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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군사/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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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벨 대령 3 미투고고 20.10.26 18:11 답글 신고
    그럼 얘기가 달라지죠 . 신립은 평야지대에서 기마병으로 돌격헀는데 이건 조총의 흔한 먹잇감이 되는거고

    이로인해 그때 최강이던 기갑사단을 잃은 병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 도망가다 적에게 유린당한거

    만약 문경세제에서 목과 흙으로 진지 을 구출 버티어 주엇다면 시간을 벌수있는데 이건 `아군에게 유리 해지고

    식량과 보급품 또는 군사을 끌어모으는데 더할나우ㅣ 없는 조건이 되고 만약에 적에게 지더라도 후방부대의
    흐트러진 군의 모든걸 추스릴수 있는 여지을 마련할수 잇었다 보여짐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18:49 답글 신고
    @미투고고
    기병이 조총의 먹잇감이라는 건 편견입니다. 조총보다 강력한 총이 나오고서도 한동안 기병은 존재 했고 근세 유럽에서도 기병에 의한 보병 공격 전술은 계속 있었습니다.

    신립의 기병은 궁기병으로 조총 사거리의 2배, 더 연사력이 뛰어난 활로 무장했습니다. 중요한건 기병의 기동성을 발휘하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신립은 적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해 포위 당했습니다.

    당시 왜군은 죽령, 조령 (문경새재),추풍령으로 진군했습니다. 신립이 우려한건 추풍령, 조령중 한곳만 뚫려도 문경새재 안에서 앞뒤로 포위 당하게 됩니다. 훈련 잘된 기병과 불리한 지형 vs 훈련 않된 보병과 유리한 지형 (문경새재). 어려운 선택이죠. 문경새재에서 막았어도 문경을 점령한 왜군과 추풍령을 통과한 왜군에게 포위 당해 전멸 당했을 겁니다.

    중요한건 시각을 문경새재냐 탄금대로 좁힐게 아니라 시야를 크게 가지고 전략을 짜고 실행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레벨 대령 1 6SAR 20.10.26 22:11 신고
    @헨젤과그랬때 머스킷소총이 주력일때는 기병이 보병방진을 깨트리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기병이 밀집방진을 이룬 보병진에 덤비다는 자체부터가 자살 행위 였습니다.

    우회 기동, 우회 기동 하는데, 수천명의 병사 와 그병사를 위한 치중대가 기동할수 있는 기동로는 한정적이고
    우회기동에 의한 포위를 염려하는건 조령 주변의 샛길이 다름없는 하늘재,이화령이 아니라 이미 언급하신
    죽령과 추풍령이 돌파 당했을때의 포위를 우려하는 겁니다.

    그래서 님 말씀 처럼 조령 하나만 보고 이야기 하면 안된다는게 맞는 겁니다.
    근데 포위를 염려한 두개의 기동로인 추풍령 과 죽령은 조령보다 오랫동안 방어에 성공 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조선이 과연 바보라서 조령하나만 틀어막으면 성공 할꺼라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조령을 포기하게 만든 이유로 드신 보병들의 자질부족을 드셨는데, 기병들도 똑같았습니다.
    신립이 데려온 북변의 몇백의 기병 과 도성과 각군에 소집한 기병병과 외 나머지는 그냥 한량들이였습니다.
    징비록에서도 말을 다를주 알고 탈줄 알면 기병으로 편입 시켰다는 소리도 나옵니다.
    당시 말타고, 활까지 쏠주 아는 신분 대부분이 한량 입니다...그래서 한량들을 대거 편입 시켰다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신립도 이사실을 인지 하고 있었고, 선봉의 주력을 북변의 기마병 과 기마병과 출신 위주로 짜고 2파,3파
    는 자질이 부족한 기병들로 채웠넣습니다.

