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8일, 마침내 참혹했던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이 났다.
지난 5년간, 유럽 전역에 광기를 내뿜으며 전 세계를 자신만의 천년제국으로 건설하고자 했던히틀러의야망망상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수년간 두려움을 떨며 숨어 살던 런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이 날은 승리의 날이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던 시민들은 다시 평화를 맛보게 되었다.
이른 오후 무렵이 되자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던 시민들은
일제히 버킹엄 궁전으로 달려갔다.
왕족 일가는 궁전 발코니에 서서 환한 얼굴로 시민들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전쟁을 승리로 이끈 한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그곳에 서있었다.
그는 영국의 자랑스러운 영웅으로 여겨졌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영국 국민들을 이끌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인물 이였다.
그 사내의 이름은 윈스턴 처칠
영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나치는 완전히 몰락하였고, 전쟁은 드디어 최후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아보였다.
물론, 아직까지도 일본은 최후의 항전을 벌이고 있었고,
태평양 전선에서는 여전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아직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돼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승리를 만끽하는 그 순간에도 처칠은 영국이또 다른 위기에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바로 소련 이였다.
비록 소련은 영국과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이긴 했으나, 이번 전쟁에 있어서 소련의 역할은 매우 컸다.
누가 머라해도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몰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국가였고
처칠도 그 점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소련과의 동맹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 이였으며,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건 처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전쟁을 끝낸 유럽 국가들은 소련을 제외하곤 군사적으로 완전 무기력 했고,
소련의 붉은 군대는 강력한 위용을 내뿜으며 여전히 중부 유럽에 머물러 있는 상황 이였다.
겉보기에는 유럽이 또다시 평화와 고요를 되찾은 것 같았지만,
언제 폭풍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처칠을 엄습했다.
그는만약 소련이 서유럽까지 진격한다면 그 누가 소련을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지금 이 순간, 처칠에게 미국의 존재는 매우 크게 다가왔다.
처칠은 유럽의 존망이 사실 상 미국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소련 국경에 철의 장막이 드리워집니다. 우리는 장막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릅니다.
- 1945년 5월 12일, 처칠이 해리 트루먼에게 보낸 전보 中 -
미국 대통령인 트루먼에게 전보를 보낸 처칠은‘Iron Curtain'라는 표현을 통해
공산주의와 소련의 위험성 대한 자신의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 전보에는 내심 트루먼이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길 바라는 처칠의 의도가 깔려있었다.
이제 소련은 유럽 국가 중에서 유럽내 영향력과 힘이 가장 강한 국가가 됐다.
유럽 역사에서 유럽 대륙에 1 강 인 국가가 나타나면 항상 그 국가의 반대의 편에서
싸워 유럽에 절대 1강 세력이 형성되지 않게 만든 영국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소련을 막아볼려고 했으나 영국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향후 유럽에 절대 1강 세력이 생기지 않게 만들기위해 또 유럽과 영연방의 미래를 위해서는
영국은 어떻게든 미국을 끌어들여 유리한 위치를 점해야 했다.
하지만, 트루먼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는 여전히 소련과 우호적인 외교노선을 취하고 있었고,
스탈린에 대한 그의 평가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새로 취임했던 트루먼은 더이상 미국이 '산타 클로스' 를 자처 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철저히 고립주의를 취하길 원했다.
또 영국과 같은 해군국이였던 미국은 강력한 육군국인 소련과의 지상전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그 무서웠던 나치 지상군의 대부분을 격파한 것은 소련이였고 이러한 사실은 미국 또한 잘 알고있었다.
처칠의 불안함을 눈치챈트루먼은 자신이 스탈린을 잘 다룰 수 있다며 처칠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처칠은 안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이 고립주의를 앞세우고 소련과의 지상전에 큰 부담을 느껴 유럽에서 발을 빼게 될 경우 유럽
전체가 소련의 영향력으로 들어가,상황이 더욱 나빠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처칠은 다급해졌다
위스키에 마약을 섞어 마시기라도 했는지, 처칠은 마침내엄청난결단을 내린다.
처칠은 나치와의 종전 후에 진짜 소련을공격할 것이라면서
효율적인 소련 침공 작전 수립을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처칠에게 전달된 일급 비밀 보고서
이 작전은Operation Unthinkable로 명명되었으며,
영국 3군 참모총장의 지휘아래 영국 합동기획참모부에 의해 수립되었다.
해당 작전은Top Secret으로 분류되었으며,
작전에 관한 보고서는 처칠의 군사보좌관인 헤이스팅스 이스메이가 처칠에게 보고하였다.
아직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난지 1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소련을 침공 한다는 계획 자체가 이미 비현실적 이였을 뿐 더러 심각한 무리수이긴 했지만,
어쨌든 처칠이 진짜로 소련을 공격할 것이라고 하니 군 수뇌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작전 자체가 Unthinkable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도저히 용납 될 수 없는 헛소리 였다는 점 이였다.
5월 22일에 수립된 작전 최종안. 작전 계획서는 총 29페이지로 구성되었다.
참모부는 Operation Unthinkable에 대해 검토하였으며, 지시에 따라 검토 시 다음과 같은 가정을 근거로 두었음.
(a) 작전 실행이 대영제국과 미국 모두에서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영국군과 미군의 사기도 높은 상태로 유지된다.
(b) 영국과 미국은 폴란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독일인과 남아있는 독일의 산업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c) 다른 서방 강대국들의 군사 지원은 불확실 하다.
(d) 소련은 일본과 동맹을 맺을 것이다.
(e) 공격 개시일은 1945년 7월 1일 이다.
처칠의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이 그대로 반영 되기라도 했는지, 작전은 말 그대로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분명 제 2차 세계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처칠은 소련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거라면서 계획을 세웠고
이는 사실상 이미 제 3차 세계대전을 계획한 것이나 다름없는 미친 짓 이였다.
더욱이,독일과의 전쟁이 막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독일의 주 전력을 거의 혼자서 괴멸시키고도
아직도 엄청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 자신들이 상대한 나치 보다 더 강한 소련에 대하여 영국이 이러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군대의 사기 또한 높은 상태로 유지 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영국이 소련에 불만을 품은 폴란드군 뿐만 아니라
무려 나치 독일 국방군의 재무장과 재편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수년간 연합국의 오랜 주적 이였던 나치 독일 국방군이 하루아침에 연합국의 일환이 되어 소련과 싸우는것 을 상상해 보라.)
한 가지 재밌는건, 참모부는 아직 소련이 일본에 대한 침공을 감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만약 연합군 (주로 영국과 미국) 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소련이 일본과 동맹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인도식민지 유지할 능력도 없으면서 마지막까지 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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