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그저 배기량이나 카뷰레터를 키워 출력 경쟁을 해오던 미제차에게
보험료 인상, 안전 규제, 환경 규제, 석유파동까지 모든게 한꺼번에 겹쳤던 1970년대는 암흑의 연속이었다.
400마력을 넘나들며 7리터 넘게 배기량을 서슴없이 키워오던 고출력 엔진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는 200마력이 될까말까한 리터당 35마력에 불과한 엔진들만이 남아있었다.
고성능차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머스탱은 V8을 버렸고,
노바SS, 쉐벨SS, GTO, GS, 442, 차져, 코로넷, 챌린저, 헤미쿠다, 수퍼비, 로드러너, 더스터340 등..
60년대를 수놓았던 수많은 명차들 또한 사라지거나 본래의 목적인 평범한 승용차로 돌아갔고
콜벳은 뚝심있게 V8 만을 고집하였으나 카마로는 한 때 85마력짜리 2.5리터 4기통 엔진까지 들어가는 불명예를 안았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듯 하였고 200마력짜리 콜벳은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존의 방식으로는 출력을 찔끔찔끔 끌어올려 지루하고 무의미한 경쟁에 질렸는지
이전까지 250마력에 불과하던 콜벳에 로터스와 합작한 DOHC 헤드를 얹어
출력을 375마력으로 대폭 끌어올린 콜벳 ZR1이 마침내 1990년, 세상에 선 보인다.
경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크라이슬러는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아마도 당시 람보르기니를 보유중이었기 때문에 닷지는 보수를 택한 것이 아닐까..
당시 트럭용으로 만들고 있던 5.9리터 V8 엔진에 실린더를 한 쌍 추가하여 배기량을 8.0리터로,
출력은 400마력으로 끌어올린 V10 엔진을 미끈하게 빠진 새로운 스포츠카에 얹고
1992년, 바이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 보였다.
공룡기업 GM이 자신들이 닦아놓은 최고의 스포츠카를 남의 그늘에 그대로 둘 리가 있는가.
바로 다음 해, 콜벳 ZR1의 출력을 405마력으로 끌어올려 명예를 되찾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은 복수는 이어졌다.
1996년, 바이퍼는 출력을 450마력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루프를 덮고 더욱 유선형으로 만들어 제법 많이 변모한 바이퍼 GTS로 반격한다.
어째서인지 한 동안 GM은 반격하지 않았다.
사실 다른 재미에 맛이 들렀는지 스포츠카 라인업을 방치하기 시작했다.
4세대 콜벳은 무려 13년을 모델체인지 없이 버티다가 첫 풀 모델체인지를 하였지만
이후 2001년이 되어서야 선보인 Z06 조차 96년의 바이퍼 GTS를 꺾지 못했고
카마로와 파이어버드 또한 10년 동안 모델체인지 없이 버티다가 결국 단종 되어버렸다.
한편 닷지는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1999년 출력을 소폭 끌어올려 바이퍼 ACR은 460마력, 이후 2003년 신형 바이퍼에서는 500마력을 달성한다.
GM은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인듯 하였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강력한 한 방을 먹었다.
콜벳이나 바이퍼 같은 본격 스포츠카가 없는 포드는 나름대로 머스탱 베이스의 SVT 코브라 모델을 부지런히 만들어왔는데
체급이 작아서 충분했던 것인지 한참 동안을 300마력에도 못 미치는 코브라 신모델만을 주기적으로 내놨을 뿐이었다.
2001년, 수퍼차저로 전향하여 나름 출력을 100마력 가까이 키우며 390마력을 기록하긴 했지만
바이퍼의 500마력을 뛰어넘으려면 여전히 100마력 이상의 갭을 극복해야 했다.
그런 포드의 뜻밖의 응답은 유럽의 내구레이스에서 1960년대에 명성을 떨치던 GT40의 재해석판, GT였다.
트럭에서나 봐오던 트라이튼 5.4리터 엔진에 머스탱 SVT 코브라와 마찬가지로 수퍼차저를 얹어 무려 550마력으로 우위를 점했다.
열광하기에 충분한 레트로 디자인은 덤.
포드 GT의 등장으로 바이퍼는 물론이고 나머지 차들도 그늘에 가려져버렸다.
