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대선은 김대중의 초인적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패배로 끝났다. 1971년 4월 30일 ~5월말
효창운동장의 유세에서 공화당의 실정을 공격하고 있는 김대중 후보.
쿠데타로 시작하여 10년차 집권하면서 국권을 한 손에 장악한 절대권력자와의 대결은 처음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여권은 관권과 방계 조직을 총동원하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살포했다. 반면에 야당의 자금은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온갖 음해와 용공으로 덧칠한 것도 모자라 투개표 부정까지 자행하였다.
김대중 후보는 야당의 당권을 장악하지 못한 처지여서 거당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로 불리한 선거전이었다.
4월 29일 김대중은 <4.27 대통령선거를 마치고>라는 성명을 통해 “공화당 정권이 600만표 이상 조작했으며, 부정선거를 묵인할 수 없다”고 말하고, “하느님과 양심 앞에 부끄럼 없이 싸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보로서 박정희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간사였던 강창성은 뒷날 “모든 부정을 저질러서 박 후보의 당선을 만든 것이 사실이다”고 말하고, 박 후보가 약 700억 원을 선거자금으로 썼음을 밝혔다.
커피 한 잔에 30원 하던 시절의 700억 원은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는 이기고도 진 선거가 되고 김대중은 지고도 이긴 선거였다. 이로써 김대중은 야권의 지도자로서 우뚝서게 되었지만 박정희의 정적이라는 피하기 어려운 고난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주요 대학과 청년단체에서는 연일 4.27 대통령선거의 부정을 규탄하고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건일지>
-1971년 4월 30일
서울대, 고대 등 4.27대통령 선거 투개표 참관학생들, 평가대회 개최. 4.27선거는 행정력 총동원한 부정선거라고 규정
-1971년 5월 1일
민주수호학생연맹 대표 15명, 4.27선거를 불법·관권 선거 였다고 성명(*청사편집부, 칠십년대 한국일지, 청사, 1984, 54p는 5월 3일로 기록 확인필요)
-1971년 5월 3일
·서울상대생 150여명, 하오 3시 학생회관 앞뜰서 '원천적 부정선거 화형식"을 갖고 그 중 100여명 교문을 나서 고대 앞까지 침묵시위 벌임. 이 과정에서 강대훈(21.경영3)등 6명 겅찰에 연행
·서울법대생, 부정선거규탄데모
·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 4.27선거 참관보고대회 갖고 '성명서'발표
·문인 선거참관인단, 4.27선거를 "조용한 쿠데타"로 규정, 지방색 충동에 대한 사죄 등 5가지 시정요구
-1971년 5월 4일
·서울법대생 30여명, 부정선거 규탄. 재선거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 돌입
·서울상대생 30여명, 부정선거 규탄하고 재선거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
-1971년 5월 6일
·서울대 문리대학생회, 비상학생총회 갖고 "4.27선거는 불법선거이므로 무효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발표. 이후 1달간 각 대학, 단체들의 부정선거 규탄 성명발표와 시위가 계속됨.
-1971년 5월 7일
서울문리대생, 사이비 민주주의 화형식 갖고 데모
-. 1971년 5월 12일
서울대생, 유기천교수가 총통제 발언으로 국외 추방되었다고 주장, 귀국운동 전개. 72년 5월 15일 유기천 전 서울법대 교수 문교부 상대로 교수직 파면취소 청구 소송 서울고법에 제기
-1971년 5월 13일
민주수호청년협의회, '4.27 부정선거 무효성명서'발표. 이 성명서에서 박정권의 총통체제 강화를 위한 협찬기구로서의 국회를 구성하는 5.25 국회의원 선거를 전면 거부할 것을 재야 및 야당에 요구.
-1971년 5월 14일
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 대통령 조찬기도회를 주관하여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외면하고 권력의 자기합리화에 들러리 역할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판, 불의를 보고 불의라고 말할 용기 없으면 선지자의 복장 던지고 평민으로 돌아가라고 공박
-1971년 5월 17일
서울대생, 신민당사에 들어가 5.25 총선을 거부하라고 요구, 농성.
5.19신민당서 농성한 서울대생 8명 구속
-1971년 5월 18일
고대생 1,000여명, '부정선거, 학생구속' 규탄데모, 일부는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1971년 5월 26일
서울대생, 신민당사 농성 구속 학생 석방 요구 데모
-1971년 5월 29일
민주수호청년협의회, 부정선거 관련 성명서 발표. ①박정권은 5.25총선에서 나타난 모든 타락선거의 원흉을 여·야 막론하고 처벌 ②민주청년, 학생의 요구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구속학생 즉각 석방 ③학원탄압 중지, 휴업령 즉각 철회 ④박정권은 5.25 총선에서 민심의 소재를 확실히 알고 있는 이상 5.16이후 부패에 관련된 자를 처벌할 것.
아무튼 흉 수고했어
흉아
이거 그냥 일기장이랑게
벙아니야 미더죠
글구 땡쯍이는 오십팔로 안간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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