    그리고 왜군의 유인책에 말려 들어 조총에 의해 신립이 그렇게 의지했던 기병들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같이 돌격했던 보병대 역시 괴멸 당하시피 하여 탄금대쪽으로 몰려 전원 몰살 합니다.
  • 레벨 대령 3 미투고고 20.10.27 00:36 신고
    @헨젤과그랬때 도꾸가와 이예야스 휘하 부대가 전국 통일 하기 전 대규모전투에서 횡렬 조총부대로 대승를 거두죠

    그게 토요토미히대요시의 전국통일로 이어지고 . 바로 임진왜란터트리고 조선침략임

    왜구는조총을 전문으로 다루는 조총부대가 따로 따로 있었음 1열 2열 3열로 번가라 가면서 조총에 발사단점을 보완함
    이걸 신립이간과하고 무시한거임
    그리고 또하나 조총이 안이더라도 일본은 장창을 주로 사용했으므로 기병 이뚫기는 힘들었을것임

    신립같은 전투가 일본 막부 말기시절에 있었는데 이게 일본신식부대와 사무라이들의 전투임
    이때 사무라이기병들이 신식조총 부대와 전면전에서 대패하므로 사무라이시대가 끝이남
    영화(마지막 사무라이) 에 전투장면 나옴
    이 전투로 인해 일본은 칼의시대가 가고 총의 시대가 도래함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23:02 답글 신고
    @6SAR
    프로이센 기병은 18초세기까지 잘 운영 되었습니다. 창기병도 아닌 궁기병을 방진에 넣는건 바보 짓이죠. 보병과 기병의 적절한 합동 작전이 필요하고요. 궁기병은 치고 빠지는 기동성을 발휘하는게 핵심이구요.

    죽령의 가토가 방향을 돌린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구요. 추풍령은 500의 군사로 분전한건 있으나 병력 부풀려보이기 이후 게릴라전 수준이었고 겨우 하루 지연 시켰습니다. 8천~18천으로 추산되는 신립이 충주에서 반나절만에 무너진것 보다는 대단하지만요.

    조령의 샛길들 우회기동 어렵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일본 산들은 2~3,000 미터 이고 전국시대 샛길로 우회기동 전투도 있었습니다. 문경새재 샛길들 이에 비하면 왜군에게 험준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낫질 작전때 프랑스군도 아르덴 고원에 대해 저기로는 못온다고 하다 순식간에 무너졌죠. 어렵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조령에 병력 집중 전략이 신립을 조급하게 만들 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곳중 한곳만 뚫려도 한양길이 열리는데 추가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신립은 빨리 고니시와 담판을 짓고 다른쪽 왜병을 막으러 가야한다는 압박을 받았을겁니다. 이로인해 신립은 무리하게 기병을 밀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조선의 전략적 판단 착오입니다.

    냉병기 시대 훈련이 왜중요 한지는 아실겁니다. 말타고 활쏠줄 아는 한량이라고 하셨지만 각궁은 일반인들이 활시위 거는데 까지 가는것도 오래걸립니다. 말타고 달리며 활쏘는건 얼마나 걸릴까요? 그 시절 한량들이 하는 말타고 활쏘는 사냥이 군사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세조가 쿠데타 훈련을 그렇게 했구요.

    칼, 활, 창을 제대로 쓸줄 모르는 급조된 농민군으로 조령에서 전, 후방 포위를 각오하고 단병접전을 치루는건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저는 신립이 전쟁을 더 거시적으로 보고 기병을 이용한 정찰 및 게릴라식 기동 방어를 통해 적의 예봉을 꺽고 강을 앞에 두고 싸웠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레벨 대령 1 6SAR 20.10.26 23:50 신고
    @헨젤과그랬때 나폴레옹 시대 기병들은 주로 척후,우회기동,패퇴하는 적에 대한 전과확대, 보병들을 방진으
    로 몰아 넣어 포병의 표적으로 몰아 넣어주는 역활 이였습니다.
    기병 자체만으로 잘짜여진 보병방진에 돌진 하는건 저시대에는 자살 행위 였고, 기병돌격으로 보병방진을
    깨트린 예는 굉장히 드물 정도 입니다.

    궁기병의 사거리는 지상 궁수의 사거리와 틀립니다...거의 절반으로 줄어 듭니다.
    조총 보다 사거리가 2배라는건 어디까지나 지상궁수 기준이지, 궁기병 기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 얘들 역시 수많은 내전을 통해 대기병 전술을 닿고 닿도록 연마한 군대 입니다.
    충격력으로 돌파 해야 할 중기병 없이 궁기병으로 전열 뚫겠다는 생각 부터 미스 인겁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궁기병일때는 사거리 와 명중률에서는 일반궁사에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조총에 대해 별다른 우위점이 없었고, 치명성에서는 오히려 조총이 훨씬 우세 합니다.
    거기에 비해 활은 방패 또는 갑옷만 제대로 갖추고 있어도 살상력이 확 떨어지는 무기 입니다.
    그리고 일본 얘들이 조총 말고 대기병 방어술 없었을 껏 같습니까?

