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인력시장도 춥기만…일 너무 하고 싶다" 간절한 글에
생면부지 젊은이 취직시켜준 '온라인 훈풍'
중고차커뮤니티 글 보고
한 회원 "남일 같지 않다"며
본인 회사에 일자리 구해줘
"세상은 아직 훈훈" 댓글 봇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일이 너무 하고 싶다" 간절한 사연에
"가스버너 난방에 울컥" "힘내시라" 응원 댓글
한 회원,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일자리 구해줘
지난달 30일 인터넷 중고차커뮤니티 '보배드림'의 한 게시판에 '일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아이디 '옴파로스'라는 사람이 "저의 최종학력은 국민학교 졸업이며 가족관계는 혼자(보육원 출신)입니다. 특기는 운전이고요"라고 시작하는 글이었다.
"지금은 인력시장 다니며 생활하고 있어요. 1월1~31일까지 한번 일을 했네요. 인력시장도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만, 요즘은 날이 추워서 일거리가 없구요. 설상 일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현장에 나갈 확률이 정말 희박합니다. 경쟁률이 상당하네요."
그는 자신의 경제 사정도 덧붙였다. "월세 8만원짜리 단칸방, 난방도 안되는 곳에서 이번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밥을 3끼 먹으며… 나머지는 빵으로 해결하고 있네요.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게 쉽지가 않네요. 정말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일 좀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요."
다수가 그의 사연에 공감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옴파로스는 자신의 월셋방 사진과 함께 두번째 글을 올렸다. 난방을 대신해 준다는 가스버너와 쓰지 않은 깨끗한 목장갑, 그리고 잔고 9만여원이 남은 통장이 사진에 담겼다. 그는 "많은 격려와 관심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취업과 무관한 게시판에 올라온 뜬금 없는 글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게시판 이용자들은 "가스버너에서 울컥했다", "내가 다니던 인력사무소에 일자리가 있다",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 죄송하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3만건이 넘는 조회수, 500건이 넘는 추천을 받으며 글은 인기 게시물로 올라갔다.
몇 사람이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10년 동안 이 게시판을 애용해온 아이디 '달인'이 발벗고 나섰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했다며, 옴파로스에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달인은 지난 2월1일 낮 옴파로스가 면접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윽고 같은 날 저녁 달인은 게시판에 옴파로스가 자신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중고차 사이트에서 주고 받은 글을 인연으로 생판 모르던 사람을 취직까지 시켜준 것이다. 게시판은 한층 훈훈하게 달아 올랐다.
'달인' 강아무개(30)씨는 6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이엠에프(IMF)로 집안 사정이 어렵던 1999년 고향 목포를 떠나 지금 일하고 있는 공장이 있는 부천 송내동으로 홀로 올라왔다. 소형모터 회사에 취직해 야간대를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옴파로스님 글을 보고 같은 일을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회사가 사람을 구하는 중이기도 했구요." 그는 옴파로스가 아직 비정규직이지만 오는 5월이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옴파로스' 이아무개(33)씨는 경산북도 경산의 살림을 정리하고 올라와 현재 강씨가 부서장으로 일하는 가공설비팀에서 일하며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며 "달인님을 비롯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실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7살 때 가출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계모와 함께 살았는데 많이 맞았어요. 집을 나와 떠돌다가 경찰에 잡혀서 보육원에 가게 됐죠. 14살 때 보육원을 나온 뒤부터 신문·우유배달로 여태 버텨왔어요. 나이가 들고나서는 인력시장을 다녔는데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때가 없었어요." 이씨는 "그러다 보니 요즘 나쁜 생각을 먹기도 했었다"며 "마지막으로 올려보자 했던 글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씨를 처음 만났을 때 "큰 기대는 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활기찼죠. 말을 나눠보니 진심도 느껴졌구요."
강씨는 오히려 "요즘 이런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걸 좋아하지 기술직에 관심이 없잖아요. 오히려 오래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 것 같습니다." 이씨는 벌써 기술을 배워 빚을 갚고 자신의 업체를 갖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게시판에서는 두 사람의 사연에 댓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아이디 '분노의 날개'는 "세상에 아직 이런 훈훈함이 있다는 것에 뜨거움이 밀려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남겼다. '잎싹'은 "사람 냄새를 찾기도 힘들다는 인터넷 상에서 멀지도 않은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난 각본 없는 이야기"라고 감동을 전했다.
이씨는 사람들의 성원을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 앞서 게시판 이용자 '서태웅'이 "옴파로스에게 돈을 모아주자"는 제안을 하자 '달인'은 자신과 딸의 사진을 걸고 "책임지고 모금해 전달하겠다"며 모금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지금까지 모인 돈 180여만원 가운데 절반을 게시판을 통해 척추결핵으로 고생하는 사연이 알려진 다른 이에게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옴파로스'는 지난 2일 게시판에 이런 뜻을 글로 올리며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만… 이번에 회원님들께서 보여주신 따뜻한 마음에 힘을 얻고 용기와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권오성 기자sage5t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쪼잔한 시키들.......ㅉㅉㅉ
ㅇㅇㅁ^,.^뿌잉뿌잉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