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룡 9단이 유튜브에서 추억의 이창호 대국을 해설해주면서 묘수가 나올때 인공지능을 프로그램을 돌려서 과연 인공지능이 이창호의 묘수를 알아차리나 테스트를 가끔 하는데요. 어떤 묘수는 인공지능도 예측 못하는 수가 있는데 더 황당한건 그 수를 두고 난 직후에도 제일 유망한 수가 아니라고 했다가 한두수 더 진행되면 갑자기 예상 승률이 치솟는 일이 벌어지더군요. 제일 쌩쌩했을 때의 이창호와 알파고가 뒀다면 어땟을까..
젊을때 서울역에서 기차 기다리는 시간때우러 근처 오락실갔다 거기에서 스트리트파이터 하면서 껌씹고 있던 이창호 꼭닮은 사람하고 눈이 마주쳤었는데, 약간은 촐싹맞게 껌 짝짝 씹으면서 스파하는 이창호가 상상이 안되서 그냥 닮은 사람이려니 했는데 몇년뒤 인터넷에서 집이 전주라 집에 갈때 기차타고 다녔으며 전자 오락을 즐긴다는 기사를 보곤 진짜 이창호였다는 걸 알게 됐었네요. 그때 같이 한판 할걸, 바둑은 몰라도 스파는 내가 이길수도 있을거 같은데..
가문의 명예를 걸고 처절한 승부를 하면서 치열하게 발전해온 일본바둑이 오청원의 등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그 오청원의 바둑이 수십년동안 바둑의 바이블이자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조훈현, 조치훈, 고바야시, 임해봉, 다케미아 등 한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사범님들도 오청원의 바둑에 뿌리를 두고 기풍만 조금씩 달랐던 바둑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창호의 바둑은 바둑이라는 경기의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겁니다.
이창호에게 십년동안 꾸준히 도전해온 중국 바둑계가 이창호 바둑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것을 인정하고 가장 먼저 한것이 "이제 오청원의 기보는 잊어라. 이창호의 기보로 후학을 양성해야 한다."였습니다.
그것은 세계 최초 유인 우주선 발사 기록을 소련에게 빼앗긴 미국이 가장 먼저 결정한 일이 중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바꾼 사건과 비슷합니다.
이창호 기보로 공부한 어린 중국 기사들이 성장, 발전하면서 세계 랭킹에 더 많은 이름을 올리고 이창호의 한국에게 십수년간 내주었던 아성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시대이고 신진서라는 또다른 천재가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있지만 상위 랭커 자리를 많은 중국 기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전도유망한 어린 기사들의 인프라도 중국이 한국보다 두터운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기사가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예전 이창호 시절만큼 한국 바둑의 위상이 확고하다고 이야기 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현재 바둑의 패러다임은 인공지능이라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알파고의 첫 등장때 알파고와 대국을 했던 이세돌 사범과 많은 기사들이 알파고의 기풍이 이창호 사범의 전성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이야기 한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 입니다.
이창호 사범님 전성기 시절에 프로를 꿈꿨던 사람인데 패러다임을 바꿔서 대단한게 아니라 그냥 잘둬서 대단한거였는데.... 얼마나 잘뒀냐면 이창호 vs @@@ 으로 생중계 볼 때 모두 도장에서 따라두면서 다음수를 예측했는데 프로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이창호 사범님의 수를 예측을 못했어요. 그 분이 두면 '아~' 라는 탄성이 많이 나왔죠. 바둑에 패러다임은 없습니다 기풍은 있겠죠. 바둑은 제 생각에 재능이 80%고 20%는 멘탈입니다. 100% 모두 완벽하게 갖고 그 이상을 보여주신 분이 이창호 사범님이라고 생각해요.