    궁기병으로 조총 과 장창으로 이루어진 보병대열을 뚫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보병대열을 뚫는건 중장기병이고 궁기병은 중장기병 후위에서 곡사로 중장기병을 보조하는 역활 이였습니다.

    그리고 말타고 활쏜다고 해서, 그게 기병이 되는게 아니라는건 본인이 잘 아실텐데요.
    총쏘고, 탄창 갈줄 안다고 일반인이 정예전투병이 되는게 아니잖아요.
    정규군 하고 총 쏠줄 아는 민간인 자경단이랑 동등 조건에서 야전에서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보병대열을 무너뜨릴 충격력을 가진 중기병이 없으면, 보병대라도 활용을 해서라도 뚫어여야 하죠.
    근데 신립장군은 끝까지 보병대를 활용을 못하고 궁기병으로 승부를 보려 했습니다.
    오죽하면 신립장군의 야지에서 일전을 결정한것 두고, 김여물 장군 조차 패배를 가정 하고 아들한테 유언을
    같을말을 남겼을까요.

    그리고 조령이 천혜의 요새를 일컷는건 소수의 병력으로 대병을 막을수 있기 때문 이고,
    또한 님이 이야기 하시는 샛길 역시 소수의 병력으로 막을수 있을 만큼 그 주변 산세 자체가 험합니다.
    그 또한 신립 또는 조선군이 몰랐을껏 같습니까?

    병력의 자질이 딸리면 지형지물이라도 이용해서 그걸 보완을 하는게 맞는거죠.
  • 레벨 대령 1 6SAR 20.10.26 23:57 신고
    @헨젤과그랬때 그리고 신립의 역활은 한양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왜군을 섬멸 하라는게 아닙니다.
    예상외로 남도의 방어선이 빠른 시간내에 무너지자, 병력을 수급 하고 재정비,재편성 하며 또한 도성을 방어 할
    시간을 벌어 오라는 것 이였습니다.

    신립장군은 그것조차 못하고 야전을 택하여 단 하룻만에 괘멸 당합니다.
    그 덕분에 조정은 제대로 몽진준비로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치듯 파천을 하게 됩니다.

    단적인 예로 추풍령은 고니시 와 가토가 한성에 입성 하는 5월3일 까지 방어선을 지켜 냅니다.

    그리고 샛길에 대해 일본의 고지대를 이야기 하시는데, 분명 이야기 드렸습니다.
    천단위,만단위 병력이 보급품 과 전쟁물자 등 치중대를 거느리고 갈수 있는 기동로는 한정 되어 있다고
    말 입니다.....사람 한두람이 다닐수 있는 길조차 기동로 라고 하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또한 그일대 지형지물은 조선군이 더 알고 있을까요, 왜군이 더 잘알고 있을까요.

    신립장군의 선택을 두고 적장인 고니시 와 명군의 이여송이 왜 비웃었는지 생각해 볼일 아닌가요?
    하다 못해 조선의 조정 조차 신립장군의 야전 선택에 대해 황당하다는 표현까지 쓸정도 였습니다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7 00:15 신고
    @6SAR
    저는 궁기병은 치고 빠져야 한다고 분명 말씀 드렸습니다.

    당시 조선에게 필요한건 시간인데 6SAR님께서는 조령에서 막았으면 시간을 충분히 벌었다고 생각하시는 거고 저는 조령에 들어가면 앞으로는 고니시 뒤로는 우회한 고니시나 추풍령을 통과한 구로다에게 포위되어 시간을 벌수 없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후속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신립이 조령에서 고니시를 막았다한들 한양으로 가는 가토와 구로다는 어찌 막을까요. (논란은 있겠지만 저는 가토가 충분히 죽령을 돌파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병의 기동성을 이용해 게릴라전을 하며 후퇴를 하는 것이 더 시간을 벌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레벨 대령 1 6SAR 20.10.27 00:18 신고
    @헨젤과그랬때 님이 하신 말 중에 아랫말이 더 어폐가 있다 봅니다.

