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도시라는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버스타고 2시간 가량을 가야하는 그런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마을에서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온동네 사람들이 하루안에 다 알게되는 그런 작은 마을이였습니다.
도시에서 들어오는 버스, 혹은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면 그나마 동네에서 나름 붐비는
삼거리 라는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 삼거리에는 작은 분식집 같은것이 있습니다.
말만 분식집이지 저와 친구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 였습니다.
바로 닭발!!! 요즘처럼 매운닭발, 불닭발처럼 여러종류는 아니지만 먹기좋게 닯발을 뼈까지 두들겨서 양념을 해주십니다
약간은 매콤하면서도 세콤달콤한 맛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지내온 저와 친구들은 닭발을 자주 사먹을만큼 여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당시 닭발1개 50원 !!! 누구랄것도 없이 용돈으로 5백원짜리 지폐 한장만 받으면 저와 친한 친구몇명은
눈썹을 휘날리며 삼거리에 있는 닭발집으로 전력질주를 합니다. 아주머니께 5백원짜리 지폐를 건내드리면
기분이 좋으실때는 덤으로 1개씩 더 주곤 하셨습니다. 양념한지 얼마안된 닭발은 맛이 별로입니다
약 4~5시간이 지난후 어느정도 닭발과 양념이 잘 조화를 이룬뒤에 연탈불에 구운 그맛이 최고입니다.
닭발집 아주머니께 아주 죄송하지만 가끔 아주머니 몰래 연탄불에 굽지도 않은 생닭발을 한개씩
훔쳐 먹은적도 있습니다. (아주머니 죄송해요 ~ 너무 맛있어서 .....)
오늘처럼 아주 무더운 어느 여름이였습니다.
어머니 심부름 해드리고 남은 70원을 용돈으로 받았습니다.
저는 변함없이 삼거리로 뛰었습니다. 닭발집 건너편에 있는 오락실에 가서 신나게
갤러그 한판 하고 50원으로 닭발 1개를 먹으로 갔습니다.
이처럼 1개만 먹어야 할때는 아주 신중하게 큰걸로 골라야 합니다. 그중에서 꽤 커보이는 왕건이로 하나 골라서
아주 정성스럽게 연탄불에 굽고 있었습니다. 닭발이 거의 익어갈때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뒤집어서 익힌다음
먹을려고 맘먹고 있던 찰나에 닭발집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아버지는 어린시절 저에게 매우 엄하시고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 돈주고 이런걸 사먹고 있다고 혼날게 뻔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아주 많이 두려웠습니다.
자전거를 세우시고 닭발집 안으로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까워 질수록 두려움은 커져 갔습니다.
참고로 아버지께 거짓말하다 들켜서 들고 계시던 삽으로 모질게 맞아본적도 있습니다.
연탄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닭발을 굽고있던 저에게 다가오셔서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말도 못하고 젓가락으로 닭발만 쥐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연탄갈때 사용하던 부찌갱이와 심지어는
닭발을 손질할때 쓰던 식칼도 있었습니다.ㅎㅎㅎㅎㅎ
그런데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닭발집 아주머니께
1개에 얼마씩이냐고 물으시더니 닭발 10개를 사주셨습니다. 그리고선 맛있게 구워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왠 횡재냐? 싶어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총 동원하여 태우지도 않고 아주 맛깔스럽게 닭발 10개를 구워냈습니다
평소에 약주를 잘 안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맥주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한잔 하시더니 닭발 한개만 드시더니
맛있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먼저 집으로 가셨습니다.
자전거를 타시지 않고 끌고 가시던 그때 아버지의 뒷모습이 하염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때 줄곳 반장을 하면서 성적도 상위권이라 아버지께서는 동네방네 아들자랑이 거창하셨습니다.
그런 아들이 한여름 땡볕에 연탄불에 얼굴이 반쯤 그을려서 50원짜리 닭발 한개를 먹어보겠다고
굽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그 넓디넓은 어깨가 그렇게 작고 힘이 없어보일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우연찮게 닭발집 앞을 지나는데 아주머니께서 부르셨습니다.
닭발을 10개 사주시던 다음날 아버지께서 다시 닭발집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3천원을 미리 맞기시고 우리 아들 지나가는거 보이면 불러서 닭발좀 구워주라고 하셨다네요~
직접 굽게하지말고 아주머니께서 직접 구워달라고 부탁을 하셨다네요. 그리고 3천원어치 닭발을 모두 먹으면
언제든지 지나가는 저를 보면 돈 받지말고 얼마든지 닭발을 주라고 부탁하셨다네요.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저희집 저녁메뉴에 닭발이 올라온적도 있었습니다.
3천원어치 닭발을 친한친구 2명과 한시간만에 흡입해 버린후 그뒤로는 무슨 이유때문인지 닭발집근처를 가지못했습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고향의 닭발집도 아련하지만 삼복더위에 흔해 빠진 삼계탕 한그릇 사드리지 못하고
같이 목욕탕가서 등한번 밀어드리지 못한 아버지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후회는 항상 늦은뒤에 하게되나 봅니다. 만약, 부모님이 생존에 계시다면 이번 말복에는 부모님 모시고
맛있는 삼계탕 한그릇 어떠실런지요?
무더운 여름 그날의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서 몇글자 적어봤습니다........
지금 제가 아버지가 된 후에야.. 더욱 생각이 나네요.. ㅠ.ㅠ
일단.. 추천 합니다.
말복이 언젠가요? 부모님집에좀 찾아가야겠내요 ㅜ
이놈에 돈이문제지만.....
조금만 더 신경써주세요
갑자기 아부지생각이 ㅠ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