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난 울지 않았다.
입관할때 돌아가신지 수일은 지난듯한
뼈밖에 안남은 아버지의 모습이 처량해서
잠깐 눈물을 보인것을 제외하곤
발인제 할때도
산에 도착해서 하관 후 취토를 할때도,
할아버지 하늘나라로 가시는데 자기도 잘가시라고 취토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아들을 보면서도 난 눈물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4년전 4월 이때즈음
심장 스탠트 시술을 받고
이주일뒤 어머니와
초저녁 쌀쌀한 날씨에
저녁을 드시러 외출하시다가
뇌출혈로 쓰러지신후
1년동안 경희대병원에 계시다
요양병원으로 잠시 모신
3일뒤에 돌아가셨다.
심장수술 한번 뇌수술 한번
두번에 걸친 수술
중환자실과 대기실 일반병실을 오가고
허리엔 얼굴만한 욕창을 달고
당뇨 폐렴 심장에 뇌
어느곳 하나 정상인곳이 없었으며
사고당시 뒷머리쪽의 충격으로 뇌에 심한 출혈로 인하여 몸의 왼쪽이 움직이지 않았고
그나마 기력도 전혀 없어서 지각만 있고
오른손만 간신히 움직일수 있는 상태였다
호흡이 힘들어서 목에는 삽관을 하여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항문은 사고이후 줄곧 열려있어서
24시간 내내 변만 받아내다
하루가 지나기도 했다.
낮에는 피곤해서 주무시다가
밤만되면 온 신경이 살아나서
밤새도록 간지럽다고.. 대변보셨다고..
소리소리를 질러
지쳐 잠든 아들을 깨우고는
아들이 대변을 치우고 가래를 닦은후
욕창 주위를 긁어드려야 조용히 눈을 감곤 하셨다.
아버지가 참 미웠다.
아들보다 더 믿었던 조카에게
거액을 사기당하고도...
충격에 1년을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다가..
마음 가다듬고
사촌이 싸질러 놓은거 뒷처리 하던
아들보다도..
끝까지 조카 걱정하며 믿던 모습에
쓰러지기 얼마전까지도
다투기만 했었다.
병원에선
당신 그렇게 믿는 사촌형은 문병도 한번 안온다며 그래도 아들이 더 낫지 않냐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버지 앞에서
변호아닌 변호도 했었으니까...
1년동안 같이 병원살이를 하면서
아버지는 하루종일 아들 투정만 들었을거다.
어릴때 왜 그러셨냐..부터 시작해서
듣기싫던 사촌조카 욕까지...
기운이 없어서인지
대답하기 귀찮아서인지..
아버지는 말없이 1년동안
아들투정을 듣기만 하셨다..
있던 집을 정리하고 아버지를 새집으로 모실려고
잠시 요양병원으로 보내드린건데..
아버지는 그걸
가족들이 당신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렇게 장례식과 발인을 마치고
아버지 없는 집으로 이사와
빛정리 세금문제등으로
49일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후
49제를 지내기 위해서
가족모두 전날 근처 숙소에서
잠을 청한 그날 새벽에
49일만에 아버지가 꿈에 찾아오셨다.
새벽으로 가는 아침빛이 조용히 밝아오는
경희대 8층 1인실 병실안에서..
하루종일 병수발 하다가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간이침대에서 등을 돌리고
쪽잠을 청한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구멍뚫린 목으로
누워있는 아들을 향해
조용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미안하다..미안하다..'
새벽녂에 눈을뜬 나는
잠든 아이를 쓰담으며
한시간여 목놓아 소리내며 울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보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난 울지 않았다.
아버지가 미워서도 아니고
돌아가신게 슬프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냥...
이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경희대 병원으로가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8층 제일 끝병실로 가면
하루종일 아들을 기다리며
누워계신 아버지가
빨리 와서 등좀 긁어달라고
말씀하실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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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 3년 기일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게시판 돌아다니다.
같은 마음으로 여기엔 가족 생각 하시는 분들이 많은것 같아서 작년 페이스북에 끄적인 글 가져와봤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아직도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호천망극입니다.
효도합시다..
3년상 치르셨다 생각하시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지내셔도 될것같아요,,,
저도 오랫만에 예전 일기장 보다 자야겠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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