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 되고 62,5 나서 부흥에 성공 이걸 천황이 공식적으로 이야기 했져. 지금도 장기경기 침체 회복 방안으로 한국전쟁 나길 대다수가 바라고 있어요. 역사외에 일본국민의 혐한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던 그 이상입니다. 일본 여행가는 인간들 본인의 무지를 감추려고 개소리 쳐하겠지만
당시 미군이 고성능 폭탄을 투하한다고 폭탄 투하지역에 항공기로 찌라시 살포하며 대피하라고 안내를 했었음. 하지만 일본군이 폭탄의 위력을 몰랐고 선동으로여겨 주민이동 통제하며 인명 피해가 컷던것임. 히로시마에 첫번째 폭탄이 터지고 그 피해규모를 보고했을때도 지도부에선 직접보지 않았으니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가 두번째 폭탄이 터진후에야 그 위력을 실감하고 무조건 항복을 했던것임. 계획상으론 총 9개였지만 보유량은 2개였고 만들어지는데로 계속 투하예정이었음.
몰락작전 수행하기엔 일본에 산악지형이 많고 일반인들까지 죽창지어주며 반자이 돌격 종용하던 족속들이라 미군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오키나와에서 이걸 경험한 미국 입장에선 그 넓은 본토를 이 짓을 해가며 점령하는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듯. 결정적으로 소련이 남하하여 단물빨아먹으려는 중이었는데 대일전에서 제일 희생한 미국이 몰락작전으로 싸우는 동안 소련이 훗카이도로 남하해서 손쉽게 일본영토 먹는 꼴을 볼순 없었죠. 결정적으로 몰락작전이 시행되었다면 한반도 전역이 공산화되었을거고 우린 지금 김정은 치하에 있었을수도 있습니다.
B29폭격기뜨면 높은고도에서 폭탄 떨궈대니 요격할 방법도 없었는데 당시 한번출격하면 200-300대에 도시 하나가 삭제되는 수준이었음.
핵폭떨군 당시 미군에서 감청결과 당시 일본 수뇌부는 큰 폭탄에 뚜둘겨맞아 도시 잃었어요하는 미지근한반응이었음.
남방전선으로 전력을 빼먹긴했지만 장개석의 미온적인 움직임으로 중국 관동군이 100만 가까이 건재했었고 중국내 서부해안도시는 나름 점령모드여서 아직은 버틸만하다는게 당시 분위기였음.
하지만 천만 가까운 러시아군이 베를린 아작내고 인간백정 스퇄린이 떡하니 선전포고하고 내려오면서부터 군부가 아닌 일본내각에서 조건없는 무조건 항복을 원츄하게됨.
알아보니 소련군에 잡히면 쉬뇌부 군부 민간인 안가리고 죽이고 시작한다는데 미국쪽은 일단은 살려는 드릴게 이미지여서 미국에 처분을 맡기자는게 당시 분위기였음.
스탈린 또라이만 아니었으면 지대로 삭제각이었는데 너무나 아쉬움. 이때 독일처럼 제대로 응징당했으면 야스쿠니신사나 과거사에대해서 개소리는 못했을텐데
폭격기 기수 돌린걸로 듣긴 했는데 혹시 틀린정보면
저보다 꽈추큰 형님들이 고쳐주실예정
일본이 가장 두려워한건 리시아 병력의 일본본토 상륙이었죠.
아직도 이말에 부정이 있는 사람은 쪽바리임
핵폭떨군 당시 미군에서 감청결과 당시 일본 수뇌부는 큰 폭탄에 뚜둘겨맞아 도시 잃었어요하는 미지근한반응이었음.
남방전선으로 전력을 빼먹긴했지만 장개석의 미온적인 움직임으로 중국 관동군이 100만 가까이 건재했었고 중국내 서부해안도시는 나름 점령모드여서 아직은 버틸만하다는게 당시 분위기였음.
하지만 천만 가까운 러시아군이 베를린 아작내고 인간백정 스퇄린이 떡하니 선전포고하고 내려오면서부터 군부가 아닌 일본내각에서 조건없는 무조건 항복을 원츄하게됨.
알아보니 소련군에 잡히면 쉬뇌부 군부 민간인 안가리고 죽이고 시작한다는데 미국쪽은 일단은 살려는 드릴게 이미지여서 미국에 처분을 맡기자는게 당시 분위기였음.
스탈린 또라이만 아니었으면 지대로 삭제각이었는데 너무나 아쉬움. 이때 독일처럼 제대로 응징당했으면 야스쿠니신사나 과거사에대해서 개소리는 못했을텐데
걸레냄새 = 쪽빠리
더 쳐맞아야하는데
1.독일이 아닌 일본에(아시아) 투하한점
2.핵투하흘 작전적 투하라고 하지 않고
핵실험이라고 명시된 문서가 발견됐죠
항복을 안해서 떨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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