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송지면 어불도에 사는 한모(59)씨가 집을 나선 것은 지난 7일 오후 6시 30분.
육지인 북평면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버지(89)의 전화 한 통을 받고 나서다. "몸이 좋지 않다. 좀 올 수 없느냐?"는 기운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한씨는 섬과 육지를 오가는 도선도 이미 끊겼고, 파도가 높이 일고 있는 등 바다 날씨도 좋지 못했지만, 아버지 걱정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급한 나머지 자신의 2.7t짜리 양식장 관리선을 타고 나섰지만, 출항 후 얼마 되지 않아 고장으로 엔진이 멈춰 섰다.
강한 바람과 함께 높은 파도 속에 닻을 내렸지만, 작은 배가 언제 뒤집힐지 모를 위급 상황이었다.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까지 밀려오면서 한씨는 "죽는 줄만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한씨는 엔진 가동으로 생긴 열로 체온이 내려가는 걸 막고, 기관실에 웅크리고 앉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다음날 아침 추위 속에 눈을 뜨는 순간 '통통' 거리며 다가오는 어선 엔진 소리를 듣고 기관실에서 뛰쳐나와 손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완도해경은 어선을 타고 나간 후 연락이 끊겼다는 한씨 부인의 신고를 받고 민간자율 구조선박을 동원해 10시간 30분간 수색을 벌인 끝에 한씨를 극적으로 구조했다.
해경은 어둠과 해상의 악조건으로 조금만 시간이 지연됐으면 저체온증으로 목숨까지 위태로울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씨는 8일 "평상시에는 도선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어제는 갑자기 '올 수 없느냐'는 전화를 받고 급한 마음에 배를 타고 나간 것이 아버지를 영영 뵐 수 없는 불효를 범할 뻔했다"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늘도 구한 효자가 아니라.. 하늘이 버릴뻔한 효자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