    "칼, 활, 창을 제대로 쓸줄 모르는 급조된 농민군으로 조령에서 전, 후방 포위를 각오하고 단병접전을 치루는건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조령에서는 전투는 고지전 과 다름없는 단방향 전투 입니다.
    이조차 믿을수 없는 보병대가 과연 개활지에서는 잘 싸울까요?
    평지라면 왜군이 더 전투력이 상승하는거 아닙니까..그들 특기인 단병접전에서 말 입니다.

    샛길을 통한 포위에 대한 공포.....기병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겁니다.
    신속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예비대 말 입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소규모 특공대가 아닌 이상 대규모 병력이 치중대까지 이끌고 기동할수 있는 기동로
    는 한정 되어 있고, 그 한정 된 기동로는 모두 조선군이 틀어 막고 있는 상황 입니다.

    조령 일대는 조령만큼 산세가 험한 곳이고, 그런곳의 샛길은 한두사람이 일렬로 갈수 있는 험지 입니다.
    그정도의 길은 소수의 병력만으로도 방어가 가능 하기 때문에 천혜의 요지라 불리는것이고, 그런곳이
    뚫리거나 조령이 뚫릴것 대비해 신속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기병 예비대가 이럴때 빛을 발하는 겁니다.
  • 레벨 대령 1 6SAR 20.10.27 00:22 신고
    @헨젤과그랬때 님은 궁기병이 치고 빠지는 전술이라고 하셨는데 신립장군이 그걸 몰라서 전멸 당했다고
    보십니까?

    앞서 이야기 했죠....궁기병의 활의 사거리는 보병궁사의 사거리 보다 짧고 명중률이 떨어진다고요.
    사거리 부분에서 조총에 우위에 설수 없었고, 당시 상황도를 보면 서로의 사정거리 내에서 조총 과 활 대 사격
    전이였습니다.

    거기에 왜군의 유인책에 이끌려 항아리 안에 들어온 신립 궁기병들은 대규모 조총 사격에 의해 괘멸적이 타격을
    받습니다.
  • 레벨 대령 1 6SAR 20.10.27 00:27 신고
    @헨젤과그랬때 그리고 자꾸 우회 우회 하시는데 정확하게 어떤 지점을 통해서 우회 하신다는거죠.
    그걸 정확하게 지목하셔야죠...그냥 막연히 우회 입니까?

    대규모 병력이 우회 할수 있는 죽령과 추풍령은 이미 조선군이 방어선을 펼치고 있었고, 훌륭히 방어 해냅니다.
    그외 샛길 타령 하시는데, 도데체 정확하게 어디 이야기 하시는건데요?

    다들 샛길을 통한 우회 기동을 이야기 하는데, 그 샛길이 어디에 뭔지는 아무리 검색해도 안나오네여.
    님이 좀 알려주시면 매우 감사 하겠습니다.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7 00:33 신고
    @6SAR /> 조령에서 막았다면 충분히 양방향으로 포위 되어 단시간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충주에서 싸운거 차체가 실수로 보는 사람입니다.

    신립이 그러한 판단을 하게한 상황을 설명드린거구요. 당시 조령에 보병을 전개할 시간도 하루 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전투를 강요 당했고 이러한 전투는 이순신 장군도 못이기지요.

    차라리 보병은 바로 한양까지 후퇴시키고 기병을 통한 게릴라전이 시간을 벌기에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7 00:37 신고
    @6SAR
    추풍령은 훌륭히 방어 했다고 말할수 있나요. 죽령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가토가 고니시와의 경쟁심에 길을 돌려서 그렇지 충분히 돌파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7 00:49 신고
    @6SAR /> 궁기병의 게릴린전을 말씀 드렸는데 전면전 상황만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기동력을 발휘해 야습도 있고 여러가지 전술이 있겠지요. 그리고 신립의 기병 1파는 고니시의 중군을 어찌 밀어냈을까요?
  • 레벨 대령 1 6SAR 20.10.27 00:51 신고
    @헨젤과그랬때 "조령에서 막았다면 충분히 양방향으로 포위 되어 단시간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 충분하게 분명히 이야기 드렸습니다.
    그 양방향인 죽령 과 추풍령 훌륭하게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조령과 비교 할수 없는 병력으로 말 입니다.

