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 실제 영상(독일군)
독소전쟁(1941~1945)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전선으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전쟁..
-히틀러와 스탈린 두 독재자간의 전쟁/게르만 민족과 슬라브 민족간의 전쟁/파시즘과 공산주의간의 전쟁..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된 1941년 6월 22일부터 베를린이 함락된 1945년 4월 30일까지의 통계
-2차 세계 대전 독일군 전체 사망자 320만 명 중 280만 명이 독소전쟁중 전사하거나, 포로 수감 중 사망..
-독소전쟁중 소련군 전체 사망자는 약 1,060만 명 이며, 전사 및 실종이 760만 명, 나머지는 포로 수감 중 사망..
-독소전쟁중 소련군과 민간인을 더한 소련측 전체 사망자는 2,900만 명..
-독일, 소련을 모두 더하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2차 세계 대전 사망자 5,000만 명의 60~70%에 달하는 수치..
-4년간 매일 매일 하루 평균 2만 명(민간인 약 1만 4천명,군인 6,500명)이상 죽었다는 결론..
기타 피해 상황 통계
러시아 해방군(독일 육군에 편입된 소련인 부역자 부대) - 전사 및 실종 21만 명(수감 중 사망한 포로 미확인)
루마니아 - 전사 및 실종 8만 명(수감 중 사망한 포로 20만 명)
헝가리 - 전사 및 실종 10만 명(수감 중 사망한 포로 20만 명)
폴란드 - 전사 및 실종 2만 4천 명(수감 중 사망한 포로 미확인)
불가리아 - 전사 및 실종 1만 명(수감 중 사망한 포로 미확인)
2차 세계 대전 전체 사망자의 70% 가량이 독소전쟁중 사망..
공식 통계만으로도 매일 매일 하루평균 2만명 이상씩 4년이상 죽어나갔다니..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최악의 전쟁..
과 공산당을 유대인 다음가는 가장 우선적인 말살대상으로 보았고 소련을 점령후 인종을 말살시키고 난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통해 대 게르마니아를 건설한다는 목표하에 소련으로 들어간지라 전쟁이 잔인해질수 밖에 없었음..
프랑스야 워낙에 얍삽하고 이기적인 민족이라 전쟁초반에 아니다 싶자 바로 항복하고 자국내의 피해를 줄였고
영국이야 독일도 처음엔 강화를 맺거나 자국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시간을 끌었고 결국엔 나폴레옹 같이 대륙봉쇄령으로
유보트에 의한 고사작전으로 갔지만 섬나라 특성상 자국내의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음..
물론 전쟁초 런던공습정도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피해지 전쟁을 수행하는데 영향이 있을만한 피해를
입지를 않았음.,..
그래서 사실상 서부전선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전까진 사실상 개점휴업이라고 할만큼 명시적 전쟁이었고
오히려 아프리카 전선이나 동남아전선에 신경쓰고 있었음
하지만 소련의 경우는 한세대가 거의 사라질만큼 처절한 전쟁이었고 점령된 도시들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인종을 개량한다는 명제아래 민간인 사살은 물론 강간 처형등이 난무하여 오히려 소련국민들의 전쟁의지만 높여주는
실책을 범함..
사실 동부전선 초기만 하더라도 스탈린의 피의 숙청과 정치장교의 존재 그리고 유능한 지휘관들의 처형등으로
그냥 버터에 칼 들어가듯이 밀어붙였으나 독일군이 전혀 예상치 못한 동장군이 일찍 출현하였고 코카서스 유전지대
확보를 위해 모스크바 진격이 늦춰지고 이탈리아의 뻘짓인 아프리카 전선으로 인해 거기에 신경쓰느라 소련침공이
거의 두달 가까이 늦춰진것이 독일군의 입장에선 정말뼈져린 실책이었음...
2차 대공세인 치타델작전에선 이미 미군의 엄청난 물자지원과 영국군의 정보지원 힘입은 소련군은 이미 전쟁초의
소련군이 아니었고 주코프라는 명장또한 나온마당에 이때라도 독일군은 전선을 고착화 시키고 만슈타인의
전략만 따랐더라면 독일군은 소련전체를 아니더라도 점령지역의 반정도는 확보하고 전쟁을 끝냄으로써
서부전선에 올인할수 있을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가정이 없는지라 독일입장에선 아쉬운 대목임..
과 공산당을 유대인 다음가는 가장 우선적인 말살대상으로 보았고 소련을 점령후 인종을 말살시키고 난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통해 대 게르마니아를 건설한다는 목표하에 소련으로 들어간지라 전쟁이 잔인해질수 밖에 없었음..
프랑스야 워낙에 얍삽하고 이기적인 민족이라 전쟁초반에 아니다 싶자 바로 항복하고 자국내의 피해를 줄였고
영국이야 독일도 처음엔 강화를 맺거나 자국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시간을 끌었고 결국엔 나폴레옹 같이 대륙봉쇄령으로
유보트에 의한 고사작전으로 갔지만 섬나라 특성상 자국내의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음..
물론 전쟁초 런던공습정도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피해지 전쟁을 수행하는데 영향이 있을만한 피해를
입지를 않았음.,..
그래서 사실상 서부전선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전까진 사실상 개점휴업이라고 할만큼 명시적 전쟁이었고
오히려 아프리카 전선이나 동남아전선에 신경쓰고 있었음
하지만 소련의 경우는 한세대가 거의 사라질만큼 처절한 전쟁이었고 점령된 도시들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인종을 개량한다는 명제아래 민간인 사살은 물론 강간 처형등이 난무하여 오히려 소련국민들의 전쟁의지만 높여주는
실책을 범함..
사실 동부전선 초기만 하더라도 스탈린의 피의 숙청과 정치장교의 존재 그리고 유능한 지휘관들의 처형등으로
그냥 버터에 칼 들어가듯이 밀어붙였으나 독일군이 전혀 예상치 못한 동장군이 일찍 출현하였고 코카서스 유전지대
확보를 위해 모스크바 진격이 늦춰지고 이탈리아의 뻘짓인 아프리카 전선으로 인해 거기에 신경쓰느라 소련침공이
거의 두달 가까이 늦춰진것이 독일군의 입장에선 정말뼈져린 실책이었음...
2차 대공세인 치타델작전에선 이미 미군의 엄청난 물자지원과 영국군의 정보지원 힘입은 소련군은 이미 전쟁초의
소련군이 아니었고 주코프라는 명장또한 나온마당에 이때라도 독일군은 전선을 고착화 시키고 만슈타인의
전략만 따랐더라면 독일군은 소련전체를 아니더라도 점령지역의 반정도는 확보하고 전쟁을 끝냄으로써
서부전선에 올인할수 있을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가정이 없는지라 독일입장에선 아쉬운 대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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