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 을미년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아래 조선침략의
걸림돌 황후를 살해하려
일본 낭인 400명이 제물포에 배를대고 세시간을 걸어
경복궁으로 향하였다. 홍계훈등 수비대가 첩보를 입수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당시 별기군 대장 우범선은 오히려 일본인들이 궁에
난입하는 것을 직접도왔다.
우범선의 도움으로 궁에 들이닥친 그들은 궁녀로 변장하고
마루아래 숨어있던 명성황후를 난도질하고 옷을 벗긴후
기름을 부어 소실하고 연못에 던지고 도망하였으니
이것이 국모가 살해당한 치욕의 을미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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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망가고 거기서 일본여자와 결혼
우장춘을 낳은 것이다. 우장춘은 커서 동경대 농학실과에
들어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당시 먹거리가 부족했던
고국을 위해..우성학이 판치던 그시절 "종의 합성"연구에
몰두 수박,오이,토마토.고추등 지금 우리 농민들이
재배하는 20여가지
농작물을 개량하였고 일본배추를 속이 꽉찬 지금먹는
김장배추로 만들었고
제주감귤, 강원도 감자도 그의 작품이다.
힌국들녘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도
양배추와 배추로 새로운 종을 만든 우장춘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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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든 한쪽으로 해를 끼친자의 후손이 국가에 이익을
줄수도 있듯
일본차의 대명사 캠리를 타는것이 얼핏 국부의 유출 같으나
한편으론 OECD 자동차사망률 1위 한반도에 안전한
닛뽄차가 점령해 조선인 사망자가 줄어든다면
이 어찌 조상님들이 기뻐할일이 아니겠는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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