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살아계셨으면 80대 중반이셨겠군요
저희 집안은 3대째 공무원 집안이구요
전라도 화순의 한 집성촌에서 나름 있는 집안의 장남이셨는데 할아버지께서 결혼하자마자 가족들 모두 데리고 일본 히로시마로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주하셨는데 원폭 터지기 1년전에 귀국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배울게 하나도 없고 인종차별 심하다고 돌아오셨는데 아버지 기억에도 어렸을때 매일 일본놈들하고
싸웠던 기억밖에 없데요
귀국하시고 그 당시 광주에있는 중학교 5년제 나오셔서 바로 광주 시청에 입사하셔서 공무원이 되셨죠
그러다 1970년쯤에 김대중 대통령에 깊은 감명을 받으셨는데 그 당시 박정희가 공무원들 동원해서 선거운동시키고 그때는 선거철에
고무신, 설탕, 돈 등을 마구 뿌렸다고 하더라구요. 결과적으로 김대중대통령이 그당시 아깝게 패했고 1972년에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만들어서 영구집권을 시도했었죠
그래서 그 이듬해인가 과감히 사표 던지고 시골에서 농사 지으시면서 새마을 지도자로서 농촌계몽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다 1979년도에 자식들 교육때문에 다시 광주로 나오셔서 노가다부터 목수일까지 하시면서 자식들을 가르치셨어요
한번은 공무원 그만두신거 후회 안하시냐고 물어봤는데 후회 안하신다고 하시는데 정작 저를 공무원 만드시려고 대학교 끝나면 고시학원 등록해놨으니 들어라고 하셨거든요.. 많이 후회 하셨나봐요
저는 공무원에 관심이 없고 엔지니어가 되는게 꿈이였는데 그래서 대학 1학년 마치고 바로 군대 가버렸죠...
군 제대하고 바로 유학가버려서 더이상 공무원 하라는 말씀은 안하시더라구요 ㅎ
문제는 막내녀석이 90학번으로 전남대 수석으로 법대 들어갔는데 아시다시피 5월달이면 518기념으로 데모를 많이 합니다.
동생이 1학년때 데모 참가하다가 친한 친구가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실명해요 바로 옆에서.... 그때부터 이눔이 운동권으로 빠졌어요
나라가 이지경인데 공부해서 뭐하냐고.... 학교에서는 사시패스할 인재라고 기대가 컸어요
그렇게 학생운동하다 학생회장 할꺼냐 오월대 대장할꺼냐 하니깐 오월대 대장선댁해서 90년대 초반에 남총련을 이끌었어요
집에서는 난리 났죠.. 학생운동 하기전에 아버지께서 뒤에서 하려면 하지마라 하려면 앞에서 주도적으로 하라고 해서 동생이 진짜로
크게했었죠..
일을 너무 크게 벌려서 92년부터 96년도까지 학생운동 큰사건들에 거의 관여했다고 보면 되요.. 그래서 검거되면 3계급특진에 현산금 1500만원까지 올랐었죠
그러다 정권 바뀌고 졸업하고 먹고 살아야하니 직업을 찾다가 전과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았습니다. 민변 간사노릇이나 하고이었죠
근데 저희 아버지께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되고부터 3년동안 매달 국무총리실에 손편지를 보내셨어요. 어떤 내용이냐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젊음을 받친분들이 호적에 빨간줄 올라가서 취직도 못한다. 이런분들은 사면해줘야하지 않냐..
3년동안 매달 보내셨는데 총리께서 김대중 대통령께 어떤 시골 노인이 매달 이렇게 보낸다고 편지를 보여드렸나봐요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2000년도쯤 과거 학생운동으로 전과가 있는 사람들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한다는 법령을 만드셨죠
많은 분들이 혜택을 보셨고 현재 정치인들도 많은 혜택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동생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사면되서 바로 7급 국가직으로 시험봐서 합겨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7~8년 근무하다가 이명박이가
어떻게 운동권이였던 사람이 인권위원회에 근무하냐고 압력을 넣어서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어요
가끔 아버지 생각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살아계셨을때 효도를 못해드려서요.. 후회도 많이 합니다. 아버지 뜻대로 그냥 공무원이나 할걸...
