 비교하고, 남편 대접도 안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남편이 참고 사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부인한테 대접 못받고, 아침밥도 못얻어먹고 쫓겨나듯 운전대 잡거나, 버스에 오르는 남편들, 애들 보면서 참고 사는 남편들, 지금은 그런 남편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나름 비슷한 후기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요.
저 초등학교 1학년때 집 나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왔음.
새엄마한테 오지게 맞았음. 새엄마도 사람인지라 자기 잘 따르고 말 잘들으면 미움? 안줬을수도 있음.
하지만 새엄마한테 엄마라는 단어를 쓴다는게 친엄마께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음.
그래서 아줌마라 부르고, 그 아줌마가 친엄마 물건 쓰는것도 싫었음.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친엄마랑 외갓댁 식구들이 우리집에 처들어왔음.
뭐 이혼이 원만이 해결 안됐는데, 새엄마가 들어와있고. 그때는 간통이라는 법도 있었던듯 (이때 제가 어려서 기억이 잘 안남)
친가 / 외가 싸우고 엄마 울면서 나갈때, 나도 가방싸서 엄마 손잡고 따라 가려니까.. 엄마가 울면서
나중에 꼭 대리러 올테니 잘크고 있으랬음 ㅠㅠ (그날 따라가려고 했다고 또 오지게 털림ㅋㅋㅋ)
그때부터 한 1년 엄마 못보고, 소식도 못들었음. (그땐 유일한 연락 수단이 집 전화인데, 엄마가 집에 전화해서 나 바꿔달라고 하기가 만무했음.)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학교마치고 나가는데 엄마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후문으로 나가거나 담이라도 뛰어넘었으면 못만났음. 참고로 엄마의 연고지랑 내 연고지 지역이 달랐음)
울고불고, 그렇게 1년에 한두번씩 엄마가 학교앞에서 기다려주셔서 한번씩 만남.
근데, 또 이게 티가 남. 엄마가 나 만나면 옷 꼬라지가 왜 이러냐고ㅋㅋㅋㅋㅋ 나름 비싸진 않아도 추리링 한두벌 신발 양말 필요한 학용품 어느정도의 용돈을 항상 주고 가셨음.
아버지랑 아줌마는 또 그걸 얼마나 싫어했을까... 차라리 인정을 해줬으면 나으렷만..
여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엄마는 나때문에 재혼도 안(못)하심...
내가 중학교때 엄마가 재혼 얘기를 살짝 하셨는데 이젠 믿을곳이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버지께 격었던 악몽들이 다시 온다고 생각해서인지... 여튼 엄청나게 울었음.. 가지말라곤 말 안?못?했는데, 그냥 서럽게 막 울었음... ㅠㅠ
지금 어머니 혼자 계신거 보면, 그때 내가 큰 잘못을 했나ㅠㅠ속상함... 아~ 코찡...
지금 엄마에 가장 큰 소원이 제 결혼이신데, 어릴때 트라우마 때문인지... 비혼까진 아니지만, 결혼 그거 꼭 안해도 된다에 가까움.
지금 아버지는 수신거부 해놨음. -2000자 돼서 마무리 할게요.
내 새엄마 약 10여년간 키워줌.(내겐 친엄마보다 더한 존재) 결국 중1때 이혼.
이후 아빠는 세번째, 네번째 여친을 데리고 오고 엄마라고 부르라함.
간질이 있어 뇌수술까지 했는데 아빠는 연락도 없었음. 오죽하면 누나가 수술비없다고 아빠한테 연락하니 나몰라라..
고딩때부터 누가 소원이 뭐냐 물으면,
돈은 먹고살만큼만 벌고 쉬는날에 와이프와 자식과 도란도란 식사하고 얘기나누는거라 얘기함.
그저 평범하게 소박하게 사는게 내 꿈.
이후 농인 여성과 결혼(이 여성도 결손가정 출신)
서로 부모가 없다시피하고 공장다니며 원룸부터 시작.
원룸->10평 투룸->25평 지금의 집.
악착같이 일해서 결혼 6년차인 지금, 맞벌이 졸업하고 혼자 외벌이하고 딸아이 둘 낳아 사는데 너무 행복함. 그저 숨쉬는것 자체가 지금 내 행복...
그렇게 계속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이젠 남은 여생, 그 힘들었던 고통이 몇 곱절 사랑과 행복으로 남아있을겁니다.
행복하세요~
아무튼 아픔을 가진 모든 분들 힘내시고 행복해지시길 바랍니다.
