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에 조예 깊고 애정 많았던 DJ, 내가 만난 최고의 관객”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이 있어서 첫 민간 출신 국립극장장이 됐나.
“나는 뭐 그분 선거 도와준 적도 전혀 없다. 김 전 대통령(DJ)이 (야당 지도자일 때) ‘서편제’를 보시고 나더니, 당시 내가 운영하는 극단(‘아리랑’)에서 대학로 소극장 연극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오겠다(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러시라’고 했는데 그 추운 겨울에 100석도 안 되는 소극장인데 국회의원 7~8명을 데리고 사모님(이희호 여사)과 함께 오셔서 줄 서서 표를 사셔.근데 너무 자리도 좁고,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가 안 좋으셔서 (연극 관람하기가) 불편하실 것 같더라. 내가 따로 앉을 만한 의자를 두 개 급히 구해서 사모님과 앉아 보시도록 했다.
연극 보고 나서 (DJ가) ‘단원들 하고 설렁탕 좀 먹자’고 하시더니 공연장 근처 설렁탕집으로 국회의원들과 단원들 합쳐 10여명이 가서 연극 본 소감 등을 나누며 밥을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DJ가) 모 의원 이름을 부르니 그 의원이 밥 먹다가 ‘네’하며 벌떡 일어나더라. (DJ가) ‘자네는 연극을 몇 편이나 봤는가’ 물었고 그 의원은 ‘대학생 때 이후 처음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DJ가) ‘이 사람아’ 그러면서 ‘여기 서편제까지 한 김 대표가 말이야 이 열악한 소극장에서 예술 혼을 불태우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좀 와서 자주 (공연을) 보고, 격려도 해줘야지 말이야 안 보면 쓰겄는가’ 하셨다.
그러고선 우리 극단에 후원금 200만원을 주고 가셨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관객은 DJ였다. 정말 최고의 관객이었다. 다른 정치인들은 ‘초대권 안 주냐’, ‘왜 중앙에 좋은 자리에 안 앉히냐’고 민원하거나 좋은 자리 안 줬다고 삐져서 화내고 가거나 했는데 이 분(DJ)은 문화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고 (예술인을 귀하게 여겼다.) 문화예술 쪽에 애정도 쓰시고, 정말 이 양반은 무슨 작품이나 공연을 보면 관련된 얘기를 박학다식하게 한다.
‘서편제’를 보고 나서도 작품을 얼마나 분석했는지 (전문) 평론가 이상으로 말씀을 하셔 깜짝 놀랐다.”
...................................................안숙선 /94년 수궁가 완창 때 처음 뵙게 됐죠.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는데요, 수행원과 이희호 여사 등 10여 분이 오셨어요. 8월 무렵이라 무척 더울 때였는데 에어컨이 없었어요. 세 시간 넘는 공연 동안 부채질을 하면서도 끝까지 들으시더군요. 공연이 끝난 후에 연락이 왔어요. 예술가를 밖으로 나오라고 할 수 없으니까, 분장실로 찾아가도 되겠느냐고요. 저야 영광이었죠. 실제로 오셔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금일봉도 주시고 그러셨죠.
임형주/ 특별히 수궁가를 보러 오신 이유가 있었을까요?안숙선 /생전에 우리 소리를 아끼셨고요. 특히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를 좋아하셨어요. 제가 듣기로는 과거에 납치됐을 때 바다에 수장될 위험에 처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잖아요. 수궁가 내용이 토끼가 용궁 가서 죽을뻔하다 꾀를 부려 살아난 이야기다 보니 남다르겠죠. 그래서인지 제가 토끼 역할을 할 때마다 귀엽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윤썩널....보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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