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실험ㆍ각종 실험실 외국언론에 이례적 공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삐~삐~삐~. 10 9 8 7...1 스타트"
빨간 불이 점등되자마자 양쪽 끝의 터널에서 두 대의 차량이 서로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가더니
'쾅'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정면 충돌했다.
오른편에서 달려온 소형차는 뒤로 한참 튕겨져나갔고, 희미한 연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를 내뿜었다.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인 도요타자동차가 지난 4일 일본 시즈오카현 수소노시에 위치한 히가시후지
연구소에서 자동차 충돌실험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대만과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7개국 자동차
담당 기자들이 이날의 충돌실험을 지켜봤다.
올 초 불어닥친 대량 리콜 파문으로 추락하던 도요타가 옛 명성을 되찾고자 아시아 지역 기자들을
초청해 자신의 핵심 시설과 실험을 공개한 것이다.
아직 차량 급가속 등 리콜을 야기한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하루속히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도요타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도요타는 충돌실험뿐 아니라 전파실험실, 고ㆍ저온실험실, 침수로 실험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등
일부 '속살'도 한국 등의 언론에 살짝 공개했다.
▲도요타의 차량 충돌실험. 왼쪽은 대형세단 '크라운 마제스타', 오른쪽은 소형세단 '야리스'.
◇"도요타는 안전하다"..충돌실험 공개 = 이날 도요타 측이 충돌실험에 사용한 차량은 1천㏄짜리 소형차
'야리스'와 4천㏄ 대형 세단 '크라운 마제스타'다.
같은 조건에서 극대 극의 차량 충돌 실험을 통해 두 차량 모두 안전하다는 점을 직접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 두 차는 시속 55㎞의 속도로 마주 달려 앞부분 각 50%씩 충돌했다.
충돌 후 관건은 인조인간 '더미(Dummy)'의 상태가 온전한지, 차량 내 공간 및 탈출로가 얼마나 확보돼
있는지, 문을 중심으로 한 차량 변형이 있는지 여부다.
충돌 직후 차량에 접근해 유심히 살펴보니, 역시 소형차의 파손 정도가 심각했다.
부닥친 반쪽은 반파됐고, 후드 내의 각종 부품은 어지럽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앞쪽은 완전히 찌그러졌는데도 앞좌석은 모두 자기만의 공간을 대체로 유지했고, 문도 한 손으로
가볍게 열렸다.
요시하사 칸노 차량안전개발 매니저는 "차량 앞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지면서 에너지를 흡수해 탑승자가
안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크라운 역시 충돌지점은 찌그러졌지만 내부 공간은 멀쩡했다.
요시하사씨는 크라운 탑승자는 경상, 야리스 탑승자는 경상과 중상 사이라고 설명했다.
야리스 탑승자는 좁은 차량 공간 탓에 무릎이 다친 것으로 판단됐다.
히가시후지 연구소의 충돌 실험장은 충돌 당시의 모습을 분석하기 위해 차량 아래위, 그리고 양옆에 모두
6대의 고속촬영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충돌 후에는 모든 부품을 분해해 설계 의도대로 작동했는지 정밀 분석에 들어간다.
차량 실험은 이런 '차대차' 충돌실험을 비롯, 장애물 충돌, 측면 충돌, 전복실험 등으로 이뤄지는데 연간
1천600회 이상 실시한다는 게 도요타의 설명이다.
이날 실시한 실험용 중고차량 가격만 700만엔(한화 약 9천800만원)이다.
요사하사씨는 "유럽과 미국 차에 대한 충돌실험도 자주 하고 있고, 몇 년 전에는 현대차의 NF쏘나타도
실험했는데 결과는 훌륭했다"며 "신뢰성 확보를 위해 대량 리콜 사태 이후 데이터를 더 많이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가상입체 운전시스템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돔. 이 돔 내부에 실제 차량이 들어 있고, 탑승자가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직접 운전한다.