2005년 1월에 발표한 6세대 콜벳 Z06는 배기량을 스몰블럭 V8 사상 최대인 7.0리터로 키우고
단조 컨로드 등으로 무장하여 7000rpm까지 돌리는 고회전형 엔진으로 야심차게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505마력으로 포드 GT의 그늘에 가려져버렸다. 포드 GT가 없었다면 최고출력 타이틀은 콜벳 Z06였을 것이다.
포드 자사의 머스탱 또한 야심차게 60년대의 명성을 되찾아줄 쉘비 GT500을 500마력짜리 엔진을 달아 부활시켰으나
플래그쉽인 GT의 수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더 낮게 만들었겠지만..
하지만 닷지는 여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바이퍼의 풀 모델체인지를 계획하며 배기량을 8.3리터로 키우고 출력 또한 600마력으로 키운 신형 바이퍼를 내놓았다.
400마력, 500마력, 600마력 기록을 바이퍼가 모두 처음으로 달성하게 되었다.
바이퍼는 단지 직선에서만 빠른 차가 아니었다.
포르쉐가 휩쓸던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에 닛산 GT-R이 한창 도전장을 던지며 서로 타이틀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시기에
바이퍼 ACR로 양산차 최고기록을 얻으며 핸들링이 좋지 않다는 미제차에 대한 편견을 깨부숴버렸다.
한동안 잠잠하던 GM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때도 이 때다.
수퍼차저가 답이라고 생각했는지 6세대 콜벳의 풀 모델체인지가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수퍼차저를 얹은
638마력짜리 ZR1을 출시하며 이번엔 최고속도 기록에 불을 지폈다.
C6 콜벳 ZR1의 출시 직후 미국은 금융위기에 빠졌다.
캐딜락을 넘어서는, GM에서 가장 비싼 콜벳 ZR1을 그만큼 못 팔아서 독이라고 해야할지,
한동안 아무도 도전장을 내밀지 않아 최고출력 기록을 장기간 보유해서 행운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무려 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를 꺾을 차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다시 한 번 포드다.
배기량을 5.8리터로 키우고 여전히 수퍼차저의 힘을 빌려 662마력을 내는 신형 GT500이 주인공이다.
한동안 킹 코브라니 이상한 이름장난만 잔뜩 친 스포츠모델을 여럿 선보인 후에 등장한 다크호스였다.
이 때 8000rpm 이상의 초고회전형 GT350 또한 함께 출시하여 세간의 중심이 되었다.
포드의 야심찬 계획은 또다시 크라이슬러에게 굴욕을 주었다.
불과 5개월 뒤에 발표한 신형 바이퍼는 배기량을 다시 키워 8.4리터 엔진에서 콜벳 ZR1을 근소하게 꺾는 640마력을 냈지만
쉘비 GT500의 기록에 묻히게 되었다.
이번에도 바이퍼의 패배를 함께 슬퍼해줄 또다른 패배자는 콜벳이었다.
자연흡기 고집을 버리고 수퍼차져로 전향하여 신형 7세대 콜벳 Z06를 650마력으로 선보였지만 쉘비 GT500보다 한 수 아래였다.
대처가 발빨랐던 것도 크라이슬러였다.
콜벳 Z06가 공개된 후 불과 2개월 만에 챌린저 SRT 헬캣을 선보였다.
더 이상 바이퍼로 출력 경쟁을 하지 않고 챌린저로 선수교체를 했다는 점이 가장 의외다.
배기량까지 GM과 깔맞춤한 6.2리터 수퍼차져 엔진으로 707마력을 기록한다.
바이퍼로 얻었던 400, 500, 600마력 최초 달성 타이틀에 700마력 최초 달성 타이틀 마저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미제차 역사상 가장 빠른, 정지에서 60mph까지의 가속 시간을 4초 아래로 떨어뜨렸고
쿼터마일은 11초대, 최고속도는 208mph에 이르렀다.
1960년대 나스카에서 잘 나가던 시절 각종 기록을 휩쓸었었던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 해내는데 성공했다.
복수는 완벽했다.
