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김덕령
의병장. 의병을 정돈하고 선전관이 된 후, 권율의 휘하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협력하여,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다.
광주 고경명
문인·의병장. 금산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광주 고종후 (고경명의 아들)
의병장. 아버지 경명을 따라 의병을 일으키고 금산 싸움, 진주성수비전 등에 참전했다.
나주 김천일
문신 ·의병장.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왜적에게 점령된 서울에 결사대를 잠입시켜 싸우고,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군대를 도왔으며, 진주성을 사수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자결하였다.
화순 최경회 (논개의 남편)
문신. 1567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영해군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금산, 무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워 크게 이겼다.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승진했으나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9주야를 싸우다가 전사했다.
장수 논개 (최경회의 후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 임진왜란 때 최경회가 전사하자 일본군이 촉석루에서 벌이는 잔치에 참석해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남원 황진 (황희 정승의 5세손)
무신. 일본의 내침을 예언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인, 진안, 안덕원, 이치 전투, 진주성 등에서 싸웠다.
영암 정운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 좌정운 우희립 이라고 불리는 부장)
무신. 이순신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도대첩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고흥 송희립 (우희립)
무신. 의병을 모아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서 종군하고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에서 왜군에게 포위된 명나라 도독 진린을 구했다.
나주 나대용 (거북선의 설계자이자 건조 책임자이다.)
수군의 장군 ·거북선의 건조 책임자. 이순신장군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를 위시한 모든 전구의 준비 계획과 추진에 참여해 병선건조에 온갖 정력을 쏟는 한편 15여 회의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외 영정사진을 미처 구하지 못한 호국영령들로...
순천 장윤
무신. 좌의병부장으로 성산·개령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진주성이 포위되자 충청도 병마절도사 황진의 뒤를 이어 전투를 지휘하다 전사하고 진주성도 함락되었다.
나주 양산숙
의병장. 의병을 일으켜, 진주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순천 강희열
의병으로 1593년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항전하다가 전사하였다.
남원 변사정
의병장. 순찰사 권율을 구출하였고 진주성 싸움에서 활약하였다.
정읍 민여운
의병을 일으켜 진주싸움에서 활약하였다. 후에 좌승지에 추증,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남원의 양대박
의병을 모아 전라도 담양에서 고경명을 맹주로 군사를 동원했다.
정읍 안의
군량과 포목 등을 거두어 의병 진영에 보내고, 전주에 있던 태조영정과 왕조실록을 내장산의 용굴로 옮겨 보호하였다.
정읍 손홍록
문신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안의와 함께 전주사고에 있던 왕조실록과 어영 등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기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왕조실록을 묘향산 보현사로 옮겼다. 덕분에 전주사고의 왕조실록만이 남게 되어 후에 재간행될 수 있었다.
장성 김경수
문신 겸 의병. 장성 남문 밖에 창의도청을 설치하고 군량 약 500석을 모아 법성포에 있는 의병장에게 보내고, 의병 수백 명을 종제인 판관 신남에게 주어 안성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도 의병을 모집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영광 이응종
유학자. 의병장. 71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동생 이홍종과 아들 이극부와 함께 장성 남문 창의에 참가하였다. 이응종은 호남 의병에 가담하여 광주의 의병 진영에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보급하였고, 의주의 행재소에 군량을 수송하는 데 전력하였다.
광주 박광옥
문신. 이이의 문인. 김천일·고경명 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도원수 권율을 도왔다. 나주목사로 인심을 수습하고 흩어진 병사를 규합하였다.
기효증 (기대승의 아들)
의병장. 김덕령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도유사로 격문을 짓고 군사를 모집하였다. 그 결과 의병 1천인과 군량미 3천여석을 확보하여 전라도 각지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이잠
무신. 진주성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달려가서, 충청도병마절도사 황진을 도와 싸우다가 성의 함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임계영
의병장. 의병을 규합, 전라좌도의병장이 되어 장수·거창·합천·성주·고성·거제·개령 등지에서 왜적을 대파했다.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객사했다.
박광전
문신. 이황의 문인. 왕자사부, 함열·회덕 현감 등을 지냈다. 의병을 일으키고 정유재란 때는 의병장으로 싸웠다.
문위세
의병장. 용담현령을 지냈다. 정유재란 때에도 왜적에 맞서 싸워 공을 세웠다.
문홍헌
의사. 임진왜란 때 초토사 고경명과 함께 분전하였다.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막하에서 진주성의 의병과 합세, 격전을 벌였다.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와 함께 자결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문.무관과 의병들이 피를 흘려 나라를 지켜냈다.
윗분들은 논개를 제외하면 모두 관직이 있는 문.무관들이고, 그 외 무명의 의병들까지 어찌 다 열거할 수가 있겠냐.
저분들 중 상당수가 경남 진주에서도 그 공적을 기리는 분들이라는 것만 알아라.
임진왜란 영웅이람서..ㅋ
늙어보이는 새 영정보다 당시의 나이에 걸맞게 젊어보이는 저 영정이 더 어울리기에 저걸로 올린거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