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18일 서거는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85세를 일기로 역사로 돌아간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 일생은 민주화 투사→제도권의 현실 정치인→제15대 대통령→전직 대통령으로 지위와 역할을 교차하면서 영욕(榮辱), 공과(功過) 또한 교차시켜왔다.
우리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전에서 고인이 국민과 함께 걸어온 역정(歷程)의 여섯 단면을 간추려 되돌아보며, 삼가 명복을 빈다.
첫째,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헌신은 민주 대한민국, 인권 대한민국의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 독립국 가운데 가장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를 개화시킬 수 있기까지 민주화의 양대 화신인 김 전 대통령과 전임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의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이 견인차였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한 4반세기 동안 양김(兩金)시대의 민주화 장정은 국민의 대통령직선제 열망과 결합해 1987년 민주화 체제를 출범시켰다. ‘1987 민주화 체제’는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친 민주적 정권이양의 토대였다. 국내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김 전 대통령의 투쟁은 빛나는 공적이다.
둘째,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서 헌정사상 초유로 순수 야당 세력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를 연착륙시킨 주역이었다.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의 ‘호남 + 충청’ 연합인 DJP연대를 통한 정권 창출이었지만 정권 담당 세력이 선거를 통해 여야(與野)를 교대한 것은 절차적 민주화의 일대 분수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 집권은 또한 지역 간 정권교체를 의미해, 호남인에 대한 역차별 해소에 더해 중앙 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영남 세력의 ‘영구 집권’에 제동을 걸어 지역 간 정권담당 세력의 자연스러운 교체가 가능하게 됐던 것이다.
셋째, 김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로 국내외에 각인된 햇볕정책은 남북관계 전반에 미친 공과 허물 그 모두를 압축하는 상징이다. 대북 유화정책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국민의 대북 인식 변화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녀왔음은 물론이다. 2000년 6월 1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첫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해빙의 새 바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공로로 2000년 12월 10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 또한 누렸다.
그러나 남측의 연합제 통일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6·15 남북 공동선언과 재임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추진한 친북적 대북 정책 및 그 구체적 표현으로서의 대북 지원은 햇볕정책의 역기능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 일방적 대북 지원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비판에 싸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좌파 정권 10년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안보 파탄’의 장본인이라는 비판의 원류가 되고 있다.
넷째, 김 전 대통령이 6·25 이래 최대 위기였던 환란(換亂)을 극복하고 한국경제를 회생의 길로 되돌려 세운 사실 또한 역사적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임기 중 경제의 체질을 튼실하게 하는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외국 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 인수 문제에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의 단결을 동력으로 위기 요인들을 제거하는 차분하고도 치밀한 위기관리 능력을 실증했다.
다섯째, 김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본격 점화한 남남갈등이 노 전 대통령 시대를 거치면서 ‘토착병’이 되다시피 한 것은 불행한 유산이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햇볕정책에 집착해 ‘김정일의 남측 대변인’이라는 험담까지 들을 정도로 친북 자세를 견지했다. 특히 최근 북한의 제2차 핵실험과 미사일 난사(亂射),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정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금도를 잃고 이 정부에 대해 햇볕정책으로의 회귀를 압박함으로써 국민 일부의 대북 경계 의식을 약화시키고 감상적 통일관을 배태시킨 것도 부정적 유산 그 일환으로 남아 있다.
여섯째, 김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보다 헌신적으로 노력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과 지역감정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호남 출신이어서 지역감정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지역감정의 수혜자였다. 재임 중이나 퇴임 이후 지역구조 타파를 위한 노력이 미진했던 점이 그래서 더 아쉽고 안타깝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긍정적 유산은 계승하고 부정적 측면을 소거해나가는 것은 국민의 책임, 특히 정치권의 선행 책임임은 물론이다.
다시 옷깃을 여며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 문화일보 2009년 8월 19일 사설
캐쉬떡칠 노벨상이랑 걍 퍼주기 정책 밖에 기억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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