@cicadas 프로를 꿈꿨던 분이시면 연구생이셨나요? 아무튼 기력이 상당하신 분이시겠군요. 그런분이 바둑에 패러다임은 없다고 말씀하시는게 좀 의아합니다. 바보같은 이야기겠지만 바둑은 결국 집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 집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 많은 기사들이 연구하고 노력해오면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계속 있어왔습니다. 조치훈처럼 비굴하게 2선을 기더라도 실리가 최고라는 기풍이 있고, 다께미야처럼 중앙이 넓다고 믿는 기풍이 있고, 조훈현처럼 발빠르고 순간순간 임기응변이 필요하다는 기풍... 여러가지 기풍이 있었지만 그 무궁무진한 바둑판의 변화속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아내려는 노력들이 모여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완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창호 사범님이 그런말을 한적이 있어요. "바둑의 본질은 두터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 말이 이창호 바둑의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호는 두터움이 나중에 어떻게 집으로 환산되는지 몸소 보여준 기사였습니다. 수학시간에 들은 이야기인데 바둑의 경우의 수를 굳이 수학적으로 계산을 하면 181! (펙토리얼) 이라고 하더군요. 사실상 무한대입니다.
그 무한대 속에서 남들보다 먼저 가장 근접한 정답을 찾아낸게 이창호 사범이었고 그가 보여준 바둑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가장 유명한 도장 중 하나에 있었는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바둑은 재능 80% 멘탈20% 이 중 재능은 머리고 멘탈은 감정,성격이라고 하면 기풍이 성격입니다. 이게 일반 피지컬 스포츠처럼 연습한다고 비슷해지는게 아닙니다. 바둑은 정말 자신 성격 고대로 기풍이됩니다. 그래서 바둑 한판만 둬보면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의 어떤 성격을 갖고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거에요. 그렇다고 기풍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죠. 그런데 이창호 사범님은 요즘 한창 나오는 말대로 기풍이라기보단 그냥 ai 알파고처럼 최선의 수, 이기는 수를 두셨던 분 같아요. '신' 그 자체입니다 ㅎㅎ
예전 노트1 사용할때 종로3가역이 사무실이라 출근중에 내렸는데 이창호9단 목격함 순간 억 하고 다가가서 저기 죄송한데 싸인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했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수락하시길래 노트1 내어드림 그러자 한문으로 해드릴까요 한글로 해드릴까요 라고 물으심 한문이요 하니까 한문으로 해주시는데 진짜 다른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저사람은 뭔데 일반사람한테 싸인을 해달라는거지 하는 표정으로 다들 그렇게 처다보고감 나빼고 아무도 몰라보는거 같아서 무척 쓸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말그대로 중국한테는 악몽 그 자체~
방탄은. ㅜㅠ
말그대로 중국한테는 악몽 그 자체~
추천~
짜증나는군요.
거울을 보세요
자신을보고
말을 해보세요
신산, 돌부처
항상 겸손하고 과묵했던 명인.
자존심 높은 중국인들도 호감을 보였던
명실상부 세계 최고 바둑황제 이창호
1990년 이던가 그랬어요.
듣보잡 어린이가 쫌 하는구나..
흔한신문의 흔한 신동뉴스.
그때는 맨날 그랬거든.
6세 7세 과학천재니 수학천재니
신동이 맨날 발견돼.
시간이 지나도
이세돌 이분은 가끔 보게 되더라고,
돌부처 이창호가
중국ㆍ일본 싹 쓸었어. 완전정복.
이창호가 세계최강인데
그러다가 바둑계에
이세돌 이라는 애가 쪼금씩 알려져.
이 아이는 모지? 애는 모지?
노영하. 윤기현 엠비시 케뷔시 방송사들의
바둑 해설사들도 이해가 안되니
설명을 할수가 없었다는.
창호를 너무 혹사시킨거 같아서
걱정 해주는 사람들도
세돌이는 잘 몰라.
애기 길어지네.
간단하게.
이창호 1975년생
이세돌 1983년생.
시기상 두분이
최고의 기량으로 맞설수 있는 대국은
불가능 했던거죠.
너무 빨리 키워버린 거장과
너무늦게 키운 거장.
꽤나 재밌게 봤었지만 완결은 못했었죠. 세고에가 죽는거까지.
같이 살다시피하던 손주같던 제자가 돌아가고 고독하게 죽어가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이창호9단이 한수가르쳐주러오는날
사령관 부대앞에 서서 기다림ㅋㅋ
실실 걸어오는 이창호9단 모시고 들어감
바둑두는애들은 난리났었음
머야머야!!!!진짜 이창호야???하면서ㅋㅋ
하지만 다들 인정했다고 하죠.