    특히 추풍령은 고니시 와 가토가 한양에 입성 하는 그날까지 지켜냈습니다.
    거기에 죽령은 가토가 결국은 포기하고 조령은 향합니다.

    "저는 가토가 고니시와의 경쟁심에 길을 돌려서 그렇지 충분히 돌파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if 입니다.....결론적으로는 지켜 냈습니다.

    이상황에서 무슨 포위 붕괴 타령을 하십니까?.
    그쪽은 조령일 돌파 되어 우회 좌회 포위 기동에 대한 우려가 없어서 산속에 박혀 있었답니까?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소리 인거죠.

    포위 공격으로 인해 붕괴가 우려 되어 야전을 선택 했다???
    그런식이면 추풍령 과 죽령도 야전을 선택을 해야죠.

    왜 조선 조정이 조령,죽령,추풍령에 사활을 걸었겠습니까?
    여기를 통과 하면, 이렇다 할 방어에 유리한 지형지물이 없어서 한양까지 일사천리 입니다.

    이해 못하세요...조정에서 신립장군에게 당부한건 왜군 주력의 섬멸이 아니라, 급속도록 북진 해오는 왜군의
    예기를 꺾고, 병력 수급 과 재정비, 한성의 방어를 위한 시간을 벌어달라고 한거 였습니다.

    고니시의 경우 충주전투 이후 재정비, 진군 시작 하자 마자 남한강, 북한강을 도강 해가면서 3일만에 한양에
    도착 했습니다.

    그래서 신립장군의 군이 전멸 했다는 소리에 조정이 벌집 쑤셔 놓은듯이 난리치다가 급하게 몽진..
    말이 몽진이지 그냥 도망 이죠.
  • 레벨 대령 1 6SAR 20.10.27 00:57 신고
    @헨젤과그랬때 궁기병의 게릴린전을 말씀 드렸는데 전면전 상황만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아....이점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 하고 있었네요

    "그리고 신립의 기병 1파는 고니시의 중군을 어찌 밀어냈을까요?"
    밀어 낸게 아니라 고니시의 유인 작전 이였습니다....전사에 대해 찾아보시면 나오는 내용 입니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냥 대패 였습니다.
    우린 8000명의 군사를 잃었고, 저쪽는 150명 전사 입니다.
    야전에서 서로가 전면으로 붙어 이정도 스코어 내기는 정말 드물죠.

    조령에서 포위공격에 우려 야전을 돌린 결과가 저겁니다.

    그것도 상대가 나보다 병력이 더 많다는걸 인지하고도, 내쪽의 병력 중 절반인 보병대는 전투력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고작 궁기병 몇천을 믿고, 야전을 펼친 결과 라는 겁니다.
  • 레벨 대위 3 누가기침소리를내었는가 20.10.26 18:41 답글 신고
    애시당초 임진왜란 시작시 정도의 전력차라면 신립이 어디에서 방어를 했던 노답이었단고 봅니다 ㅋ 신립은 유승룡이 조총에 대해서 염려하자 그까짓게 쏜다고 다 맞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말그대로 용장이었을지언정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에 대한 이해도가 1도 없는 노답 지휘관이었던겁니다. 북방에서 여진족 상대로 아무리 맹위를 떨쳤어도 저런 인식과 태도로는 어디서 싸웠건 신립이 지휘했던 부대는 왜군을 상대로 필패했을거라고 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왜의 전력차는 사실 1:5 수준으로 압도적이었으며 심지어 그 1조차 제대로 지휘 훈련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시작 당시 양측의 전력으로 시작해서 역사를 바꾸려면 처음부터 이순신 장군을 삼도 수군 통제사에 임명하고 조선수군에 대한 전권을 주어 왜란에 대비하게 한다 이거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ㅋ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18:58 답글 신고
    공감이 갑니다.
  • 레벨 대령 1 6SAR 20.10.26 22:23 답글 신고
    유성룡 앞에서는 조총을 무시 하는것 같지만, 신립장군도 꽤나 신경 쓰는 부분이 조총 이였습니다.
    조령까지 행군하면서, 조총에 대한 일선의 공포감을 해소 하고자 ,병사들 앞에서 승자총통 같은 화약무기의 시연
    을 종종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총의 최대 단점인 일발 사격 하고 다음 사격까지 텀이 굉장히 길다는 사실에 주목을 합니다.
    기병 돌진에 앞서 조총의 2격 사격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방안을 연구한 결과 바로 기병의 속도
    였습니다....다음 텀 시간까지 최대한 속도로 돌파하여 유린 하겠다는 구상이였죠.
    그 결과가 기병의 무거운 갑옷을 버리게 하고,경갑옷 또는 전포로 입게 합니다
    한마디로 경기병으로 구성 속도로 승부를 내려 했습니다.