제가 이렇게 살다보니 박정희넘하고 일본넘들은 정말로 싫어합니다.
여러분, 부모님들 살아계실때 잘해드리세요.. 효도 많이 하시구요... 자식들이 그래도 배웁니다.
4월 15일은 한일전입니다. 꼭 투표하셔서 승리하자구요
대한민국 화이팅.
존경합니다란 말뿐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분들 덕분에
우리들이 이땅에서 자유롭게 숨쉬고 사는듯 합니다
다 함께 4월 15일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다 함께 4월 15일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존경합니다란 말뿐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분들 덕분에
우리들이 이땅에서 자유롭게 숨쉬고 사는듯 합니다
꼭 다들 투표해서 과거를 말끔히 청산했으면 좋겠네요.
김대중 대통령 만세!
감사드립니다.
지는 전과 화려하면서도 대통령해처먹었구만
양분이 되었으니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분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ㅏ
전라도 민주화 하신 분들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 입니다...
대구사람이지만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토착왜구의 뿌리를 뽑아 보게요!!
민주화 운동, 하신 유공자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커뮤니티 입니다.
힘든 시기에 민족적 사명감으로 후대의 안정적 삶과 민족 번영의
기대를 바라셨겠죠... 지금 우리세대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도
듭니다. 감사하고 고맙고 그 숭고한 정신 받들어
총선은 한일전~ 으로 투표 열심히 하겠습니다.
투표 독려는 뽀나쓰~~~ ㅋㅋㅋ
투표해서 우리도 더욱더~ 잘~ 살아가고 신명나는
대한민국 만들어~ 봅~시다^^
어릴때 부모님이 우리는 박정희각하 때문에 이렇게 먹고 살게 되었다고 신천지같은 쇠뇌를 당했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라고요..
정작 본인들은 두메산골 뼈빠지게 골병드는 농사짓고 살았는데 저는 중학교 2학년부터 경운기 운전하면서 농사일 도왔습니다.
형편이 안되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운좋게 공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95년 입사하고 그러다가 인터넷이 생기고 김재규부장님의 최후 발언과 프레이지 보고서를 접하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희 부모님 시절은 그럴수 밖에 없었을거라 생각이 들더군요.
할아버지는 22살때 사할린으로 강제징역 으로 돌아 오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아버지 임신하시고 계셨고 돌아오지 못할것이라 상상도 못하셨겠죠.
지금 같으면 저하고 많이 싸우겠지만 아버지께서는 제가 고등학교 졸업식날 돌아가시네요.
지금같은 선거철이면 매일가서 싸우기라도 할건데 고생만 하시다가 조금 편해 지려니 세상을 떠나시네요.
어머니는 제가 박정희의 만행과 도적같은 핑크당의 업적을 신천지같이 세뇌 드리니 지금은 저희편입니다.
아직 주변에 싸울 친구나 지인이 많지만 예전보다는 힘이 들지가 않네요.
저는 가족이 핑크당 나와도 안찍어 줍니다.
저희 애들한테는 신천지같은 종교와 핑크당 계열은 결혼할 생각말라합니다.
금요일 6시만 기다립니다.
오월대...찬란한 시대의 아픔
녹두꽃이 떨어져서 우는
녹두장군의 후예들
다시 정독했습니다. 뭉클하네요
4월 15일은 한일전입니다
문화류씨?? 동복오씨??
반갑습니다.
저도 화순 문화류씨고 검한성공파 입니다.
그뒤에 권익위원회랑 합처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투표 꼭하겠습니다.
김문수 이명박처럼 인생 살지는말아야지
우리 노인네는 바람 폭행 폭언 무책임
다했는데 지금 4년째 사경을 헤매는
엄마 버리고 어디가서
엄마 기초연금 장애인연금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을겁니다
세상 참...
되시는데 ‥ 주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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