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실의 출발점 고천원고지
박태선기자 | 기사입력 2008/04/2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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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 산120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88고속도로로 들어선 뒤 성산나들목에서 내려 고령읍으로 가는 4차로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고령 대가야 고분군을 지나 우측으로 가야대학교가 있다. 가야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고천원공원 이라 적혀 있는 石碑(석비)가 있다. 석비가 가르키는 길 따라 내려가면, 일본 황실의 출발점인 고천원고지가 있으며, 일본에서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한다. 입구에도 고천원공원이라 적힌 석비가 있고 멀리 홍살문도 보인다.
고천원고지 입구 좌측 아래에 있는 연못. 아마도 우리나라 왕릉이나 정승들의 묘 앞에 있는 方池圓島(방지원도)를 뽄딴것이나 아닌지..
고천원고지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다보면 홍살문 아래쪽 우측에 있는 靑瓷亭(청자정)
한국의 가야대학교와 일본의 대판 청산 대학이 서로 나란히 탑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은 한일 선린우호의 장으로 기억될 수 있는 곳인 셈이다.
요즘 경북 고령에 가면 일본인 관광객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을 다스렸던 옛 대가야국의 왕족 일행이 동해를 건너가 일본국을 통치 했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쓰쿠바 대학의 한 교수가 논문에서 대한민국 고령 이곳이 일본 황실의 원조가 살던 곳이라 밝힌 이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일본인의 뿌리찾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한다.
고천원공원 얕은 언덕에 올라서면 돌비엔 일본어로 글들이 새겨져 있고, 일본황실의 족보를 새겨 놓은 碑(비)와 안내판에는 유래도 설명해 놓았다.
일본 천황가의 고향이라고 전해오는 '高天原(고천원)'이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비석 제막식이 가야대학교 고천원공원에서 열렸다. 한, 일 양국의 학계 인사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막식은 고사제, 비석 제막, 지신밟기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한다.
영어권 박사로는 일본 고고학의 최고인 존코(johncatercovell,1910~96,columbia university)은 "왜국을 최초로 정복한 한반도의 왕국은 가야가 틀림없다. 왜국에서 발견되는 철기 무기가 모두 가야의 제품으로 재질또한 가야의 철이다" 라고 발표했다. 서울대 사학과 '이병도교수'도 처음으로 일본 원주민을 제압하여 국가(倭)를 건설한 사람은 가야인이다. 4세기 백제가 가야를 물리치고 일본을 정복했는데 그가 바로 백제왕족 '應神(응신)'이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이 일본의 건국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머물렀던 곳이 고령지역이였음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공원이다. 일본 왕가의 본향에 대해서는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일본 왕조 건국 이전 조상들의 이야기를 신격화한 '신대기'편에 '韓(한)'의 고천원이란 천상계에 살던 조상신들이 후손인 '스사노 오모미코토'가 포악해 추방하자 그 아들 '이타케루노 미코토'를 데리고 신라의 '소시모리(쇠머리 牛頭)'에 살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진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동쪽 '이즈모'국 또는 근국으로 건너가 가시벌에 궁궐을 짓고 신유년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돼 있다.
역사서 기록대로 일본은 고대사회의 지리적 조건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신라인들이 건너가 나라를 세우고 일본인의 선조가 된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우두산 일대가 일본 왕가의 본향으로 주장되는 것은 일본 역사서에 이두문자식 한국지명 '소시모리'가 쇠머리, 즉 우두산으로 가조면 수월리 산1에 현존하고, 고천원으로 추정되는 우두산 자락의 상수월 일대 넓은 뜰은 옛날 궁궐이 있었다는 뜻으로 현재도 '궁베미'로 불려오기 때문이다. 가야대학교 내에 조성되어 있는 고천원고지에는 일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머물렀던 곳이 바로 고령지역이라는 일본 학자의 학술논문이 발표된 후, 이 대학 이경희총장이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었고 일년에 한 번 제를 올릴때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高天原(고천원) / 李慶熙 옛날 이곳은 高天原(고천원)이라 불렀다. 山(산)과 내 흙과 들은 모두 옛 그대로다. 이곳에 수 많은 사람이 태어나 일하고 아이를 낳고 길러서 늙어지면 이 땅에 묻히었다. 보라 건너 산이 加耶王陵(가야왕릉)을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아득히 먼 알타이의 흐름을 받아 그들의 子孫(자손)은 혹은 이 땅을 열고 혹은 반도 남녘에 加耶國(가야국)을 세우고 또는 바다 건너 오늘의 日本(일본)을 만들었다. 이 거룩한 高靈(고령)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여 加耶山(가야산)의 맑은 물을 흠뻑 마시고 바르게 자라서 길이 이 땅을 사랑하고 더욱 넓은 世界(세계)로 나래를 치며 가지 아니 하려나 碑(비)에 새겨진 우리말 내용을 적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이 끝나는 지점부터 일본어로 같은 내용의 글이 새겨져있다.
넘칠 濫(람) 술잔 觴(상) : 뜻의 풀이대로하면 술잔이 넘친다는 뜻도 있으나, 일의 처음이나 시작을 이룸을 뜻한다고도 한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일이 술잔의 술이 넘치도록 풍성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던것은 아닌지.. 대가야의 시작을 이루었던 이곳에서 일본 황실의 시조도 함께 했다니, 감회가 새롭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비도 있었다. 무언가 적으려 세워두었던지...아니면 빈 여백으로 그냥 두었는지..모르겠지만, 무한한 우주의 넓음을 빈 여백으로 말하고 있는것도 같았다.
고천원고지 안쪽에서 바라본 전경 마침 내일 치룰 행사준비로 한창이었다. 해마다 대가야 고분 축제일과 같이 맞추어서 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고천원고지 왼쪽 전경 입구엔 홍살문이 있는가하면 일본어로 된 비석이 서 있고, 학자들이 발표를 하였다 하지만, 믿을 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고천원공원에서는 일본의 건국시조인 '아마데라스 오호미가미'가 고령에서 출생했다는 학설을 기반으로 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고천원제가 매년 열린다.
원문링크 : https://www.mhj21.com/sub_read.html?uid=4416§ion=section27
이렇듯 일본왕의 발상지는 경상도입니다. 경상도가 그리도 친일,매국하는 연원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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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ungno.tistory.com/m/169
이런것들 사실인지 궁금 보이스피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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