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보수의 철벽을 깬 최초의 생존자
후광 김대중 평전/[1장] 서설 “행동하는 양심으로” 2009/07/04 08:00 by 김삼웅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는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봉건왕조 사회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분단→단독정부 수립→6ㆍ25전쟁→이승만 백색독재→4월 혁명→장면정부 수립→박정희 군사쿠데타→냉전체제→유신독재→산업화→민주화운동→10ㆍ26사태→신군부 등장→광주민주화운동→전두환 폭압통치→6월 항쟁→IMF지배체제→수평적 정권교체→→남북화해협력→이명박의 제2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대이다.
선진 국가들에서 1000년 동안에 겪을까말까한 사건과 격변을 우리는 60여년 만에 다 겪었거나 겪고 있다. 그 결과 흔히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성취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다시 20년 전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질풍노도의 시대에 숱한 정치인들이 정계에 나왔다가 사라지고 대권의 꿈을 키웠다가 무산되었다. 처음에는 큰 꿈을 갖고 출발했다가 권력이나 돈뭉치에 팔려 소초(小草)로 변해버린 정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질풍노도의 시대에 한 포기 질풍 경초(勁草)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경초 ― 사전에는 질풍에도 부러지지 않는 썩 강한 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뜻을 꺾거나 굽히거나 하지 않는 굳센 기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김대중은 80년대 이후 자신의 정치적 상징으로 ‘인동초’를 내걸었지만, 생태학적으로 보아 온대지방에서 피는 인동초보다는 그의 입지와 투쟁, 고난과 재기의 과정은 한 포기 '경초'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겠다.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는 생존 인물이고 여전히 일정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는 2009년 초 이명박정부 1년 만에 민주주의, 중산층과 서민경제, 남북관계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이명박 집권 1년의 실정을 가장 극명하게, 압축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되었다.
한나라당 소속 어느 국회의원이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장과 언론에서 ‘DJ의 100억 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설’을 제기했고, 이를 수사해 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관련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대통령측은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아무개 의원을 고소할 정도로, 그는 아직도 정치의 경계선상에서 음해를 받고 있고, 반대 세력의 적대감도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소속 여성의원 후원회에서는 “노무현처럼 투신자살해 죽으라”는 막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는 지난 5월 중국의 차기 국가주석으로 유력시 되는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만나 나눈 대담과, 베이징대학 특별강연을 통해 “북핵 문제를 중국이 나서 풀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비슷한 시기 스티븐 보즈웨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동교동 사저 방문을 받고, 6자회담 재개를 비롯 한반도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포함하여 미 고위 인사들이 방한할 때는 어김없이 동교동을 찾거나 전화로라도 그와 접촉한다. 그의 활동이 진행형이고, 그에 관한 역사적 평가가 아직 이르지 않느냐는 배경이 된다.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남아미진관(男兒未盡棺) 막도사기기(莫道事己己), 즉 남아가 관뚜껑을 덮지 않았다면 일이 벌써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 우리 속담에 “관에 못을 박기 전에는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평전을 시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민주정부’의 동지이자 후임대통령인 노무현의 ‘죽임당한 자결’ 그리고 김대중이 이루고자 했던 꿈과 이룬 업적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터에, 그의 인성과 생애, 정책과 실천과정, 국가적 아젠다와 비젼, 그리고 그의 한계와 문제점 등을 점검하고 분석해 보고자 함이다.
이미 생존인물에 대한 평전이 나온 사례도 없지 않고, 평전이란 시각을 달리하여 얼마든지 쓸 수 있기 때문에, 생과 사의 울타리가 꼭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면 살았을 때에 본인의 의견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평전을 정정, 보완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에 김대중에 관한 책과 자료집, 보고서는 무수하게 나왔다.
보수 신문들이 왜곡된 렌즈로 조명한 기사와 논평은 태평로와 광화문거리를 몇 번이나 뒤덮을 만큼 쌓여 있다. 1970년에 중앙정보부가 각종 정보력을 동원하여 그에 대한 방대한 조사보고서를 만든 이후 각급 정보기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출생 이래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지고 가공하여 만든 보고서 여러 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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