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렸던 군대이야기 9탄~ 12탄 올립니다.
30년전 당시만 해도 소위 " 군바리"라고 군인들을 비하하던 분위기가 팽배해있던 시절이었죠.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이렇게 군인들을 조롱하고 혐오하고 비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입대하여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군인들이 왜 " 군바리"라고 멸시를 당해야만 했을까요?
그건 바로 하극상을 통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군사혁명을 일으킨 전두환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가 군인에 대한 멸시문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입니다.
철없던 시절 저도 이왕지사 군대갈 바에 미군부대에 가자고,
아주 단순한 동기에 카투사병에 지원해서 입대하게 됩니다.
9탄
카투사로 군복무하면서 다 편한 것은 아니었다.
카투사도 군대이고 군대이다보니 보직이 중요했다.
전반적으로 카투사는 편한군대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빡센데 자대 배치 받아서 한국군 못지 않게 고생한 동기들도 많았다.
그리고 계급문제.
카투사는 일반사병이고 같이 생활하는 미군들이 같은 사병이면 그나마 머 하나라도 싸울 일 있으면 싸우고 그러면서 친해지고 없던 일 만들어 버리고 그러는데
같이 근무하는 미군이 하사관이면 갈등문제가 커진다.
계급이 깡패인건 미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군 하사관 잘못 만나서 성질 드러워진 카투사도 생기곤 했다.
제대할 때 즈음 되면 반미주의자가 되어서 제대한다는 우스게 말도 생겨났다.
10탄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필드에 훈련도 몇번 나가보긴 했다.
원래 TOC병은 안 나가도 되지만 그냥 S-3소속으로 바뀌면서 나가게 되었다.
MCS 장비 그 무거운 걸 험비에 싣고 필드로 나가는데
여단본부는 MCS 장비로 훈련을 한다.
예하 대대는 전투병이라서 실제 기동훈련을 하고
여단은 모의전쟁훈련을 하는데
당시 91년에는 전쟁결과는 미군의 패배, 북한의 승리였다.
북한 전력을 항상 미군 전력과 100% 두는 기준 하에 말이다.
매번 북한한테 졌다.
( 이 말은 미군은 북한의 군사력을 얕잡아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인범 장군이 다음과 발언했다. 우리 군사력을 뽐내고 적의 군사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측을 불리하게 판단하고 상대방 측을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현명하다.
나도 전인범 장군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
이런 훈련을 1년에 3~5번 정도 하는데 예하 대대는 1년에 6번은 필드에 나가고 6번은 중대별 필드훈련을 했다.
그만큼 병사들은 다른 일 없이 훈련에만 전념을 시키는데
그럼 부대는 누가 지키냐고? 그건 미군에서 고용한 한국인 아저씨들이 부대를 지켰다.
한국노무부대라고 하나? 전문용어는 까묵었다.
야외실제 기동훈련이 자주 있었고 병사들을 타이트하게 훈련시켯다.
11탄
미군부대는 아무리 최전방부대라 하더라도 토요일, 일요일은 일과가 없다.
아시다시피 한반도는 미국에 있어서 최전방지역이고 미8군은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파주에 있었는데 한반도 주둔 미군부대 30여개 중에서도 최전방이다.
그런 부대도 평일은 오후 5시면 끝나고 토요일, 일요일은 프리타임이다.
미군들은 볼일이나 놀러다니러 동두천이나 용산엘 다녀올수 있고 심지어 평택에도 다녀올수 있다.
카투사는 한국군임으로 엄밀히 말하면 위수지역이 파주군 내에 한정이 되어있긴 하지만
미군부대 버스를 타고 용산으로 나가기 때문에 이 개념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서울이 집인 카투사는 매주 집에 다녀올수 있었지만 그건 쫄따꾸 때나 자주 갔다오지 고참이 되면
귀찮아서 방에서 야동이나 열심히 봤다.
농구를 하거나 영화보거나 수영하거나 근처 금촌읍에 가서 맛있는거 사먹기도 했었다.
어떤 병사는 부대 정문 앞 식당에 일하는 말숙이랑 가까워 맨날 나가서 무상으로 알바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미군부대는 주말이 되면 부대장이 부재일 때가 많다.
부대는 조용하기만 해서 미군PX나 도서관, 클럽이나 사람들이 나다니지, 보통은 조용하다.
부대장이 부재이고 부사령관이 부재 중이면 그 다음 Charge는 s-3 과장이다.
물론 상급부대, 즉 군이나 군단급이면 참모장이 있겠지만
사단이나 여단급이면 참모장 역활은 s-3이 한다.
그 s-3은 외출을 하지를 않았다.
항상 부대 대기 중..
한번은 여름철에 조용한 일요일 날 갑자기 싸이렌이 울렸는데
s-3 과장이 반바지에 운동복 티셔츠 차림으로 허리 띠에 벨트차고 무전기 들고 열심히 뛰어 댕겼다.
몬가 큰일 낫다 싶어서 나도 알아보러다녔는데 부대 구석 창고에 화재가 나서 그랬다.
민간인 소방차가 오지는 않았고 부대 내 소방차로 바로 불을 꺼서 조기에 진압이 되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배운게
얘네들은 별의별 메뉴얼이 이미 다 있었고 책임소재가 쉽게 누가 책임자인지를 항상 지정을 해놓는것이다.
그리고 장교들 중 1명은 반드시 긴장을 하면서 24시간 대기한다는 것이다.
12탄
오늘 보배에 올라온 한국군 신설 막사 내 룸이라고 사진이 올라왔는데
예전처럼 마루바닥 설치하고 10명씩 해서 20명이 같이 생활하는 생활관이 아니라
이제는 방 1개에 4명 정도 같이 생활하는 것으로 바뀌는거 같은데..
이미 30년전에 미군부대는 방 1개에 병사 3~ 4명이 같이 생활하는 시스템였고
아래 사진처럼 침대에 가구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1인실을 썼다. 제대할 때까지 말이다.
독방이라서 단출했다.
침대. 가구, 냉장고, TV, 라디오.선풍기, 소파.
사진에서처럼 천장에어컨은 없었다.
화장실은 최근 바뀐 한국군 막사가 더 좋긴 하네..
송충이 하나가 송충이 네마리를 보면 까마득 했는데 국방부 시계는 꺼꾸로 매달아 놓아도 간다...
군 전역자들 군번을 할아버지가 됐어도 기억 하는거 보면 자부심인가 봐요.
돌아서면 이것저것 잊어 먹기도 하는데 군번은 아무때나 자동 총번도 머리에...
방갑습니다.
저도 군번은 죽을때까지 잊혀지질 않습니다.
세대 변천에 따라 군대문화가 놀랍게 바뀌어질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포 올, 올 포 원은 변치 않는 진리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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