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명나라 원군
임진왜란에 얼마나 도움 되었을까요
명나라는 항왜원조 로 인하여
누르하치에게 나라가 멸망할정도로
파병은 치명타가 되었을 정도지만
전 결코 명 원군이 도움되지않았고
오히려 훼방만 되었다고 봅니다.
명군은
조자룡,관우,장비가 언월도 휘두르듯
용맹무쌍한 군대도 결코 아니였구요
명나라원군은 왜구의 상대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이 처음 왜구를
맞아 싸운 전투에서 명군은 대패를 하여
졸장 이여송이 이후 왜적을 상대하는것을 기피했다는것은
너무나도 유명한이야기죠
있으나마나 한
명 원군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았어도 되었다고 봅니다.
1. 평양성 승전을 통한 임진왜란의 반전
2. 앞선 무기 및 전술 체계 조선군 도입
3. 10만이 넘는 병력을 파병하여 조선의 병사 일부들이 귀농을 가능하게하여 조선 농업 붕괴 방지
4. 산동 지방으로 군량미 조달 및 조선에 구휼미 배포
패악질도 있었고 협상으로 시간 끈것도 있었지만 명군의 참전은 굉장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선을 지휘하고 경영할 지휘,행정부가 전쟁에 밀려 국경 끝까지 밀려나온 상황 입니다.
이미 지상군은 지지멸렬 했고, 수군 하나만 분투 하고 상황 이지요.
문자 그대로 이때의 조선은 풍전등화 였습니다.
그걸 타개 해준건 명군의 참전 이였습니다.
거기다가 정유재란때는 조선군 보다 명군이 지상 전투의 주력이였습니다.
임진,정유재란때 국력이 쇠할정도로 조선을 도와 주다가 결론적으로 청에게 멸망 했습니다.
절채절명의 조선을 기사회생 시킨 명을 멸망시킨 청나라에게 우리는 어떤 굴욕을 겪었던가요?
최소한 임진왜란때는 선조가 일왕 또는 명황제에게 머리찧어가면 절하는 삼도구배는 하지는 않았습니다.
패잔병 상대가 아닌 정규전 입니다
근데 이승전으로 명군은 한껏 교만해졌고 왜군은 패배를 복기해 벽제관에서 명군을 대파하죠
그후 왜군과 싸우지 않고 전공만 취하려는 당나라군대가 되었지만 명군의 존재는 조선군에게나 일본군에게나 껄끄러운 존재였음은 분명합니다
패잔병 상대가 아닌 정규전 입니다
근데 이승전으로 명군은 한껏 교만해졌고 왜군은 패배를 복기해 벽제관에서 명군을 대파하죠
그후 왜군과 싸우지 않고 전공만 취하려는 당나라군대가 되었지만 명군의 존재는 조선군에게나 일본군에게나 껄끄러운 존재였음은 분명합니다
명군이 임진왜란에서 한 역활은 없다고 봅니다.
왜군과 협상테이블에만 앉아있던 명나라 원군은 그냥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 봅니다.
1. 평양성 승전을 통한 임진왜란의 반전
2. 앞선 무기 및 전술 체계 조선군 도입
3. 10만이 넘는 병력을 파병하여 조선의 병사 일부들이 귀농을 가능하게하여 조선 농업 붕괴 방지
4. 산동 지방으로 군량미 조달 및 조선에 구휼미 배포
패악질도 있었고 협상으로 시간 끈것도 있었지만 명군의 참전은 굉장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선을 지휘하고 경영할 지휘,행정부가 전쟁에 밀려 국경 끝까지 밀려나온 상황 입니다.
이미 지상군은 지지멸렬 했고, 수군 하나만 분투 하고 상황 이지요.
문자 그대로 이때의 조선은 풍전등화 였습니다.
그걸 타개 해준건 명군의 참전 이였습니다.
거기다가 정유재란때는 조선군 보다 명군이 지상 전투의 주력이였습니다.
임진,정유재란때 국력이 쇠할정도로 조선을 도와 주다가 결론적으로 청에게 멸망 했습니다.
절채절명의 조선을 기사회생 시킨 명을 멸망시킨 청나라에게 우리는 어떤 굴욕을 겪었던가요?
최소한 임진왜란때는 선조가 일왕 또는 명황제에게 머리찧어가면 절하는 삼도구배는 하지는 않았습니다.
명군이 참전 안했으면, 누구 말 따라 지금 우리는 일본이 조국인줄 알고 살고 있었을 껍니다.
절채절명 의 순간에 구원의 손을 뻗어준건 바라 명나라 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이 글을 보니 북괴군의 기습 남침으로 수도서울 뺏기고, 주력사단 대부분 전투력을 상실 하여 절체절명의 순간에
참전 해준 UN군 과 그중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미군 과 폐허가 된 이땅을 재건 할때
가장 많은 도움은 미국에 대한 감사한 마음 보다는....
급속한 북진경쟁으로 인해 패퇴, 현재 분단 국가로 남게한 원망 과 노근리의 양민을 학살한 몹쓸 양키만 기억하는 것과 동일해 보입니다.
게다가 저쪽은 원군을 파병 하냐고 나라가 망할 정도 였는데 말 입니다.
그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그 후폭풍을 굉장히 감당 해야 했다는 사실도 말 입니다.
역사를 되짚어 볼 때에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데 꼬리만 보는 경향이 종종 있습니다.
명군이 평양성에서 원앙진으로 왜군이랑 싸우는거 보고 감탄해서 전쟁 끝나고 도입했고 지금도 수원성에서인가 원앙진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명군이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고 협상만 했다고 불만 가지는 새끼들은 대가리가 있는것인지... 너라면 목숨걸고 남의나라에서 싸울자신 있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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