2003년에 포드 GT가 GM과 크라이슬러에게 굴욕을 안겨줬었다면
신형 포드 GT는 나름대로 야심차게 647마력으로 출시되었지만 챌린저 SRT 헬캣보다 무려 60마력이 적었다.
아마도 3.5리터 V6 에코부스트 엔진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 경쟁자 견제에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크라이슬러는 SRT 헬캣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7년에는 일반유 808마력, 옥탄가 100 고급유에서는 840마력을 내는 괴물을 등장시켜 쐐기를 박는다.
바로 챌린저 SRT 데몬.
정지에서 60mph까지의 시간은 자유낙하 수준인 2.3초.
가속이 어찌나 빠른지 자동차 역사를 통들어 양산차 중 유일하게 앞바퀴가 들린다. 쿼터마일 주파에는 1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워낙에 압도적인 챌린저 SRT 데몬의 출력 덕에 GM은 또다시 그늘에 가려졌다.
챌린저 SRT 데몬이 공개되고 불과 7개월 뒤에 C7 ZR1을 선보였는데
챌린저 SRT 데몬이 없었다면 영광을 누렸어야 할 755마력을 기록하고도 김이 새어버렸다.
챌린저 SRT 데몬이 한정판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챌린저 SRT 데몬으로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으면 됐지 닷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비록 840마력짜리 이전 작품이 있지만 797마력으로 절충하여 내놓은 챌린저 SRT 레드아이로 콜벳 ZR1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
심지어 또다시 한정판이라는 명목으로 경쟁차들이 정신승리할 수 있도록 배려까지 챙겨주었다.
그러나 그 정신승리 마저도 할 여유가 없었다.
2011년 발표했었던 쉘비 GT500의 명성을 되찾고 싶어했던 포드가 다시 분발하여 새로운 GT500을 선보인 것.
콜벳 ZR1보다 강력한 760마력 엔진과 이를 감당할 수나 있나 의심되었던 듀얼클러치 변속기,
포르쉐 911 GT2와 더불어 세계최초 카본휠 등으로 무장하여 세간의 이목을 끄..는 중이다.
아직까지 가속성능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부가티나 쾨닉세그 같은 수퍼카들이 집착하는 0-100-0 mph 기록을 선공개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고성능 자동차 매니아들을 결코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포르쉐의 918 하이브리드, 멕라렌 P1, 라페라리, 최근 순수 내연기관 은퇴를 선언한 람보르기니까지..
2020년의 서막을 앞둔 오늘, 고성능 스포츠차의 미래는 전기모터의 보조를 받는 것으로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뚝심있게 대배기량 수퍼차져 V8 엔진을 통해 자기만의 색을 표출하고 있는 미제차의 매력은
큰 변화의 기로에 서있는 현재, 자동차 매니아들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아쉬움을 아주 잘 달래주고 있다.
SRT 데몬보다 더 강력한 차가 나올 것인가, 신형 쉘비 GT500은 누가 꺾을 것인가
그 설레임에 본격 미드쉽 수퍼카를 정조준하여 출시된 C8 콜벳의 미래 마저 상상하기 즐거워진다.
야밤에 잠이 안와 심심해서 작성해봤습니다.
30년 전 375마력 C4 ZR1부터 시작되어 올해 출시된 760마력 GT500까지.. 이런 전쟁이 또 있을가요ㅎㅎ
국게에 외국차 올렸다고 너무 불만하지 마시구 즐겁게 읽어주세요
유럽제 수퍼카들은 도심 시가지내 아스팔트 에서 요리조리 쏙쏙 빠지고 돌고
아기자기한 임무를 맡고,
미국제 수퍼카들은 도심 외 지역에서 니 죽고 내 살자 식으로 빠꾸없는 정면
대결할 때 등장.
유럽차가 근접전에 유리한 칼이라면
미국차는 넓은 공간에서 위력이 좋은 장창.
애초에 포드는 3.5를 장착한것도 경량화와 무게대 마력 비율을 중시해서이고 GM은 너무 많은 출력은 오히려 차량 안정성을 저하하기에 거기서 멈춘거죠. 트랙카는 발랜스가 중요한데 마력 전쟁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연비. 효율성. 무시!
이런 경쟁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네요 +_+
언제까지 V8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추천은 필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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