    근데 탄금대 주변은 기병이 속도를 내기에는 부적합 지형이였고, 설상가상으로 전날에 내린 비로 인해
    더욱더 지형이 악화 됩니다.

    처음 계획 했던 차탄 발사까지 시간을 속도를 이용하여 차탄을 발사 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계획이 틀어
    지고, 속도가 없었지만 그래도 장전시간이 긴 조총의 단점을 파고 들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조총대열...일단 3단 사격법에 의해 카운터 펀치를 먹게 됩니다.

    위 사실만 봐도 신립 장군이 원균처럼 무지한 장군은 아니였다는 겁니다.
    그의 선택이 패배라는 결과 나왔기때문에 욕을 먹는거지, 무능한 장수는 아니였다는 거죠.
  • 레벨 원사 3 현암고양이 20.10.26 18:46 답글 신고
    신립이 탄금대 배수진이 아닌 천혜의 요새 문경세재에서 농성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지지않았을까요
    제아무리 날고기는 왜군이라할지라도 견고한 성에서 농성하는 조선군은 큰 부담이였을테고
    그사이 북변의 정예군이 당도했었겠죠
    아쉬움이 많은 문경세재입니다.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18:56 답글 신고
    문경새재 성은 나중에 만든 겁니다. 임란때 패인중 젤 큰게 200년 동안 권력 다툼의 쿠데타 수준의 난은 있었어도 전쟁이 없어 군비에 소홀 하였고 세조 쿠데타 때 세종이 완성한 조선의 국가 운영 시스템이 붕괴 되기 시작하여 연산군이 숨통을 끊어 놓습니다. 능력 위주의 사회로 가다 다시 고려처럼 공신들이 권문세족화하여 나라를 병들게 합니다.
  • 레벨 중장 블키 20.10.26 20:47 답글 신고
    방어를 했다면? 충주성을 중심으로 농성을 했을거고. 이후 평양 이북 지원군을 바탕으로 거기서 막아냈을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일본군에겐 엄청난 타격이죠.

    자료를 보자면 조선군이 실전경험이 없어서 그랬지 경험이 쌓일수록 엄청나게 강군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고 한 기록도 있고..

    시간은 조선편인건 확실했습니다. 이후 명군의 합류로 오히려 임진왜란이 금방 끝났을수도 있을거 같내요. 전 그렇게 봅니다.

    지휘부의 여유로 수군도 이순신과 원균이 함께 무난하게 좌수영 우수영의 협공으로 밀어 냈을거고.

    광해군이 왕이 되는 일도 없었을거고.

    명나라도 후금나라에게 넘어가는 일도 어쩌면 없었을수도 있고. 역사가 완전 바뀌었을듯.

    그런데 역사는 업질러진 물이라. 바꿀순 없겠죠.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21:18 답글 신고
    당시 기록에 "충주성은 도적때를 막기도 어렵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계속 반복되지만 전쟁 준비 자체가 안되었습니다.

    신립이 병력 일부를 충주성에 남기고 조령에서 문경 방면 고니시를 어찌 묶는다 해도 죽령을 통과한 가토 (가토가 죽령에서 조령으로 방향 전환한것은 조선군의 저항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고니시와의 경쟁심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논쟁이 있을수 있습니다.), 추풍령을 통과한 구로다에게 쉽게 함락 당했을 겁니다. 가토는 경쟁심에 한양으로 바로 갔을거고 구로다의 일부병력이 충주쪽에서 모루 역할을하고 고니시가 문경쪽에서 망치 역할을 하면 훈련도 안된 조선군은 순식간에 무너졌을 겁니다.

