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의 인파가 몰린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젊은 남녀 한쌍이 승용차 위에 올라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자세를 취하는 장면이 시민들의 카메라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이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며 당시 거리응원 도중에 벌어진 또 다른 추태를 하나 둘씩 고발하기 시작했다.
비록 일부라고는 하지만 젊은이들이 ‘축제’를 벌인다는 명목으로 폭력적 행태를 보이면서 축구 본고장 유럽의 골칫거리인 ‘훌리건’(축구난동꾼)과 유사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14일 새벽의 ‘광란’ = 토고전 종료 직후부터 광화문 등 대규모 거리응원 장소와 강남역, 신촌, 압구정동 등 시내 주요 유흥가에서는 월드컵 승리의 기쁨에 도취된 젊은이들의 뒤풀이가 14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들 중 일부는 차도로 내려가 달리는 버스나 트럭에 뛰어올라 매달리는 위험천만한 곡예를 벌였고, 주차된 차량 지붕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고 차를 파손하는가 하면 버스정류장의 유리부스를 깨뜨리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한 20대 남성이 시내버스 위로 올라가 20여분 간 스트립쇼를 펼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거리응원 뒤풀이에 나선 젊은이들이 밤새도록 폭죽을 터뜨리는 가운데 13일 자정 무렵에는 종각 뒤편 상가건물의 방진막에 불꽃이 옮겨붙어 화재가 나기도 했다.
◇ ‘폭력적 행태’로 번져 =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부 응원단이 열광적 응원 방식을 다른 시민들에게 강요하면서 폭력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점이다.
지나가던 차량을 가로막고 ‘대~한민국!’의 박자에 맞춰 경적을 울려줄 때까지 흔들어대는 일은 예사였고, 길 가던 여성을 붙잡고 헹가래를 치는 일도 종종 눈에 띄었다.
당시 시청 앞 서울광장을 찾았다는 한 네티즌은 “인파에 밀린 어떤 남자가 ‘밀지 마세요, 임신한 사람이 있습니다’고 했더니 응원단 10여명이 에워싸고 임신부 배에다 얼굴을 대고 ‘대∼한민국!’을 연발했다”고 전했다.
그는 “겁을 먹고 하얗게 질린 임신부를 보호하기 위해 남편이 응원단을 밀자 어떤 학생은 남편의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며 일부 응원단의 비뚤어진 행태를 개탄했다.
그러나 이들은 ‘월드컵에서 승리를 거둔 날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 훌리건이란 = 축구의 종가 영국에서 생겨난 단어로 축구에 대한 열광적인 응원을 빌미로 집단 폭력 등 난동을 부리는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1960년대 초반 영국 보수당 정권의 사회복지 축소 정책으로 빈부격차가 심화하자 이에 반발하는 실업자와 빈민층이 축구장에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불만을 터뜨리면서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한국의 거리응원 문화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만 해도 수준높은 질서와 시민의식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불과 4년이 지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부 과격팬의 행동은 유럽의 훌리건과 비슷해졌다는 진단이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우리의 응원문화도 조금씩 훌리건 스타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잘못된 응원문화가 일종의 선례로 남아 앞으로 국가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