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와 각계 각층에 뿌리 박힌 친일 세력의 활동을 보면서 아직도 그들의 일사분란한 조직적인 정치 세력화 와 활동의 내용을 보면서도 아직도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방된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렇게 많은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죠?
그 이유는 여러분은 친일파도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 당시 공개된 일본의 발표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1910-1945) 동안 한국에 상주했던 일본인 인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증가했습니다. 각 시기별 통계를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 **1910년**: 한일 병합 직후 약 170,000명
- **1920년**: 약 350,000명
- **1930년**: 약 590,000명
- **1940년**: 약 720,000명
- **1945년**: 해방 직전 약 700,000명
이 숫자들은 대략적인 추정치로, 해마다 변동이 있었으며, 주로 대도시와 주요 산업 지역에 많이 거주했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으로 되돌아간 일본인의 총 수는 약 8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해방 후 1945년부터 1946년 사이에 대부분의 일본인이 귀환했습니다. 이 과정은 연합군과 일본 정부의 협력 하에 이루어졌으며, 주로 선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인구에는 군인과 민간인이 모두 포함됩니다.
해방 후 한국에 남은 일본인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1945년에서 1946년 사이에 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수치는 명확하지 않지만, 해방 후 한국에 남은 일본인의 수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남았을 수 있으며, 이후 대부분 일본으로 귀환했거나 한국 사회에 동화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에서 출산한 일본인의 정확한 수에 대한 통계는 제한적이지만, 일부 자료에 따르면 약 30만 명에서 40만 명의 일본인이 한국에서 출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총 인구 증가와 출생률 등을 고려한 추정치입니다.
특이한 점은
일본인 남자의 혼외 자식등의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 호적에 올라간 한국인의 수는 약 2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일본으로 이주했거나, 일본인과의 결혼 등을 통해 일본인 호적에 편입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이 정도로 추정됩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과 그 후손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 시기의 결혼 및 가족 관련 자료가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않았거나, 일부 자료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추정치와 연구 결과를 통해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1. **한국인과 일본인 간 결혼**:
- 당시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의 수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 사이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는 전체 한국 인구에 비해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증가 추세를 보였습니다.
2. **후손의 수**:
- 후손의 경우, 결혼한 부부당 평균 자녀 수를 고려하면, 그 후손의 수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각 부부당 2-3명의 자녀를 가정하면, 대략 4만에서 6만 명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여러 연구자들의 추정과 일부 역사적 자료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정확한 통계는 아닙니다. 보다 정확한 데이터는 당시의 결혼 및 출생 기록을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기록이 제한적으로 존재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마지막 해인 1945년 당시 한국과 만주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과 일본인 공무원의 수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지역의 일본군**:
- 1945년 당시 한국에는 약 200,000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한과 북한의 주요 군사 기지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2. **만주 지역의 일본군**:
- 만주(만주국)에는 약 700,000명 이상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 국가로, 일본군의 주요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소련의 만주 전략공세작전(1945년 8월) 때 소련군에 의해 급격히 붕괴되었습니다.
3. **한국의 일본인 공무원**:
- 일제 강점기 말기 한국에는 약 70,000명의 일본인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행정, 경찰, 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였습니다.
4. **만주의 일본인 공무원**:
- 만주국에는 약 50,000명의 일본인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만주국의 행정과 관리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이 수치들은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대략적인 추정치로, 전쟁의 막바지에 있었던 혼란과 기록의 불완전성 때문에 정확한 수치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인의 총 인구수는 약 8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는 다양한 출처와 연구에 기반한 추정치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증가했습니다:
1. **초기 이주** (1910년대):
- 한일 병합 직후 약 170,000명 정도의 일본인이 한국에 거주했습니다.
2. **중기 이주** (1920-1930년대):
- 1920년대에는 약 350,000명으로 증가했고, 1930년대에는 약 590,000명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 시기에는 한국의 경제 개발과 산업화에 따른 이주가 활발했습니다.
3. **후기 이주** (1940년대):
- 1940년대에는 약 720,000명으로 정점에 달했습니다.