왜? 이창호니까.ㅋ
골목친구들은 설정입니다. 바둑생활로 바둑계이외에 또래친구 없었음.
제가 알기로 이창호는 1~2단인가 에서 갑자기 9단으로 승격된거로 기억나는데...
ㅋ 아닌가요?
ㅋ 아니었네요... 7단에서 9단으로 승단한거였네요...
조훈현이나 이세돌 같이 흔드는 스타일이 아니고 철저하게 계산해서..이기는 수로만 가는..
이창호는 질거 같지 않았죠.. 불리한 대국을 뒤집는건 조훈현이나 이세돌이 잘하는거 같지만..
이창호는 우직하게....무난하게 이겨버리는 스타일..
이창호와 이세돌은 멋지다
젊을때 서울역에서 기차 기다리는 시간때우러 근처 오락실갔다 거기에서 스트리트파이터 하면서 껌씹고 있던 이창호 꼭닮은 사람하고 눈이 마주쳤었는데, 약간은 촐싹맞게 껌 짝짝 씹으면서 스파하는 이창호가 상상이 안되서 그냥 닮은 사람이려니 했는데 몇년뒤 인터넷에서 집이 전주라 집에 갈때 기차타고 다녔으며 전자 오락을 즐긴다는 기사를 보곤 진짜 이창호였다는 걸 알게 됐었네요. 그때 같이 한판 할걸, 바둑은 몰라도 스파는 내가 이길수도 있을거 같은데..
이창호 사범님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사람입니다.
가문의 명예를 걸고 처절한 승부를 하면서 치열하게 발전해온 일본바둑이 오청원의 등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그 오청원의 바둑이 수십년동안 바둑의 바이블이자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조훈현, 조치훈, 고바야시, 임해봉, 다케미아 등 한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사범님들도 오청원의 바둑에 뿌리를 두고 기풍만 조금씩 달랐던 바둑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창호의 바둑은 바둑이라는 경기의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겁니다.
이창호에게 십년동안 꾸준히 도전해온 중국 바둑계가 이창호 바둑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것을 인정하고 가장 먼저 한것이 "이제 오청원의 기보는 잊어라. 이창호의 기보로 후학을 양성해야 한다."였습니다.
그것은 세계 최초 유인 우주선 발사 기록을 소련에게 빼앗긴 미국이 가장 먼저 결정한 일이 중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바꾼 사건과 비슷합니다.
이창호 기보로 공부한 어린 중국 기사들이 성장, 발전하면서 세계 랭킹에 더 많은 이름을 올리고 이창호의 한국에게 십수년간 내주었던 아성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시대이고 신진서라는 또다른 천재가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있지만 상위 랭커 자리를 많은 중국 기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전도유망한 어린 기사들의 인프라도 중국이 한국보다 두터운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기사가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예전 이창호 시절만큼 한국 바둑의 위상이 확고하다고 이야기 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현재 바둑의 패러다임은 인공지능이라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알파고의 첫 등장때 알파고와 대국을 했던 이세돌 사범과 많은 기사들이 알파고의 기풍이 이창호 사범의 전성기와 많이 닮아있다고 이야기 한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 입니다.
이창호의 바둑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마지막으로 달성해놓은 전인미답의 발자국 입니다.
이창호 사범님이 그런말을 한적이 있어요. "바둑의 본질은 두터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 말이 이창호 바둑의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호는 두터움이 나중에 어떻게 집으로 환산되는지 몸소 보여준 기사였습니다. 수학시간에 들은 이야기인데 바둑의 경우의 수를 굳이 수학적으로 계산을 하면 181! (펙토리얼) 이라고 하더군요. 사실상 무한대입니다.
그 무한대 속에서 남들보다 먼저 가장 근접한 정답을 찾아낸게 이창호 사범이었고 그가 보여준 바둑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짱깨고 쪽바리고 멘탈 너덜너덜해지게 개십창을 내버렸으니까
다른분야에 머리를 썻어도 엄청났을것같다는
잘하는건 알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최강자였다는건 몰랐네요.
세계속에 한국바둑을 완전히 각인시켰고,
일본 바둑만화가 한국바둑인들을 신급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경우의 수는 몇 수 정도일까요?
농심배 중일 연합팀 혼자 남아서 다 깨부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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