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들 많이 볼수 있는 롤라장(수유리 에이스 롤라장) 갈때하고 좋아하던 홍콩영화들 동시상영하던 극장갈때 추억 정말 소중함.
연탄불 꺼트렸다고 엄마한테 혼나던기억. 동네애들하고 돌아다니며 연탄재 깨트리고 도망가던 기억, 석유곤로 석유다떨어졌을때 3형제 석유집 서로가기 싫어서 싸움.
가스렌지 처음사고 라면끓여 먹을때의 신기함.
크리스마스 무렵 퍼지던 변두리 거리의 캐롤송. 눈와서 동네애들하고 눈싸움하고 눈사람 만들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추억들은 소중해요.
화석연료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바로 지금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호시절이 된다. 모든 건 다 개선의 여지가 있음. 그러나 누적된 온실가스는 개선이 안됨.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치료’가 불가한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면 가공할 기후변화와 전염병 창궐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음.
왜 평생 부모님덕에 호의호식하던 82년생 김지영이세대 니들이 피해자코스프레하니?
연탄불 꺼트렸다고 엄마한테 혼나던기억. 동네애들하고 돌아다니며 연탄재 깨트리고 도망가던 기억, 석유곤로 석유다떨어졌을때 3형제 석유집 서로가기 싫어서 싸움.
가스렌지 처음사고 라면끓여 먹을때의 신기함.
크리스마스 무렵 퍼지던 변두리 거리의 캐롤송. 눈와서 동네애들하고 눈싸움하고 눈사람 만들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추억들은 소중해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모범생(?)으로 곱게 자라서 군대 가기 전까지는 부모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거의 한대도 맞지 않고 살았었는데....
날마다 결심한게 결혼해서 아들 낳으면 절대로 군대는 안보내리라 다짐하면서....ㅠ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얼음산을 기어올라서 자대 복귀하는 악몽을 꾸곤 합니다. (군대시절 복무지가 산꼭대기)
왜 평생 부모님덕에 호의호식하던 82년생 김지영이세대 니들이 피해자코스프레하니?
오히려 저때 어머님이나 할머님이면 그건 인정
불러서 그딴 영화나 나오는겁니다.
다 놀랬었는데
5일 근무를 해버리네
사실 토요일은 급한 업무나
일 잘하는척 하는 애들
일하는 시간이었음
그 전에는 기차, 버스등이 대세라 고속도로 막히는 뉴스는 별로 없었어요.
전국지도 + 상세지도
2006년도 7월부터 시행되었던것 같음
그전에는 토요일 출근해서 점심에 퇴근했음
이런데도 박정희 타령을 하는 색기들은 그냥 소새끼다
더 이상 속이지마라
이미 하루 3시간이면 충분한 노동력이라고 자료가 나왔다
내 말이 아니라 김용옥 교수의 말이다
한낮에 퇴근해서 회사정문 나올때의 그 기분 ㅎㅎㅎ
저 곤돌라 지금도 있습니다.
과천 동물원 가시면 탈수있어요. 주차장에 차세워두시고,코끼리 열차 타지말고
리프트 타고 동물원 산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가서,산을 걸어내려오며 구경하면 됩니다.
유독 길 잘보는 사람들 있었는데
진짜 주차장급 ㄷㄷ 다들 내려서 바람쐬고 주위에
돌아다니다가 앞쪽에 차들 움직이면 후다닥 타서는
출발하곤 했지요 ㅎㅎ 추억이네요.
지도보고 전국 담배가게 일하러 엄청 다녔는데 ...
지금도 전 장거리 운행시 인터넷지도 한번 훌터보고 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연탄은 새벽에 한번은 일어나서 갈아야하던 시절
돈 굴리는 재주 없어서 은행에만 넣어놔도 살벌하게 이자 붙던 시절
다 장단이 있는 법이지요.
지금도 그렇게 쓰고 아끼면 집 살 수 있어요.
요즘은 전국 12시간 걸릴일이 없고 ㅋㅋ
성인돼고 토요일 점심먹고 퇴근하는게 엄청 기뻣는데
요즘은 거의 주5일제 근무고 ㅋㅋ
친구는 전날 출발해서 23시간 걸렸네요.
물론 예전엔 기차역에서 잠잔적도 있긴해요. 표구하려고.ㅎ
운전하면서 졸다보믄 앞차 200m 가있고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참 추억이 돋는 시절이네요 ㅋㅋㅋㅋㅋ
94년인가? 011, 017, 016 통화품질 이동차량 운행 알바 했었는데 ㅋㅋㅋ
저지도에는 분명히 길이 있어서 산길 겁나 올라가보면 길 막혀있어서 되돌아 나온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요 ㅋㅋㅋㅋㅋ
빈부의 격차. 지식의 격차가 그래도 적었지
그래서 경기가 지금과는 차원이 틀리게 좋았구요^^ 사람들 씀씀이도 괜찮았고~
어머니가 30년넘게 지금도 같은장사 하고계시는데 30~25년전 그당시 월 500 버셨음.
아직도 똑같은 가게 하는중인데 지금은 월 300도 힘드시다고 하심.
그당시 저장사하기직전 저희집에 빚이 7000만원있었는데 2년만에 다갚으시고 몇년뒤 아파트사심.
지금도 명절때 이야기하면 그때 정말 돈 잘벌렸다고...
제가 대학들어갈때 부산에 저주려고 아파트작은거 하나 또 사셨음.
물론 그이후 imf터지고 아버지 일이 어려워져서 제이름으로된 아파트는 정리했지만...
저시절이 꼭 안좋았던건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부모님은 그때가 훨씬 살기 좋았다고하십니다^^
아이엠에프로를 겪기도 했지만 우리 부모 세대나 지금 이삼십 대 후배들을 보면
그래도 가운데 낀 우리 세대가 나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듬.
요즘은 중학생도 다해놓은 밥도 못꺼내먹는 애들도 있던데 저때 생각하면 역시 환경이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거 같아요. 그 쪼매난것들 시뻘건 연탄불 갈고 연탄 꺼뜨리면 번개탄 사다가 연탄 피우고 한거보면 참. ㅋ
고속버스 안내양은 이뻣는데 다 어디 갔을까
탱크 말고 마포종점 그전차.. 외줄에 띵똥띵똥 하면서 가는거
그 시대땐 필수였죠.. 대신 옆좌석에 친구인 인간 네비가 지도책자보며 현재 위치나 어디로 가야할지
물어보면 알려주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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