    만일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발생한다면 훈련 잘된 기마병을 보존하며 게릴전술에 적극 활용하여 시간을 버는 것과 위와 같이 죽을 자리인 조령에서 버티며 시간을 버는 것 어느 것이 옳을까요? 저는 병력을 보존하며 게릴라전을 선택하겠습니다.
  • 레벨 중령 2 널위해서 20.10.26 20:57 답글 신고
    대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게..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21:20 답글 신고
    맞는 말씀입니다. 신립이 충주성 도착 다음날 고니시가 이미 조령으로 들어옵니다. 조령에서 지형을 이용해 방어진을 구축할 시간도 부족했죠.
  • 레벨 대위 3 청석1 20.10.26 20:58 답글 신고
    신립이 믿을수 있었던건 5000여기의
    기마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오합지졸
    조령,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건 오합지졸의 도망을 막아보려는 궁여지책

    믿을수 있는 기마병은 산악지대엔 위력이 대폭 감소하기 때문에 트인 개활지가 필요한 상황

    당신이 신립 이라면 어디 진을 치겠습니까?

    조정에서도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을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이었죠

    신립에게 고백하다 차인 처녀가 자살하여 원한을 품고 신립을 따라다니다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라고 일러주었다는 야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패장은 말이 없는법이나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주특기를 버리고 싸우는 장군,감독들은 없는법입니다
  • 레벨 원사 3 헨젤과그랬때 20.10.26 21:28 답글 신고
    아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신립과 같은 상황에서 비슷하게 판단하고 행동 할겁니다.
  • 레벨 상사 2 하얀제네DH 20.10.27 17:17 답글 신고
    신립 청년때 처녀와의 얘기..저도 알고있는 부분인데 퇴마록으로 유명한 이우혁님의 왜란종결자에도 나오는 대목임, 이항복 과 둘도없는 친우였고 둘이 젊은시절 수행중에 있었던일로 서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졌으며 이항복은 추녀와 동침을 했고 신립은 상당히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았답니다, 이후 이항복의 관상이 전에는 보잘것 없었으나 재상의 관상으로 변하였고 신립은 그와 반대로 나쁜관상으로 바뀌었다 하네요...야사이기에 확인된것은 없으나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던것 같습니다
  • 레벨 훈련병 뇌물처먹고점프쿵깩 20.10.27 11:25 답글 신고
    의병들이 선전한것을 보면

    관군을 매복 시켰으면 승산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험한 산길을 타고 올라왔으면 왜군들은 지쳤을거고 바로 기습해 버련다면 적은 수로도 커버 가능했습니다
  • 레벨 하사 1 육지어부 20.10.27 13:29 답글 신고
    조령의 경우 우회로가 존재 합니다. 현 새재입구에서 10km 북쪽에 하늘재(계립령)가 있고, 조령보다 훨씬 이전(신라가 개척)활용되던 길입니다. 길이도 조령보다 짧습니다. 미륵사지, 대원지 가 있는곳이 그곳입니다. 조령을 막으려면 둘다 막아야 하는데 이는 병력이 분산되는 결과가 됩니다.

    왜군이 조령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이 존재하는것 같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조령을 막았다면 우회 했겠지요. 또한 현재처럼 3개의 관이 설치된것이 후대의 일이라 당시에는 지형지물만 이용해 방어해야 했을것입니다.

    조령이 탄금대보다 지형적으로 유리한것은 사실이지만 우회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최선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참고로 죽령의 경우 우회로가 없습니다. 또 길이 당시기준(현재는 도로가 뚫려있기때문에)으로 훨씬 험했습니다. 또한 봉화노선에서도 부산에서 올라오는 봉화가 바로 죽령을 넘어가게 됩니다. 이 봉화는 3번만에 충주 심항산에 도달하게 됩니다. 죽령이 떨어지는지 여부는 충청감영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알게 되는데, 조령의 경우 파발이나 인편이 전해 주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이 또한 고려 했을 부분 같습니다.

    다만 의문점은 탄금대 전투 전날밤 충청감영인 충주성이 떨어지는데 어찌해서 호응하지 않았느냐 입니다. 성벽이 높지 않다 한들 감영이 있고, 내부 병력이 있을텐데 성 내외로 호응하게 되면 하루만에 전멸하진 않았을것으로 생각되거든요. 탄금대와 감영까지 거리는 10리가 안되거든요. 지척인데, 아무리 밤중이라고 하나 충주성이 공격받는걸 알았을텐데 말이죠. 애초 여기서부터 싸울 전력이 안된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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