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9승1패 승률 95%!!!!!!
중국은 지금의 중국 바둑을 역대 최강 황금세대라 부름
그 황금세대에서 선발전을 거쳐 5명을 선발했는데
신진서 홀로 적진에서 그 황금세대를 모조리 꺽어버림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
<촉도난>의 한 구절로
'한 장수가 관문을 지키는데
만 명이 와도 뚫지 못한다'
신진서 통산 1058전
831승 1무 226패
승률 78.62%
조훈현(70.02%)
이창호(70.42%)
일본 기사에게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음
41전 41승 무패
일본 기사에게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음
41전 41승 무패
모르면 이딴 댓글안쓰고 가만있는게 어떨까?
(혹 정치적성향땜에 그러나??..정치와 스포츠는 별개다)
예전에 한국바둑은 일본, 중국에 비해
한수아래란 인식을 중국과 일본은 당연시했고
우리 스스로도 그랬음..
우리 기사들중 싹수가 있어보이면
일본으로 유학가는게 엘리트코스였을정도
(지금은 정 반대지만)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대회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고
80년대만 해도 당시 세계최강은 일본이라고
누구나 인정했고 중국이 추격하는 형국이었지,
한국바둑은 듣보잡 취급받았기에
국제대회라곤 중일 슈퍼대회같은 일본과
중국 1류 기사들끼리 붙는 교류전외엔
없었음..(우린 겸상조차도 안해주고 깔보던 시절)
그러다 80년대말에 웅창기배란 세계대회가
첨 생겼을때 참가국 숫자쿼터를 실력별(?)로
배분했는데 일본 6명, 중국 4명, 대만 3명이었고
한국은 미국, 호주와 더불어 단 1명으로
푸대접 받았을만큼 저평가되었고
그냥 세계대회란 명분나게끔 들러리 참가였음..
그러나 단 1명 참가한 한국의 조훈현이
내노라하는 강자들을 다 물리치며 우승을
하며 한국바둑을 한수 아래 변방 취급하던
일본과 중국의 콧대를 통쾌히 꺽어놓음..
(바둑으로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귀국 카퍼레이드를 그냥 했겠나?
그만큼 전혀 예상치못한 국가적인 쾌거였음)
알다시피 바둑은 스포츠처럼 단판승부가
아니라서 절대 운이 좋아서 우승못함..
당시 결승전도 5번기로 열림..
그리고 알아야할게 조훈현은 그때 전성기가
아니라 38세로 기력이 내리막이었던 상태..
이세돌이 프로은퇴했을때보다 더 많았던
나이였음..국내에서야 조훈현이 이창호보다도
빠른 역대 프로입단 최연소기록을 가진
천재이자 당대 국내최강자였던걸 알았지만
국제무대가 없었기에 그 실력을 검증못해본것임
세계대회 창설이 15년, 10년만 더 빨랐어도
더 엄청난 기록을 세웠을것임..
늦게나마 세계대회가 생기는 바람에 조훈현은
보통기사라면 전성기가 지났을 나이에도
엄청난 실적을 보였고 자연스레 그 바통을
제자이자 또 다른 천재인 이창호에게
넘겨준 한국바둑의 자랑스런 존재임
조훈현이 있었기에 이창호가 나올수있었고
뒤이어 이세돌이 나온것이고 지금의 신진서가
있게된것임,,
그리고 또다른 업적은 조훈현으로인해
그때까지 저평가 받던 한국바둑이 재평가되며
동시대 서봉수등도 더불어 빚을 보게됨
엄지척!!!
그렇다고 제가 바둑 찐 애호가는 아닙니다,,,8~90년대엔 바둑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후엔 먹고사느라 관심적어진
그저 스포츠 두루두루 관심있었던 아재입니다 ^^
그 당시 80년대에는 박철순이 연봉보다 훨씬 더 잘벌었지
님 댓글보고 카퍼레이드 장면 생각나서 추가로 집어넣어 수정했습니다,,
그때의 그 우승은 월드컵 4강 정도의 생각도못한 쾌거 아니었을까요?
조훈현도 바둑 잘 두지 않았나요?
감사합니다
중국인 100명이 적어도 필요하다.
일당백 한국인!
영희
바둑 이 보고 싶다
이 글쓰고 혼자서만 웃고있지
신진서님이 넘어섰네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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