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본인이 본 "김대중 대통령"
金大中大統領とノーベル平和賞
- 김대중대통령과 노벨평화상
金大中大統領がノーベル平和賞を受賞した。私は金大中大統領に対して特別な思い入れがあり、ここに筆を取ることにした。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특별한 기억이 있어, 여기에 筆을 들기로 하였다.
金大中大統領はご存知の通り何度も死線を越えてきた人物である。それは彼の思想が時の権力者にとって都合が悪く、また命を奪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考えるほど彼に「力」があるとみなされたためである。この彼の「力」「魅力」をカリスマ性といわずしてなんと言うべきであろうか。
김대중대통령은 아시다시피, 몇번이나 사선을 넘은 인물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이 권력자의 입장과는 反하며, 또한 생명을 뺏지 않으면 안될정도로 그에게는 [힘(소신에 대한)]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힘]과[권력]을 카리스마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뭐라 말할것인가?
金大中氏は若き時には日本支配に抵抗し、解放後は民主運動にその身を投じた。それゆえ彼は
1.日本の朝鮮総督府
2.北朝鮮軍(朝鮮戦争時に俘虜となる)
3.韓国政府(朴正煕、全斗煥政権)
4.米国CIA
という韓国を取り巻く全ての組織からその命を狙われたのである。
김대중씨는 젊은 시절, 일본의 지배에 저항하고, 해방후 민주주의 운동에 그자신을 던졌다. 그것 뿐만 아니라 그는..
1. 일본 총독부
2. 북한군 (6.25전쟁때 포로가 됐다)
3. 한국정부 (박정희, 전두환정권)
4. 미국 CIA 라는 한국을 둘러싼 모든 조직으로부터 그의 생명의 위협을 당해왔다.
金大中氏は何度も大統領になるチャンスがあった。しかし、民主的選挙というものが1980年代後半になってやっと始まった韓国で彼は常に妨害にあった。
김대중씨는 몇번이고 대통령의 찬스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선거가 1980년대 후반에 겨우 시작된 한국에서 그는 언제나 방해(저항)을 받았다.
既に韓国政府から狙われていたことは述べたが、彼は韓国政府の拷問によりその足が不自由になったといわれる(光州事件で金大中氏は死刑判決を受ける事となる)。
덧붙이면, 한국 정부로 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고 말했는데, 그의 경우 한국정부의 고문에 의해 다리에 장애를 입기도 하였다.
ベトナム戦争参戦に反対し、韓国の民衆をリードしたのも彼である。その時、同じく反対勢力の一方の旗頭となったのが金泳三氏であり、韓国軍の司令官が全斗煥氏、ベトナムで軍の指揮にあたったのが盧泰愚氏であるという事実はその後を知る我z93;にとって感慨深い。
베트남 전쟁참전에 반대하고, 한국의 민중을 리드한 그였으나, 그당시, 같은 반대세력(군부)의 한편에 김영삼씨가 있고, 한국군 사령관였던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는 베트남 전쟁의 사령관였음을 아는 우리들에게는 감회가 교차한다.
南北統一を唱える政治家は多かった。しかし、明確なビジョンを持ってこれにあたったのは金大中大統領一人であると断言していい。
確かに、時代の流れであるということも言える。しかし、金大中氏がこの時代まで政治家として輝きを失うことなく生き続けたこともまた事実である。そして、金正日総書記も金大中大統領以外の人物では会談を持たなかったであろうことも想像に難くない。
남북통일을 부르짓는 정치가는 많았다. 그러나 명확한 비젼을 가진 대통령은 김대중대통령이 유일한 인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대중씨가 이 시대의 정치가로서 빛을 잊지않았기에 그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김정일 서기도 김대중대통령 이외의 인물이라면 회담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틀리지 않을것이다.
金大中大統領は経済再生にもその手腕を発揮した。彼のもとに集うブレーンの優秀さを証明している。ここに、金大中氏は朴正煕から盧泰愚氏に至る嘗ての為政者が目指した韓国先進化をも受け継いだといえるであろう。
김대중씨는 경제재생에 있었서도 그의 수완을 발휘하면서. 그의 바탕인 (소질)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여기에 김대중씨는 박정희씨로 노태우씨까지의 위정자가 목표로 한국의 경제선진화 또한 계승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金泳三氏は「ノーベル平和賞が地に落ちた」という発言をしたと伝え聞く。しかし、金泳三は盧泰愚氏の政権基盤さえ受け継ぎきれなかった。金泳三は大統領になった後のビジョンが無かったといえるだろう(但し、不幸にも金日成総書記との南北会談は総書記の死去によって流産したことをあげておく)。その人生を民主化と統一に捧げ、それを実現する事に執念を燃やした『不死鳥』金大中大統領に遠く及ばない男だったと考えている。
김영삼씨는 [노벨 평화상이 땅에 떨어졌다]라는 발언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김영삼씨는 노태우씨의 경제선진화 정책조자도 계승시키지 못하였다.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됐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단,불행이도 김일성 총서기의 남북회담은 총서기가 죽음으로서 유산됐음도 있다) 그는 민주화와 통일에 모든것을 받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집념을 불태운[불사신]김대중대통령과는 비교될 수 없는 인물이다.
韓国のノーベル賞受賞者が「執念の男」金大中大統領になった。そしてこれが韓国という国の難しさ、危うさを逆説的に証明している。
願わくば金大中大統領の意思を受け継ぐ英雄が登場して欲しい。そしてそれは、今の韓国にはまだ存在していない。
한국의 노벨수상자는 [진념의 사나이] 김대중씨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고난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最後になるが、金大中大統領のノーベル平和賞受賞 万歳(マンせー)!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만세...!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