◇'가상 첨단기술 활용'..안전성.편의성 보강 = 도요타는 수많은 실차 실험을 통해 안전성 구현에 매진하고 있지만
가상공간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라 불리는 가상 입체 운전 시스템.
운전자가 직영 7.1m짜리 돔 내에 설치된 실차에 탑승해 각종 상황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구면 내의 벽면은 진짜
거리와 같은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시동을 걸고 가속하니 실제로 운전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돔은 컴퓨터 제어 아래 경사장치, 진동장치 등을 작동시키면서 세로 35m, 가로 20m의 공간을 직접 이동하고,
운전자는 속도감과 가속감을 느끼게 된다.
충돌과 추월, 졸음운전, 한눈팔기 등 그 위험성 때문에 실제 도로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상황을 위해 만든 것으로,
운전자의 습관을 분석해 사고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주목적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상의 가상 현실.
지난 2007년 완공해 이듬해부터 가동을 시작한 이 장비를 통해 급가속 등에 대한 사고 원인 규명을 시도했지만
아직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장비 개발자인 타카시 요네카와 연구원은 "'의도하지 않은 가속' 현상이 실재하는지 모든 상황을 상정해
규명하려 했지만 파악하지 못했다"며 "그런 현상이 없다는 점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도요타가 자랑하는 또 다른 가상 시스템은 '썸즈(Thums)'다.
일반적으로 인체와 유사한 더미를 활용해 사고 실험을 하지만, 도요타는 오래전부터 뇌와 내장, 뼈 등을 완벽하게
재연한 컴퓨터 상의 인체인 썸즈를 활용해 다양한 사고 실험을 하고 이에 따른 안전장비와 사고예방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달에는 더욱 정밀해진 '썸즈 버전4'가 출시됐다.
◇"모든 환경에서도 작동해야"..각종 실험실 가동 = 도요타는 세계 각지로 차량을 수출하는 최대기업답게 모든
악조건을 상정한 실험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지난 3일 찾은 도요타 본사 연구소의 고ㆍ저온실험실에서는 마침 폭설 속에서 차량이 어느 정도 기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영하 15도에 폭설이 내리는 환경에서 차량이 시속 50㎞ 속도로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1989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실험실 지하에 설치된 터보 팬을 통해 인공강설이 세찬 바람과 함께 쏟아져 내렸지만
차량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주행을 계속했다.
마에다 미츠야 차량실험부 그룹장은 "도요타의 모든 차량은 영하 50도까지 주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도요타 본사 연구소의 '전파실험실' 내부.
바로 옆의 전파실험실에서는 전자 환경 하에서의 안전성 확보 실험이 한창이었다.
차량 주행 시 방송탑과 휴대전화, 군사레이더 등에서 나오는 전자파로부터 차량의 오작동을 막는 동시에 차에
발사되는 전파와 노이즈를 억제하는 게 목적이다.
가로 30m, 세로 19m, 높이 11.3m 규모의 이 암실은 전자파 흡수를 위해 벽면을 철판으로 감싼 뒤 수천장의 타일을
둘렀고, 전자파 반사억제 물질로 마감됐다.
차량은 최대 2천㎒의 전파가 발사되는 공간에서 모든 기능을 작동한 채 주행했다.
급가속 원인을 찾기 위한 테스트도 숱하게 실시했지만, 규명을 못했다고 한다.
▲침수실험장을 주행하고 있는 도요타 차량.
연구소 한쪽에 마련된 침수로에서도 종일 차량이 수중 주행을 했다.
바퀴의 3분의 2 정도가 잠길 정도를 오가는 실험으로, 침수된 도로를 안전하게 주행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도요타 관계자는 "도요타 차량은 전 세계 모든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어 최악의 환경에서도 주행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종 실험을 하고 있다"며 "기본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기존 이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도요타.수소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
출처 - 연합뉴스