이러다 진짜 누구하나 죽겠다 싶을 상황이 계속되도 우리 형제 버리진 않았음...
그런점에서 참 항상 감사하지만 지금돌이켜보면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음
집안 다 부서지고 부모님 둘이 붙어서 주먹발길질하고 쌍욕이 난무하고
나는 엄마 안맞게 하겠다고 앞에서 막아서고 경찰이오고 유치원,초중고 학창시절 다 그냥 지옥같았음
항상 우울했음... ptsd? 그런게 없을리 없겠지... 그냥 집이 전쟁터였음
그래도 다행인건 고등학생때 아버지 가정폭력으로 유치장갔다가 구속될뻔한 위기였는데
그뒤로 폭력은 없어짐 언어폭력은 여전하지만...
지금 내 나이 40... 결혼하고 분가해서 살고 있지만 간간히 엄마에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진짜 말도안되는 이해불가능한 정신병자 행동들 들으면 살인충동을 느낌
결혼하고 그냥그냥 그래도 남들 비스무리하게 살수 있나 했는데
아버지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동생놈이 도박중독으로 10년동안 부모님집에서 은둔생활 하고있음
벌이도 시원치않고 아이 없이 사는게 나을거같아서 그냥 와이프랑둘이 친구처럼 살기로햇음
고등학생때부터 수면장애가 있는데 꿈속에서 아버지 죽이거나 개패듯이 패다가 쌍욕을 하다가
옆에 벽을 주먹으로 때리고 잠에서 깨고... 결혼하고 와이프한테 이 모습 들켰을때 그 기분은...
행복? 그런거 모르겠고 그냥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산속에서 조용히 멍때리며 살고 싶다
고생하셨어요
조용히 혼자 멍때리며 살고 싶다...
여러 경우를 참고해서 자기가 맞는 판단을 해야함.
무조건 이혼하지마라..
무조건 결혼 하지마라..
무조건 결혼 해라...이런 건 아님.
자기인생 자기가 책임지자.
엄마가 날 두고 나간다는 걸 알고 있는 마지막 밤, 자고 일어나면 우리 엄마가 없다는걸 상상하면 너무 슬플거 같은데
그 뒤에 다시 만났길 바랍니다
마누라가 바람나도 아버지란 사람은 직장을 가고 엄마는 자식들하고 있으면서 앞에서는 항상 착한엄마로 보여지기에
그리고 놀라운사실은 부전자전이다 아닐거 같지???
사자우리에 집어 넣어야지
엄마 안보내려고 밤새 레고 맞추는 아들 마음이
너무 안타깝네요..
그리고 내가 사장도 패고 검사도 패고 추성훈도 패고 한다면 여자도 때릴수도 있겠지. 다 팰수 있는 세계 최상위포식자니까.
근데 강자한텐 찍소리 못하면서 여자는 팬다? 그것만큼 치졸한게 어딨냐고. 이런 이성이 있으니까 여자 때릴마음 1도 안생기는거. 폭력 휘두르는 사람들도 이걸 깨달았으면....아주 간단한건데.
이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난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이혼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다.
어렸을 때에는 내가 힘이 부쳐 어쩔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아버지가 너무 가벼워졌다.
싸우면 아버지를 들고 한 쪽으로 모신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머니가 83세에 돌아가시니 막 우시더라.
그리고 1개월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갖은 고생하시면서 옥탑방에서 아들 둘 키우셨음.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셨기에 지금 내가 그나마 정상적으로 자란것 같음...
저 어릴때 아부지가 술만 먹으면 저를 때림. 공부를 중요시 하던 아버지라 성적이 좀만 떨어져도 때림.
하도 맞아서.아부지 늦게오면 또 술먹고 때리겠구나 싶어서 벌벌 떨고 살고 있었음.
술먹고 오는날 나도 맞고 어무니도 맞음. 다음날 어무니가 아버지 해장국 끓이심. 아버지 반성 1도 없음.
그게 계속 반복. 나중에 나이들고 보니 우리 아버지 폭행의 원인은 어무니의 방관과 아버지에 대한 우대 때문이었다함.
물론 어머니 없는 상황 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음. 다들 힘을 내고 사시길.
다들 결혼할때 생각해서 잘들 살아봐요
밖에서는 지랄발광을 하더라도 집에 들어가서 가장 약한 사람을 상대로
그러지마라.
가장 찌질한 놈이 밖에서는 호구이다 집안에서 왕처럼 노는 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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