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에 있길래 올려봅니다.
출처는 친일인명사전 이고...
이런 인물을 다카키마사오와 비교하면서
미화하면 안됩니다.
김석원 金錫源│金山錫源, 1893~1978
일본군 대좌
1893년 9월 2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다니다가 1909년 7월 일제에 의해 무관학교가 폐지되자 9월 일본 육군 중앙유년학교 예과 2년에 편입했다. 1913년 5월 중앙유년학교를 마친 후인 1913년 12월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5월에 제27기로 졸업했다. 견습사관을 거쳐 같은 해 12월 일본군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첫 배속지인 보병 제4사단 제61연대(和歌山)에서 기관총대 교관으로 2년간 근무했다. 1919년 육군 중위로 승진한 뒤 1919년 8월 조선군 제20사단 보병 제39여단 제78연대(용산)로 전속되었다. 1925년 8월 보병 제78연대 대위로 복무한 뒤 1927년 같은 연대 제1대대 제3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28년 1월 훈5등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제20사단 제78연대 기관총대 대장으로 만주로 출전하여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방면에서 마잔산(馬占山)군과 대적해 선양(瀋陽), 창춘(長春), 치치하얼(齊齊哈爾)을 전전하며 전투를 벌였다. 이때 세운 공적으로 거금 700원의 행상금(行賞金)을 받았다. 1934년 3월에 육군 소좌로 승진한 뒤 1936년 8월 제78연대 대대장을 맡았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전선으로 출전했다. 중국 베이징(北京)부근에서 벌어진 남원(南苑)전투에서 1개 대대 병력으로 중국군 1개 사단과 교전하여 남원 행궁(行宮)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리자 중일전쟁의 영웅으로 선전되었다. 1938년 2월에는 중국 산시성(山西省) 동원(東苑)고지 전투에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 밖에도 하진(河津), 직산(稷山) 등 산시성의 각지를 전전하며 침략전쟁에 가담했다. 1938년 9월 육군 중좌로 진급했다.
1939년 3월 19개월 동안의 전투를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여 전쟁영웅으로 대환영을 받았다. 귀국 직후인 4월 5일 부민관에서 열린 개선 간담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의 군청 소재지를 거의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침략전쟁을 선전하고 조선인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선동·찬양하고 신생활운동을 강조하는 순회강연을 벌였다. 1939년 10월 훈3등 서보장을, 1942년 2월에는 중일전쟁에서의 무공을 인정받아 ‘수훈갑, 공3급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을 받았다. 1940년 1월에 일본 히로시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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