해방 직전인 1945년에는 약 700,000명의 일본인이 한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수치들은 대략적인 추정치로, 당시 일본인의 한국 내 이주와 거주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만주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되돌아간 일본군의 총 수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에서의 일본군**:
- 해방 당시 한국에는 약 200,000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한과 북한의 주요 군사 기지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2. **만주에서의 일본군**:
- 만주(만주국)에는 해방 당시 약 700,000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소련의 만주 전략공세작전(1945년 8월) 이후 소련군에 의해 대거 포로가 되었거나 무장 해제되었습니다.
###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군
-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환**:
대부분의 일본군은 해방 이후 연합군의 관리 하에 무장을 해제하고 일본으로 귀환했습니다. 200,000명의 일본군 중 대부분이 귀환했으나, 일부는 포로로 연합군에 잡히거나 다양한 경로로 체류했습니다.
- **만주에서 일본으로 귀환**:
만주에서 주둔한 700,000명의 일본군 중 상당수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고, 전쟁 후 몇 년 동안 소련의 포로 수용소에 억류되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1950년대 초반까지 점진적으로 일본으로 송환되었습니다.
### 총 귀환 인원
- **한국과 만주를 합산하면**:
약 900,000명(한국 200,000명, 만주 700,000명)의 일본군이 해방 이후 일본으로 되돌아가거나 송환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주 지역의 일본군 중 상당수가 소련군에 의해 억류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즉시 귀환된 수는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정확한 귀환 인원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군은 1945년 이후 몇 년에 걸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해방 이후 만주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되돌아간 일본군과 공무원, 일반인의 총 수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
1. **일본군**:
- 해방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약 200,000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무장 해제 후 일본으로 귀환했습니다.
2. **일본인 공무원과 일반인**:
- 해방 직전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약 700,000명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해방 이후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 만주
1. **일본군**:
- 만주(만주국)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약 700,000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소련군에 의해 포로가 되어 소련의 포로 수용소에 억류되었고, 이후 몇 년에 걸쳐 일본으로 송환되었습니다.
2. **일본인 공무원과 일반인**:
- 만주에는 약 1,500,000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만주국의 행정과 경제 활동에 참여한 공무원과 그 가족, 그리고 일반 주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대부분이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 총 귀환 인원
- **한국**: 약 900,000명 (200,000명의 군인 + 700,000명의 공무원과 일반인)
- **만주**: 약 2,200,000명 (700,000명의 군인 + 1,500,000명의 공무원과 일반인)
따라서, 해방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만주와 한국의 일본군과 공무원, 일반인의 총 수는 대략 **3,100,000명**입니다. 이 수치는 당시의 복잡한 상황과 인구 이동을 고려한 추정치입니다.
공식적인 자료로 보는 사실은 이렇습니다만,
일제 강점기 한국으로 이주한 부라쿠민 즉,
호적이 없는 일본내 부랑인, 무호적자 등의 하층민의 이주는
일본측 공식 자료는 별로 없지만
당시 호적 정리 인구 통계 자료에 남아있는 자료에서
10만명의 이주 기록이 있고 기록에서 누락된 지역별 이주 신청에 의해 무상 토지 의 조건으로 넘어간 하층민은 총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해방후 귀환 기록은 전무합니다.
결론적으로
공식적으로 한국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종전 후 귀환은
공식 이주 인구에 한정이 되어 있고
그들이 한국에서 뿌린 후손과
부라쿠민 출신들은 종전 후 귀환이 거부당했습니다.
종전 후 미 군정 시작 전 한달동안
일본 총독부는 총독부 앞마당에서 기존의 전국 일본인 호적을 한국인으로 세탁하고 기존 자료는 모두 소각하여
해방 이후 자국민의 생존을 꾀하였죠
이명박의 본가가 일본인 이유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친일파 매국노가 아니라
그냥 일본계 한국인으로서 자신들의 이익과 민족에 충실한 것 뿐입니다.
그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그럼에도 한국의 이익에 반하여 일본의 이익을 위하여 한국의 존립을 저해한다면 일본으로 추방만이 답입니다.
일본군이 김좌진 장군 추종세력 잡으려고 매일신보에서 김좌진 장군 아들이라 사기치고 고아로 조작한 친일파 김두환은 장군의 아들로 포장되어 미화되고...
그도 그나물의 그밥이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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