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대책(對策, 논술 문제에 대한 답안)을 쓴 36세의 임숙영(任叔英)은 ‘왕 자신의 실책과 나라의 허물에 대하여는 묻지 않고 왕비와 후궁의 정사(政事) 개입을 묵인하며 뇌물과 코드인사가 난무하고 임금을 비판하는 언로(言路)를 막는 것이야말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직언한 대책문(對策文)을 제출한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한다’는 결기로 써낸 대책문엔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정진하시되 자만을 경계하라’는 고언(苦言)도 덧붙였다.
문과 합격자의 등수를 결정하는 전시에서 임숙영이 제출한 대책문에 시관(試官) 심희수는 그를 병(丙)과로 급제시켰다.
이거바바
작성글 보기 하니 2찍이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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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재, 인왕산 호랑이.
일제놈들이 싸그리 사냥을 해서 씨를 말렸죠.
꼭 천벌을 받기를.
이런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선비들이나 가끔씩
한양에 갔었죠 ㅎ
시험보러 한양 간다는 얘기는 허구죠
조선시대 임금 욕하면 3대가 멸종이여 ㅋㅋ
무슨 임금 욕하고 합격을 해? ㅋㅋ
임숙영이란 선비가 광해군이 일은 안하고
욍비나 후궁이나 끼고 욕심이나 채우고 있다고
욕지거리 쓰고 합격했는데?
나라가 썩은게 왕이 개판 처서 그런거라고
썼는데 합격했어
그리고 뭔 대부분이 뇌물주고 합격했다 그래 ㅋㅋ
조선 말기 망하기 직전 이야기 하는거야?
작성글 보기 하니 2찍이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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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대책(對策, 논술 문제에 대한 답안)을 쓴 36세의 임숙영(任叔英)은 ‘왕 자신의 실책과 나라의 허물에 대하여는 묻지 않고 왕비와 후궁의 정사(政事) 개입을 묵인하며 뇌물과 코드인사가 난무하고 임금을 비판하는 언로(言路)를 막는 것이야말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직언한 대책문(對策文)을 제출한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한다’는 결기로 써낸 대책문엔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정진하시되 자만을 경계하라’는 고언(苦言)도 덧붙였다.
문과 합격자의 등수를 결정하는 전시에서 임숙영이 제출한 대책문에 시관(試官) 심희수는 그를 병(丙)과로 급제시켰다.
이거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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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탕치러 쪽발이들이 파견한 2찍 알밥이구만
살인마에 강간범들을 중용해서 쓰는 것보다는
정상적이니
느그 나라 걱정이나 해라
아웃책팔아 2찍이 욕이야?... 천박한 말이야?
너도 스스로 2찍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거야?
말을 해바바...
2번찍은 사람 2찍
1번찍은 사람 1찍
이게 뭐가 천박한 말이야? ㅋㅋㅋㅋㅋ
ㅋㅋㅋ
일배충 새끼가 나불 나불 하는 글이니 신고와 반대만 눌러주세요
착각 하지마라! 니 조상이 돈주고 진사라도
했나보다
3대가 멸족이겠지 ㅋㅋㅋㅋ
아무리 무식해도 멸족하고 멸종을 구별못하나??
오래도 산다 ...개쉬키
딴말 하기없기요
무악재, 인왕산 호랑이.
일제놈들이 싸그리 사냥을 해서 씨를 말렸죠.
꼭 천벌을 받기를.
출몰하는 호랑이도 가만놔둬야하나?
세종이 참 나쁜임금이었구만
조선왕중에 호랑이를 가장많이잡아들인 왕이였으니...
한번에 박살내기 좋은 클라스
70년대까지도 호랑이출몰설이보도되었고
애초에 시베리아에서 조선까지 이동하는 산짐승을
어느 한지역에서 멸종어쩐다는것도 말이안됨
조선시대 민가에 출몰하는 호랑이를 냅뒀다는 건 어디서 줏어 들은겨? 니 부모님께서는 아무거나 줏어먹으면 탈난다고 안가르치던?
민간에 호환이 발생하면 착호갑사라는 특수목적군을 출동시켜서 호랑이만 전문으로 잡으러 다녔다 워낙에 빠르고 산중깊숙히 숨어들기에 일일히 다 잡지못했을뿐이지 븅신
한국인들이 직접 벌을 내리자고 쓰는 습관을 들이자
그게 호랑이라고 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진짜 마주치면 오줌 지리고 기절할 듯.
멸종되지 않고 인명사고가 계속 발생했다면
국가에서 얘네들을 가만히 놔뒀을까?
참으로 애매하네....
사대부집들은 포수 한명 고용해서 산넘어가기도 했었고요.
그 시절엔 암내가 심했던 사람은 죄다 잡혀먹었을듯...
과거 시험 보러 올라갈때는 말도 빌리고 하인과 함께 짐 꾸려서 여러명이 출발 하더군요.
그리고 과거시험 공지가 뜨면 출발하는게 아니라 미리 가서 몇달 동안 한양에 머물면서 시험정보도 얻고 준비도 하면서 지내더라구요.
시험 떨어져도 귀향 안하고 한양에 머물면서 다음 시험 준비하기도 하구요.
무과 응시자들도 이러는데 문과는 더했겠죠.
제일큰 난관은 돈 아니었을까요?
지방에서 한양까지 가는 경비,
한양에서 체류비용,시험준비비용
일반 서민은 힘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수년간 고시준비해해야되니깐
경제제인 문제도 무시못하고요~
에일리언 커버넌트 처럼
섬뜩한 고요함이 느껴짐
신분제 폐지로 자유인이되어 산속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거나
황무지를 개간하고살았음
그런데 산중엔 호랑이.범이 출몰해서
인명피해가 많았음
그래서 호랑이.범사냥을 한건데
뭔놈의 민족혼 이지랄...
조선민중이 뭔 호랑이를 신격화하고 살았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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